미국에는 은퇴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은퇴를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1965년생들이 공식적으로 정년퇴직을 맞이하며 사회적 합의에 따른 ‘휴식’에 들어갔지만, 미국의 노동 현장에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생 교포들이 일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은 “미국은 원하면 오래 일할 수 있는 나라”라고 자조 섞인 미소를 짓지만, 그 이면에는 일을 멈추는 순간 삶이 곧장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가 서려 있다.
이 공포는 숫자로 증명된다. 금융산업규제청(FINRA)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5%는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했을 때 ‘2,000달러’조차 마련할 수 없다고 답했다. 미국에서 2,000달러는 여윳돈이 아니다. 아이가 응급실에 가거나 자동차 변속기가 고장 나는 순간 증발해버리는 ‘불행의 최소 단위’다. 중산층조차 월급이 들어오기 무섭게 사라지는 ‘페이첵 투 페이첵(Paycheck to Paycheck)’의 굴레에 갇혀 있다. 연봉 10만달러 고소득자 중 40%가 매달 통장 잔고 0원을 경험하는 나라, 이것이 오늘날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이다.
이 같은 숨 가쁜 생존 게임은 최근 미주 한인들의 ‘역이민’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계 미국인은 2010년 3만5,000여 명에서 2024년 기준 4만7,406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국적 회복 사례다. 2023년 해외 한국인의 국적 회복 사례 중 미주 한인이 4,203건으로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은퇴 후 미국의 소셜시큐리티 연금(SSA)을 한국에서 수령하는 인원 또한 같은 기간 9,379명으로 10년 전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왜 그들은 수십 년 일궈온 삶의 터전을 뒤로 하고 태평양을 건너는가. 단순히 고향이 그리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뒤틀린 경제 구조’에 대한 집단적 탈출에 가깝다. 은퇴자들은 소득이 끊긴 이후에도 집값과 임대료, 보험료, 의료비를 계속 감당해야 하는 구조에 갇혀 있다. 소득이 문제가 아니라, 고정비가 삶을 잠식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살인적인 의료비와 노년의 고립감은 결정타가 된다. 나이가 들어 운전대를 놓는 순간 미국 생활은 거대한 감옥이 된다. 반면 한국은 사통팔달의 대중교통과 세계 최고 수준의 건강보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경제활동을 멈춘 시니어들에게 한국은 ‘품위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역이민이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미주 교포를 향한 싸늘한 시선과 문화적 격차라는 또 다른 벽에 부딪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이민 행렬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미국 사회가 설계한 ‘고비용-저효율’의 생존 덫이 더 이상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한때 기회의 땅이었던 미국은 왜 ‘청구서의 지옥’이 되었는가. 벌어들이는 달러의 속도보다 주거비, 보험료, 부채 이자가 불어나는 속도가 더 빠른 구조 속에서 아메리칸 드림은 붕괴됐다. 성실하게 일하면 평안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계약이 깨진 나라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희망을 찾지 않는다.
역이민의 증가는 단순히 인구 이동의 수치가 아니다. 그것은 뒤틀린 경제 구조를 혁신하지 않으면 그 어떤 대국도 내부로부터 붕괴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다. 미국이 매달 갱신되는 청구서보다 인간의 존엄을 먼저 계산하는 사회로 돌아가지 않는 한, 태평양을 건너는 편도행 비행기 좌석은 앞으로도 만석을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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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용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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