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 광역권에 주재원들이 모이면 월드컵·주식과 함께 공통적으로 입에 올리는 주제가 있다. 바로 치솟는 원·달러 환율이다. 북미 월드컵 열기와 주가 상승이 대화의 흥을 돋운다면 환율은 찬물을 끼얹는 소재다. 자녀가 있는 상당수 북미 주재원들은 주택 임대료와 일부 고정비용만 달러화로 겨우 처리하고 나머지 생활비는 원화 급여로 충당한다. 지난해 7월 뉴욕특파원으로 막 부임했을 때의 환율은 1374원, 이달 19일은 1527원, 2주 전 전고점은 1561원이다. 11개월 만에 실질 급여가 11~14%나 삭감됐다. 더욱이 환율이 1000~1100원대였던 2020~2021년께부터 미국에 있었던 이들은 비슷한 연봉을 받으면서 소비 여력을 40% 가까이 잃었다. 관세와 중동 전쟁으로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4%를 넘어선 데다 달러 기준 월급여까지 수십만~수백만 원이 줄어드니 ‘벼락 거지’가 됐다는 푸념이 곳곳에서 나온다.
환율 급등의 여파는 주재원 몇몇의 가계 경제에만 국한될 리 없다. 벌써부터 해외 출장을 줄이거나 송금을 자제하고 투자를 보류하려는 대기업들의 움직임이 북미 곳곳에서 감지된다. 원자재 수입 비용 증가, 제조업 수익 감소 등도 원화 가치 하락의 부정적 효과다.
원화 가치의 하락은 미국 금리 인하 기대 후퇴, 외국인투자가 이탈, 보호무역주의 대두, 지정학적 위기 부각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12·3 비상계엄 정국 속 최고점 환율이 지난해 4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직후 기록한 1487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지금의 환율은 국난 수준 이상이다. 환율은 지난달 15일부터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 위에서 24거래일 연속 머물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2~3월 11거래일 기록은 한참 전에 넘었고 이제 외환위기 시절인 1997년 12월~1998년 3월 49거래일 기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환율을 더 밀어올릴 악재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달 17일 공개한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치를 점으로 표시해 분기마다 발표하는 표)에서 올해 말 금리 경로를 ‘1회 인하’에서 ‘1회 인상’으로 급선회했다. 단기 채권금리는 이미 들썩이기 시작했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반영한 달러인덱스(DXY)는 18일 100.85로 마감해 지난해 5월 이후 13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글로벌 물가 상승의 주범인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역시 종전 양해각서(MOU)가 논란에 휩싸이면서 예측 불가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환율을 끌어올릴 추가 변수는 또 있다. 다음 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발표할 무역법 301조 근거 관세다. 2월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무효 판결 이후 각국은 10%의 글로벌 관세만 내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보다 더 높은 대체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강제 노동’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나라로 분류돼 최소 12.5%의 대체 관세율을 적용받게 됐다. ‘과잉생산’ 조사 결과에 따라 전체 관세율이 상호관세 15%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걱정되는 부분은 환율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달 24일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은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성공의 비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나마 반도체 수출 호조라도 없었다면 환율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았을 텐데 인과관계를 거꾸로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달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환율 문제를 “일시적 현상”이라고 일축했다. 환율은 지난해 6월 이 대통령 취임 직후 기록한 1350원대에서 한 번도 내려간 적이 없다. 지금은 환율에 대한 섣부른 해석을 하기보다 눈앞에 닥친 추가 상승 리스크부터 치밀하게 살필 때다.
<
윤경환 서울경제 뉴욕 특파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