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책장 앞을 지난다. 종류대로 분류한 책의 제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저 눈으로 훑고 지나간다. 집에 있는 책은 언제든 읽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급할 것도 없고, 기한도 없다. 그래서 오히려 책을 멀리하게 된다. 언젠가는 읽겠지, 하고 미루어 둔 책들이 오늘도 나를 향하고 있다. 나는 그 앞을 지나가며 손을 내밀지 않는다. 어쩌면 책과 내가 아직은 서로의 시간이 아닌 채, 같은 자리에 꽂혀 있을 뿐이다. 늘 곁에 있는 것에는 마음을 미루고, 언제든 가능하다는 생각은 결국 오늘을 비우는 일이 되기도 한다. 손이 안간 책들을 그대로 둔 채, 시간이 오래 흘렀다. 문득, 그 책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또 다르다. 정해진 날짜 안에 읽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책을 잡게 한다. 손이 먼저 가고, 눈이 바삐 따라간다. 연초에 5년 동안 고전 400권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솔직히 말하면, 버겁다. 책을 펼치는 일은 즐겁지만, 어떤 날은 그 무게가 마음을 누른다. 교회도서관에서 일주일에 두 권씩 빌려온다. 집에 있는 책은 시간의 느슨함이 있지만 도서관의 책은 긴장감을 수반한다. 어떻게라도 끝까지 읽어야 한다. 이 목표를 말하는 이유는 내가 한 말을 지켜 살아내는 나의 성격 때문이다. 말한 것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 중간에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나는 계획을 먼저 꺼내 놓는다. 사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핑계인 것이다. 책을 잡고 앉으면 읽힌다. 읽고 간단하게 독후감을 적어 둔다.
Virginia Woolf의 ‘자기만의 방’ 을 읽다가 멈추었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어 조금 지친다. 18세기 전 후 여성의 낮은 지위, 책 읽기도 힘든 시절, 글쓰기는 더욱 숨겨야 하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계속 읽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그 반복의 글은 현재에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목표달성을 위해 다시 책을 편다. 나는 늘 바쁘게 살아왔다. 돌아보면, 나에게 없었던 것은 시간이 아니라 나를 위한 ‘자기만의 방’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용히 앉아 생각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 시간이 없었기에,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한 일 들을 내 의지의 부족으로만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제 남은 것은 나는 나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을 허락하며 살 것인가다.
가까이 있어도 손이 가지 않는 것은 비단 책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내 삶의 많은 것들을 그렇게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럴 수 있다. 곁에 있는 것의 소중함은 미루게 된다. 늘 곁에 있다는 이유로,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뒤로 미루어 둔 사람들은 없었는지 돌아본다. 먼저 안부를 묻지 않아도 괜찮았던 사람, 한 번쯤 연락해야지 하며 지나쳐 버린 이름들. 책을 꺼내지않고 스쳐가듯, 마음도 그렇게 미루어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 이어야 하는 것들이 내 곁에 그대로 있다. 재촉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책들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내가 그들을 읽어 주기를, 아니 어쩌면 지금 내가 그 책을 필요로 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언제라도 펼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지나쳐 버리고 쉽게 미루는지도 모른다. 손이 안간 책들이 바라 보는 앞에서 나는 곧 손을 내밀 것이라 마음 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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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시인ㆍ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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