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은 나의 힐링 음식이다. 달고 짜며 감칠맛 나는 검은 소스와 부드러운 면의 조화가 인생의 맛과 닮아서인지,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졸업식이나 생일 같은 축하의 자리에 어머니가 사주신 자장면이 있었고, 서울 초행길에 버스를 잘못 타고 당황할 때 길라잡이를 자처한 남학생과 마주 앉은 자리에도 자장면이 함께했다.
결혼 후에는 요리학원에서 배운 자장면을 가족을 위해 만들기 시작했고, 서툰 솜씨의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던 그 감동이 고마움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식구들을 아우르는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
아끼는 후배가 이사를 하게 되었다. 자장면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힘드셔서 안된다고 사양했지만, 이삿날에는 마룻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자장면을 먹어줘야 제격이라며 우겼다. 이사 선물로는 아직도 비누나 휴지가 대세인데, 이사하느라 바쁜 날 점심 한 끼를 책임져 주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자장면을 해주겠다는 제의를 할 때가 있다. ‘너는 좋은 사람이야’를 에둘러 표현하는 나만의 날갯짓이다.
살아오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나의 자장면을 먹었다.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들은 내 솜씨가 전문인과는 거리가 있는데도, 검은 소스를 입에 묻힌 채 아침 녘의 원추리꽃처럼 해맑게 웃어 주었다.
나는 이 미소의 의미를 알고 있다. 나의 수고에 대한 답례의 뜻도 담겨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들만이 가진 정겨운 추억을 향한 미소라는 것을.
볶음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춘장을 튀기듯 볶는다. 은근한 불에 볶아낸 춘장으로 소스를 만들어야 고소하고 풍미 깊은 자장면이 된다.
밑간해 두었던 고기와 채소를 팬에 올리며 생각은 자연스레 처음 자장면을 만들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젊은 아이 엄마는 어수선하게 어질러진 부엌에서 국수를 삶고 있다.
유치원생 두 딸은 이미 식탁에 앉아 젓가락을 빨며 몸을 꼬는데, 국수는 좀처럼 익을 기미가 없어 마음이 타들어 간다.
요리학원에서는 생면을 사용해서 삶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서 마른 면을 삶으려니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된다.
드디어 나의 첫 자장면이 완성된다.
“자장면이 다 되었어요” 소리치는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진다.
“아빠, 자장면이 왜 이래? 맛없어.”
“쉿, 그런 소리 하지 마. 엄마가 속상해하시잖아.”
물컵을 들고 부엌을 나서는 내 귀에 부녀의 대화가 꽂혔다.
세월이 쌓이고 자장면 그릇 수가 늘어나도 나는 그날 남편이 아이에게 해주던 말을 잊지 못한다. 내가 먹어 보아도 살짝 설익었던 국수를 아무 말 없이 맛있게 먹어 주던 그 배려심 하나가 평생 나를 붙잡아 주었다.
요즘 들어 마음이 자주 옛 정서를 불러낸다. 자장면도 옛날식 짜장면을 고집하게 되고, 사랑한다는 말 대신 묵묵히 장바구니를 들어주는 마음에 더 무게를 둔다.
“맛있다”라는 짧은 말 한마디에 마음이 따스해지고, 설거지라도 해주는 날은 적금을 탄 날처럼 뿌듯하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친근하게 즐기는 맛, 귀천이 따로 없는 평등한 맛, 설익은 국수도 기꺼이 먹어 주는 사랑의 맛.
이것이, 우리 삶의 자장면이다.
<
조옥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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