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영웅 고 백선엽 장군
▶ 6·25 전쟁 낙동강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 전투 지휘, 미국가안전보장회의·국무부·NYT 등 언론도 백 장군 별세애도…남가주 육군동지회 주최로 백장군 추모식 LA서 200여명 참석
지난 13~14일 이틀간 진행된 백선엽 장군의 추모식에는 200여명이 참석했다. 13일 대한장의사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한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그 동안 저는 백 장군님을 LA에 초청을 하고 싶어 수 차례 준비도 하였는데, 그때마다 건강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백 장군님을 모시지 못한 것이 두고 두고 한이 되고 있습니다”
구 나라은행 이사장을 지내고 6.25 당시 육군 8사단 중대장으로 강원도 양구 지역 전투 등을 지휘한 참전 군인출신인 정용봉 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 회장은 “지난해 9월 한국에 추석 성묘차 방문하는 길에 서울에서 백 장군님을 뵈었는데 그때 뵈온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이나 착잡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백선엽(사진) 예비역 대장이 10일(한국시간) 오후 11시 별세했다. 향년 100세.
1920년 평남 강서에서 출생한 백 장군은 일제강점기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군문에 들어온 뒤 6·25전쟁 때 1사단장, 1군단장, 육군참모총장, 휴전회담 한국 대표, 주중한국대사,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한국군 최초로 대장으로 진급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다.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다부동 전투 때 도망치는 장병들을 모아놓고 “내가 앞장서 싸우겠다. 만약 내가 후퇴하면 나를 먼저 쏘라”며 배수의 진을 쳐 후퇴를 막았던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자신이 겪은 가장 치열했던 전투는 1950년 여름 1사단장으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다부동 전투라고 밝힌 바 있다. 두 달 가까이 부하 장병들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고, 전투 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았다고 증언했다.
전세가 역전돼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할 때는 “나라의 자존심이 걸렸다”며 행군을 강행해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입성해 태극기를 꽂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평양에 입성했을 때가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었다”며 “1사단장으로 한미 장병 1만5,000여명을 지휘하며 고향인 평남 강서를 탈환했다”고 말했다. 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인의 방한 때 한국군 증강 필요성을 브리핑해 참모총장 재임 당시 육군 10개 사단을 20개 사단으로 확대한 일화도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군 내부 남로당 숙청 분위기 속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구명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 장군은 1960년 대장으로 전역한 뒤 외교관과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으며 장관 재직 시절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일제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탓에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이름이 오르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국방대학교 사상 첫 명예군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 8군사령부는 전쟁 당시 한국 방어에 있어 탁월한 업적을 달성했다는 공로로 2013년 명예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좋아하는 고사성어는 ‘상선약수’(上善若水·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인데 이는 ‘기동력 있게, 겸손하게 살고 싶다는 뜻’이라고 백 장군은 설명한 바 있다.
백 장군이 6·25전쟁 당시 겪은 일화 등은 미국 국립보병박물관에 육성 보관되어 있다.
태극무공훈장(2회),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캐나다 무공훈장 등을 비롯해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 ‘2010 밴 플리트 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전쟁 일천일’(1988), ‘군과 나’(1989), ‘실록 지리산’(1992), ‘한국전쟁Ⅰ,Ⅱ,Ⅲ’(2000), 회고록 ‘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다’(2010), ‘노병은 사라지지 않는다’(2012) 등이 있다.
뉴욕타임스(NYT)도 15일 부고기사를 통해 미군에게 백 장군은 한국 군인 중 가장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며 미국 최고 사령관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백 장군을 초대하는 자리를 꼭 만들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는 6.25 전쟁 초기 국군 1사단장으로 다부동 전투 승리를 이끌었던 공로를 미군이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 장군이 이끌었던 부대의 승리는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고 미군이 한강 이남에서나마 주둔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백 장군은 불과 33세에 1953년 1월 육군 대장으로 진급했고, 국군 역사상 최초로 4성 장군에 올랐고 육군참모총장, 휴전회담 한국 대표, 합참의장 등을 지냈다고 보도했다. 이후 대만, 프랑스 대사 등을 지내기도 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지난 12일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백 장군 애도 성명을 냈다. NSC는 “한국은 1950년대 공산주의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백선엽과 영웅들 덕분에 오늘날 번영한 민주공화국이 됐다”며 “우리는 백 장군이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애도하며 그의 유산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이어서 국무부는 14일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미국은 백선엽 장군의 별세에 대해 한국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국무부는 “한국 최초의 4성 장군으로서, 한국전쟁에서 조국에 대한 그의 봉사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한 싸움의 상징”이라며 “미국과 한국은 오늘날에도 이런 가치를 계속 지키고 있다”고 했다.
이어 “백 장군은 외교관과 정치인으로서 위대한 탁월함으로 조국에 봉사했고, 한미동맹 구축을 도왔다”며 “우리가 공유하는 희생의 정신을 바탕으로 그의 봉사에 대해 가장 깊은 조의와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존 틸럴리, 버웰 벨, 제임스 셔먼, 월터 샤프, 빈센트 브룩스 등 역대 한미연합사령관들도 백 장군의 죽음에 대해 애도했다.
‘6·25 전쟁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는 고 백선엽 장군 안장식이 15일(한국시간) 대전시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 장군2묘역에서 엄수됐으며 LA에서도 백선엽 장군에 대한 추모식이 13~14일 LA대한장의사에서 열렸다.
최만규 대한민국 육군협회 미국지부장 겸 남가주 육군동지회장은 “대한민국 육군협회 초대회장및 현 명예회장을 역임한 백선엽 장군을 추모하기위해 미국에서 대한민국 육군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백장군에 대한 추모식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틀간 진행된 추모식에는 박경재 LA총영사와 6.25 및 월남전 참전 유공자, Pete Seitz 미 육군협회 LA 지부장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13일 추모식에서는 백선엽 장군이 1사단장으로 평양 탈환시 선봉에 서서 직접 평양에 최초 입성한 11연대 11중대장 김봉건 대령 등이 참석해 눈시울을 붉히며 추모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정용봉 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 회장은 “미국에 있는 참전용사들과 동포들은 한국전쟁의 누란의 위기에서 조국 대한민국을 구한 영웅 백선엽 장군님의 별세를 슬퍼하면서, 우리 모두가 백선엽 장군님의 우국충정이 역사의 귀감으로 영원히 전해지도록 기원해 주시기를 앙망한다”며 백장군을 추모했다.
<
박흥률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백선엽장군님의 거룩한 정신을 문재인 정부는 인정하지 않으려듯 합니다. 백장군님의 공은 없고 오로지 친일이었다는 것만 부각시켜 흠집내려고만 합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친 의인들보다 세월호와 광주사태 5.18 사건을 뛰우는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쪽눈은 질끈 감고 헌화 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