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대동문회장 역임 유춘식 맥스라이프 USA 대표
▶ 페인팅·파산 변호사 사무실·화장품 제조등 운영, 하계 동문회 개최 등 외대 동문회 발전에 크게 기여…철저한 자녀 교육 성공으로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
고 유춘식 전 남가주외대동문회장은 본인의 비즈니스보다도 더 동문회 활성화에 열과 성을 다했으며 자녀교육성공으로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고 동문들은 회고했다. 사진은 2018년 남가주 외대 송년회 밤 행사.
“외대 동문회를 자신의 비즈니스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분이셨습니다” 남가주 한국외대동문회장을 역임한 유춘식(사진) 맥스라이프 USA 대표의 부인 조앤 유씨는 “남편은 정말 순수한 뜻을 가지고 외대동문회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다”고 회고했다.
지난 17일 급작스런 뇌출혈로 67세의 나이에 별세한 유춘식(사진) 남가주 외대 38대 동문회장은 1953년 1월27일 부친 유복용씨와 심상녀씨 사이에 2녀1남중 4대독자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달리 향학열이 강해 고등학교 때부터 한의학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나중에 미국에 한의를 배우러 유학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성동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사수 끝에 외대 영어과에 입학후 이번에는 중국무술인 십팔기에 심취해 한때 이화여대 앞에 십팔기 도장을 차리기도 했다. 대학졸업후 삼미철강에서 1년간 근무했으며 1977년 조앤 유씨를 만나 1980년에 결혼해 1981년 도미했다. 이민 초기에 한의학을 잠시 공부하다가 페인트 일감 수주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한때 30~40명의 직원을 두고 페인팅 비즈니스가 궤도에 오르기도 했으나 자금부족으로 파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미국인 변호사를 고용, 파산법 법률 사무소를 차려 10여년간 운영하면서 재미를 봤다. 이 와중에 한인타운에서는 초창기에 요가학원을 차려서 요가를 가르치기도 했다. 2004년 속눈썹 영양제와 주름, 기미, 검버섯-엑셀런스 기능성 화장품 등을 출시하는 맥스라이프를 한인타운에서 부인과 함께 창업했다. 세심하고 완벽한 성격의 유회장은 화장품을 생산하는 일을 하고 부인은 마케팅과 상담을 담당했다.
유회장은 자녀들에게 엄격한 교육을 시켜 새벽 4시에 자녀들을 깨워서 요가를 시킨후 학교에 데려다주고 일요일에는 단식도 시행하는 등 자녀들의 정신교육은 물론이고 육체적인 건강을 갖추는 데 각별한 배려를 했다. 유회장의 엄격한 교육 덕택에 2남2녀의 자녀들은 대학 졸업후 경제적으로도 안정됐고 커리어면에서도 성공했다. 첫째 수지, 둘째 제임스가 현재 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셋째 제인은 SpaceX 에서 Human Resource Manager 로 일하고 있으며 넷째 아들 제이는 미혼이며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1명의 손자와 3명의 손녀가 있다.
영어과 75학번인 유춘식 회장은 남가주 외대 38대 동문회장으로 동문회 역사상 처음으로 2018년 6월9일 ‘하계 동문의 밤’ 행사를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팍에서 개최하는 등 외대 동문회 활성화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춘식 회장은 당시 “매년 12월 LA의 호텔에서 수십 년간 총회와 송년회를 가졌으나 교통 혼잡과 거리상 이유로 샌디에고는 물론 어바인 지역에 거주하는 동문들의 참석이 힘들어 OC 모임을 계획했는데 뜻밖에 규모가 커져 모든 동문들이 참가하는 하계 동문회로 명명했다”고 밝혔는데 그동안 동문회 행사에 잘 나오지 않던 동문들이 뜨거운 호응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동문배가 운동을 펼치면서 세대차를 좁히기 위해 젊은 동문의 영입에 힘쓴 것은 물론 나이가 많은 동문들의 기수모임을 따로 조직해 그들을 위로하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2017년 사무총장으로 봉사시 샌타바바라에 하계야유회를 갈 때 현지 답사를 무려 3차례나 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종원 동문(서어과 60학번)은 유춘식 전 회장의 생전에 했던 말을 이렇게 옮기기도 했다. “나는 어떤 일에 집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입니다. 가장 끈끈한 정이 있고 단합된 자랑스러운 동문회가 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아내에게 불평을 들으며 생업보다 더 동문회 일로 일일이 동문들께 전화하고, 오랜지카운티, 샌디에고까지 지역방문을 하며 동문회 일에 집중하다보니 생업포기한 거냐라는 불평을 듣습니다. 그 결과가 헛되지 않아서 향후 외대 동문회는 더욱 단단한 단체로 발전하는데 일조했다고 생각됩니다”
2015년에는 음대가 없는 대학에서 조직된 외대코랄의 초창기 멤버로 참여해 남가주외대코랄 이사장으로 봉사했으며 외대 GCEO 9기를 부인과 함께 수료하기도 했다.
부인 조앤 유씨는 “남편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으며 항상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해 주변에서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고 회고하고 “특히 자녀들에게 항상 형제간의 우의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한국장의사에서 진행된 장례식에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외대동문과 외대 GCEO 원우 등을 합쳐 100여명이 넘는 조문객이 참석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조사 - 영어과 59학번 김수영 선배고 유춘식 영전에,
봄을 심던 춘식, 봄을 따라
이 성하의 계절 추수가 오기 전,
엄동설한 동절은 아직인 이 계절
떠나기 힘든 길 떠났네 그려…
잘 가시게!
가다가 외롭고 힘들면,
가까운 어느 사랑방 찾아 쉬며,
주인장께 두고 온 금수강산, 부모
형제, 이웃 친지
그리고 사랑하는 처, 대견스런 아
들, 딸
귀여운 손주 자랑도 하고…
“가정을 지상 천국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고 하고…
그리고 그 때 자네 성공 자랑도 해.
그러다 그러다
언젠가 천사장 기상 나팔 불면
때마춰 가꿔온 봄을 찬양하게나!
그날까지 쉬엄쉬엄 잘 가시게.
고 유춘식님을 기리며
조사 - 후배 케네스 로(GCEO 11기)고인은 항상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며 학구열에도 불타셔서 본인이 하시는 사업에 대한 탐구와 배움의 열정이 있으셨고 맡은 바 일에 뚝심 있는 모습을 보이시기도 했으나 누가 반론을 제시하면 타당함을 따져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 잡으실 수 있는 용기를 보이시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본인과 주차장에서 뒤로 차를 빼던 운전자가 보행자를 칠 뻔한 것을 소리를 질러 알려 드려 화를 면하게 해 드렸는데 막상 운전자가 보행자 탓을 하며 보행자에게 질책하자 바로 가셔서 운전자에게 “사람이 나고 차가 났지 차가 난 뒤에 사람이 났냐?” 라며 호통을 치시던 이 시대의 어른이었습니다.
많은 현대인이 남의 일에 관여를 싫어하고 행여 본인에게 화가 돼서 돌아올까 말을 아끼실 때 고 유춘식님은 어른으로서 남에게 공명정대함과 지켜야 할 도리를 알려주시는 흔치 않으신 분 이였습니다.
누구에게는 고집이 세고 오지랍이 넓은 사람으로 비칠지도 모르겠으나 저에게는 조금 어수룩하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그분의 모습이 제 인생의 기준이 되어왔습니다.
저에겐 일찍 돌아가신 아버님을 대신하여 제 아버님 같은 분이었고, 제 큰형님 같은 분 이었습니다.
<
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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