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뉴저지 오버팩 공원의 추석맞이 잔치에 유권자 등록 캠페인을 나갔다.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던지 텐트를 쳤다가 다시 걷었고, 세워둔 배너는 부러졌다. 평일이라 큰 기대는 안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다. 후보자 안내 책자를 받아 가고, 유권자 등록을 하고, 이사한 주소도 바꿨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다. “추석 잔치에 오면 시민참여센터가 당연히 나와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 그랬다. 시민참여센터는 1997년부터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뉴욕과 뉴저지의 추석 잔치마다 유권자 등록 부스를 차려 왔다.
그 믿음을 받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선거란 무엇인가. 선거는 민주주의를 정기적으로 손보는 유지 보수 작업이다. 일 못하는 정치인은 바꾸고, 일 잘하는 정치인은 계속 일하게 하는 정기 점검 장치다. 그러나 이 장치는 유권자가 현명할 때만 제대로 작동한다. 관심을 잃거나 정보를 갖추지 못하면 하자 있는 정치인을 그대로 두거나, 일 잘하는 정치인을 버리는 일이 생긴다. 그 순간 민주주의는 흔들린다.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의 침공에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 이를 물리쳤다. 그 뒤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이끌며 힘을 키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맹국들에게 지나친 공물을 요구했다. 불만을 품은 스파르타가 다른 도시국가들과 손잡고 맞서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터졌다. 그런데 정작 아테네를 무너뜨린 건 스파르타의 창칼보다 먼저 아테네 내부의 정치였다. 선동가들이 판을 치면서 시민들은 무리한 원정을 밀어붙이는 등 어리석은 선택을 거듭했다. 결국 아테네는 전쟁에서 졌고, 민주주의는 역사 속으로 저물었다. 훗날 플라톤은 이를 “어리석은 유권자들이 선거로 잘못된 선택을 거듭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로부터 거의 2천 년이 지나서 미국의 독립혁명으로 민주주의가 부활했다. 그렇다면 지금 미국은 민주주의를 잘 정비하며 쓰고 있을까. 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 조사기관 EIU는 매년 세계 민주주의 점수를 매기는데, 올해는 8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 평균 점수가 더 떨어지지 않고 멈췄다. 그런데 미국만은 예외였다. 미국 점수는 2006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7.65점까지 떨어졌고, 2016년부터 이어져 온 “결함 있는 민주주의" 등급을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주의 연구기관 V-Dem은 더 충격적인 진단을 내놨다.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지수가 단 1년 만에 24% 떨어져 조사 대상 179개국 중 20위에서 51위로 추락했고, “자유민주주의"에서 한 단계 아래인 “선거만 있는 민주주의"로 등급이 강등됐다.
특히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는 의회와 사법부의 힘이 100년 만에 가장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프리덤하우스도 미국의 자유 점수가 다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43일간 이어진 사상 최장 정부 셧다운, 220건이 넘는 행정명령과 잇단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의회를 건너뛴 행정부 권한 확대, 그리고 정치적 발언을 이유로 한 위협과 보복이 그 이유로 꼽혔다.
세 기관은 선거 자체는 계속 열리고 있지만, 그 선거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견제와 균형, 의회의 감시 기능, 정치적 타협의 규범이 빠르게 마모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국제기구 IDEA의 올해 민주주의 보고서도 같은 경고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선거라는 절차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 선거로 권력을 견제하는 힘은 여러 나라에서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선거는 있는데 견제는 사라지는 것, 이것이 지금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방식이다.
미국은 남북전쟁과 1960년대 민권운동 같은 큰 위기를 겪고도 제도를 고쳐가며 회복해 온 저력이 있는 나라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에는 저절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뉴욕대 로스쿨 브레넌센터는 양당 구도에 갇힌 선거 제도를 손보고, 대법원과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를 다시 쌓고, 사람들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온라인 알고리즘과 언론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미국인의 69%가 “미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조사 대상 16개 선진국 가운데 그리스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민주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유권자가 관심을 끄고 “내 한 표가 뭘 바꾸겠나" 하고 물러설 때마다, 선거 한 번 한 번을 거치며 조금씩 고장이 난다. 그리고 딱 한 달 뒤인 11월 3일, 그 정비의 기회가 다시 온다. 한인들도 선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민주주의를 유지 보수하는 유일한 방법은 유권자 등록과 투표다, 이사했다면 주소부터 바꾸고, 후보자를 미리 살펴본 뒤, 11월 3일에는 반드시 투표하자.
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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