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30일(현지시간) 이라크의 쿠르디스탄 자치구역 내에 있는 에르빌 기지를 폐쇄하고 이라크에서 철수한다.
2003년 이라크전 개전 시점으로부터는 23년 반만이며, 2014년 미군 병력 재주둔 시점부터 따지면 12년여만이다.
미국은 2003년 3월에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아낸 뒤 5월에 주요 전투작전 종료를 선언했으나, 병력 철수는 2011년 12월에야 완료됐다.
그 후 2014년 6월부터 미국은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 다에시(이슬람국가·IS)와 싸우기 위해 이라크에 다시 병력을 주둔시켰다.
에르빌 기지 폐쇄 예정일 전날인 29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은 철수 시한을 맞추기 위해 장비와 인력을 항공편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미군은 기지 주변에 배치했던 패트리엇 방공포대를 이미 철수시켰으며, 남은 방공 역량을 바그다드에 있는 주(駐)이라크 대사관과 에르빌에 있는 영사관을 보호하는 데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현직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 외교공관 보호를 위해 일부 해병대원이 남고, 이라크가 보유한 F-16 전투기와 미국산 탱크를 정비할 계약업체 인력이 남을 것이라고 WSJ에 설명했다.
미국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라크가 영토에 대한 주권을 유지하고 이란 지원 민병대가 이라크 내 영토에서 공격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미국이 이라크 측에 명확히 당부했다고 WSJ에 말했다.
미국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이 공식 군사작전을 끝내지만 이라크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감시·정찰 등 역내 역량은 유지한다고 말했다.
이번 철수는 미국이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년 전에 당시 무함마드 시아 알수다니 총리가 이끄는 내각과 합의한 일정에 따른 것이다.
WSJ은 "미국이 23년에 걸친 세월과 1조7천억 달러(2천300조 원)가 넘는 비용을 쓰고 난 후 비판론자들이 '끝나지 않는 전쟁'이라고 불러온 이라크 전쟁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이란 사이의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내 중무장 민병대의 영향력이 다시 커지면서 이라크의 불안정성과 위기가 더욱 심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 전쟁이 시작된 2월 말부터 첫 2개월간만 따져도 무장세력과 이란군이 이라크 내 미국 외교·군사 시설을 공격한 횟수는 600차례가 넘는다.
주이라크 미국 대사관은 요즘 미국인들에게 보안 경보를 자주 보내고 있다.
민병대에 의한 납치 가능성에 관한 경보가 1주일에 2차례쯤 나온다.
민병대가 최근 공격에 사거리가 긴 미사일과 드론을 사용하는 등 무기도 고도화되고 있다고 한 미국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이달 들어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 국경 인근 이라크 영토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이는 드론 공격 때문에 자국의 동서 송유관 가동이 일시 중단됐다고 밝혔다.
또다른 공격으로 바그다드 공항의 미국 외교·물류 거점이 피해를 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이라크 내에서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뒤 발생한 것과 같은 후유증이 뒤따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군은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20년만에 공식적으로 끝내고 철군을 마무리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정파 탈레반이 정권을 탈환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후 탈레반이 율법에 기반한 철권통치를 재개했고 해당 지역의 권력공백은 극단주의 무장세력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7월 알리 알자이디 이라크 총리를 백악관에서 만났을 때 이라크 민병대 무장해제에 대한 기대를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우리는 더는 거기에 군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며 "우리에겐 훌륭한 챔피언, 새로운 챔피언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옆에 앉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젊고 잘생겼다"는 칭찬을 들은 알자이디 총리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민병대의 무기 반납 시한을 9월 30일로 정했다고 발표했으나, 이런 계획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은행·보험사·언론사·건설사를 소유한 기업인 출신인 자이디 총리는 올해 5월에 취임하기 전에는 공직 경험이 전혀 없었던 인물이다.
이라크군의 공보 담당자인 사드 만 소장은 WSJ에 일부 무장 파벌이 무기를 반납했으며 다른 단체들 중에도 반납 계획을 세운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에 의해 테러단체로 지정된 준군사조직 '카타이브 사예드 알슈하다'의 카젬 알파르투시 대변인은 "이 무기는 우리의 주권과 자유를 위한 것"이라며 정부의 강제 무장해제 시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속한 단체와 다른 민병대는 정부 부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라크 의회에서도 수십 석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이디 총리 정부의 구성에도 역할을 했다고 WSJ은 설명했다.
자이디 총리와 측근들은 당초 9월 30일로 못 박았던 무장해제 시한을 내년으로 미루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이라크 문제를 담당하다가 올해 들어 공직을 떠난 전 국무부 고위 공무원 빅토리아 테일러는 자이디가 몇 달 만에 민병대를 무장해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불가능한 요구"였다고 WSJ에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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