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은 CNN과 MS 나우, 폴리티코의 백악관 출입을 금지한 데 이어 지난 월요일에는 자신의 24시간짜리 저급한 TV 채널을 출범시켰다.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이름의 ‘트럼프 TV: 디 에센셜스 스테이션’이라는 유튜브 생중계 채널이다. 그러나 이 채널은 실패작이다. 그토록 자랑하던 브랜딩도 별수 없었던 모양이다.
수요일이 되자 이 채널은 시청자의 거의 95%를 잃었다. 볼 것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데일리 비스트는 한때 시청자가 고작 427명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목요일 아침 한 연방법원 판사는 수십 명의 기자들에게 백악관 출입 자격을 임시로 회복시켜 주라고 트럼프에게 명령했다. 기자들의 출입증을 박탈한 조치가 적절한 적법절차 없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도 몇몇 기자들은 백악관 경내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이들은 다시 출입할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서 ‘주의 돌리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이 불필요한 소동은 트럼프가 변덕스럽고 화가 나 있으며 통제 불능 상태라는 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바로 그 언론에 대한 증오로 자신의 존재가 규정되는 듯한 만화 속 안티히어로와 같다. (적어도 조커는 웃기라도 했다.) 트럼프는 여전히 자신의 충동과 저급한 본능에 따라 미국과 세계를 인질로 잡고 있다. 이번 언론 출입 금지와 그 밖의 몇몇 결정으로 그는 마침내 너무 멀리 간 것일까? 그런 것처럼 보인다. 일부 공화당 후보들이 이란 문제를 놓고 그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고, 그를 지지하는 미국인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의 언론 출입 금지는 역풍을 맞았다. ABC와 CBS, 폭스뉴스, NBC를 비롯한 여러 언론사가 출입 금지 조치를 당한 언론사들과 연대해 백악관 행사에 대한 공동 취재단의 TV 영상 취재를 중단했다. 월요일에는 워싱턴포스트를 포함한 일부 언론사와 통신사들이 지지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대통령 행사와 관련된 새로운 사진의 게재를 일시 중단했다.
이는 분명 상징적으로는 만족감을 주는 행동일 것이다. 특히 트럼프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실제로 의미가 있는지, 또는 적어도 트럼프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의미가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한때 대통령과 언론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를 맺고 있었다. 언론은 트럼프에게 이례적일 정도로 폭넓은 접근 기회를 제공하고 사실상 무료 광고나 다름없는 보도를 해줌으로써 그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도움을 줬다.
지지율 하락과 광범위한 조롱에 트럼프가 갈수록 좌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나는 그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하는 것과 같은 국가 통제 언론을 직접 감독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을 부분적으로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는 권위주의 지도자들에 대해 여러 차례 존경심을 나타낸 바 있다.
어쩌면 지난 며칠간의 일은 자신이 어디까지 해도 용인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는지도 모른다. 대통령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언론이 더 이상 나를 보도하지 않으면 뭐가 문제인가? 그는 소셜미디어와 아이러니하게도 ‘트루스 소셜’이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플랫폼을 통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후보 시절 그는 언론인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성공적으로 이용했고, 자신에게 불리한 모든 언론 보도를 끊임없이 ‘가짜 뉴스’라고 비난함으로써 그 불신을 더욱 증폭시켰다. 트럼프가 언론과 싸운 최초의 대통령은 아니지만, 그는 언론이라는 제도 자체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이를 한 단계 더 밀어붙였다.
나는 공화당 대통령과 민주당 대통령, 즉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를 모두 취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백악관 공동 취재단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백악관에 상당한 접근권을 가진 워싱턴포스트의 논평 필자로서였다. 부시와 오바마 어느 쪽도 기자들로부터 부드러운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특히 부시가 그랬다. 그런데도 두 사람 모두 자유롭고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언론이 민주주의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이른바 ‘애국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자유를 향한 용감한 반문화적 행진에 참여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언론을 공격한다. 하지만 국가가 통제하는 언론이 약속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예속이다. 이 애국자들은 정말 정부가 승인한 뉴스만을 원하는 것인가? 그렇게 한다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언론의 본질적 역할을 완전히 놓치는 것 아닌가?
때로는 정치인과 기자 가운데 누가 누구를 더 필요로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서로 적대하는 이들 사이의 밀고 당기는 연애 관계와도 같다. 흥미롭고 중대한 취재 대상이 없다면 기사도 없다. 반대로 언론이 없다면 바로 그 취재 대상은 주류 대중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거나 그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발행하는 데 그치게 된다. 트럼프는 방송사들이 백악관 경내에 새로 설치된 헬리패드를 공개하는 그의 기대를 모았던 행사에 평소와 같은 공동 취재 영상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을 때 후자가 어떤 것인지를 맛봤다.
대통령과 언론이 일상적으로 밀고 당기는 관계에서 상호 존중은 한때 당연한 원칙이었다. 이러한 관계는 양측의 기본적인 품위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서로의 공생적 역할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바탕으로 유지됐다. 트럼프가 그러한 이해를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는 지금과 같은 불행한 대치 상황에 이르게 됐다. 이 같은 적대감이 용인되거나 방치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미국 국민에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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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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