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도전이 멈춘 지금, 온 국민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의 깊이도 깊다. 결과에 대한 엄중한 책임이 사령탑인 홍명보 감독에게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는 작금의 혼란과 소란의 원인이 과연 오롯이 감독의 무능 때문만일까?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우리는 결과 그 자체보다, 과정을 흔들고 여론을 진흙탕으로 만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선동 문화’를 엄중히 짚어보아야 한다.
전문성과 의리를 잃어버린 축구인들과 유튜버들, 가장 안타까운 대목은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선후배 관계의 축구인들과, 전문가를 자처하는 방송 해설가들의 태도 변화다.
대회 전, 이들 축구인들은 미국프로축구(MLS)에서 13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치며 실전 감각이 떨어져있는 손흥민 선수보다, 현재 최고조의 득점력을 보여주는 오현규 선수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 역시 이들의 분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여론을 형성해 왔으며, 손흥민 선수와의 후반 교체로 1차전 오현규 선수의 득점과 2차전 조규성 선수의 활약으로 입증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코칭스태프는 이러한 전문가들의 조언과 각 선수들의 컨디션, 그리고 장기적인 토너먼트 운영(32강 진출을 염두에 둔 부상 및 체력 관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손흥민 선수를 후반에 기용하는 전술적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실패로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왜 손흥민을 일찍 투입하지 않았느냐”며 시류에 따라 비난의 선봉에 서는 모습을 보였다.
일반 팬들과 달리 축구인이라면 경기의 결과와 코칭스태프가 전술적 과정에서 내린 판단을 분리해서 볼 줄 아는 전문가적 식견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함께 땀 흘렸던 선후배 간의 최소한의 도리와 신뢰마저 저버린 채, 결과론적인 비난에 편승하는 것은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적을 만드는 마녀사냥, 악성 루머에 점령당한 사회, 더 큰 문제는 경기 이후 확산되는 광기 어린 여론 형성 과정에서 국회 국민동의청원까지 동원되었고, 홍명보 감독을 향해 “역적죄로 감옥에 보내야 한다”, “연봉과 위약금을 모두 몰수해야 한다”는 감정적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하면 귀국하면 ”살해 하겠다”는 극단적 협박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어제는 홍 감독이 모든 책임을 지고 대표팀 감독을 사퇴 한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우리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의 독일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이자 세계 랭킹1위였던 독일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대한민국에 0:2로 완패를 당하며 충격적인 탈락을 경험했다. 전 세계가 경악한 대참사였다. 독일 축구계와 여론은 감정적인 폭동이나 사령탑을 향한 인신공격으로 일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패배의 원인을 냉정하게 진단했고, 왜 코칭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는지 구조적인 문제를 파고들었다. 요아힘 뢰브 감독에게 책임을 묻는 과정 역시 철저히 축구적인 분석과 절차 속에서 이루어졌다. 격정적인 분노 대신 냉정한 성찰을 택했기에 그들은 다시 일어설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이기에 언제나 승리와 패배가 공존한다.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전술적 실패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며, 냉정한 평가를 통해 협회의 행정 및 감독 선임에서의 절차등 개혁과 쇄신을 밟아나가면 된다. 감정에 휩쓸린 비난은 결국 또 다른 희생양을 만들뿐 시스템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도 실패 속에서 진짜 교훈을 찾는 성숙한 비판 문화를 가질 때가 됐다.
이 차가운 비난과 선동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승리를 향해 변함없는 신뢰를 보내준 이들이 있다. 바로 태극전사들의 경기가 열릴 때마다 시차를 잊은 채 한마음 한뜻으로 뜨겁게 대~한민국을 외치고 응원해 주신 뉴욕·뉴저지 동포들이다. 동포들의 뜨거운 응원이야말로, 무너진 축구계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우리가 진짜 전진할 수 있게 만드는 진정한 힘이다.
동포합동응원을 주도했던 축구인의 한사람으로써 동포 여러분들의 뜨거운 성원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제는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대표선수라는 마음으로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가 서로를 응원하며 새로운 내일을 준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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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덕/전뉴욕한인축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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