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새벽, 한반도에서 시작된 전쟁의 불길은 곧바로 뉴욕의 회의장으로 옮겨붙었다. 총성이 울린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은 이 사태를 단순한 한반도 내의 내전이 아니라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했다. 미국은 즉각적으로 북한의 행동을 ‘침략’으로 규정할 것을 요구했고, 그 결과 같은 날인 6월 25일 채택된 것이 유엔 안보리 결의 제82호였다.
표결 결과는 찬성 9, 반대 0, 기권 1. 전쟁의 성격이 국제법적으로 규정되는 순간이었다.
이 결정 뒤에는 냉전의 또 다른 축, 즉 중국 대표권 문제가 놓여 있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이 수립되었지만, 유엔에서는 여전히 중화민국(지금의 대만)이 중국을 대표하고 있었다.
이에 반발한 소련은 안보리 회의를 보이콧했고, 그 결과 북한 침략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이 ‘소련의 부재’가 결의 통과를 가능하게 만든 결정적 조건이었다.
이틀 뒤인 6월 27일, 전황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서울이 함락되었고, 시간은 더 이상 지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날 채택된 결의 제83호(찬성 7, 반대 1, 기권 2)는 회원국들에게 군사적 지원을 권고했다. 그리고 7월 7일, 결의 제84호(찬성 7, 반대 0, 기권 3)를 통해 미국 주도의 통합군 사령부가 승인되며 ‘유엔군’이 창설되었다.
그렇다면 이 숨가쁜 결정들은 어디서 이루어졌을까?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맨하탄 45가에 위치한 유엔 본부를 떠올리겠지만, 1950년 당시 그 건물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 유엔은 하나의 본부에 모여 있지 않았다. 뉴욕 일대에 기능이 분산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유엔 총회는 주로 플러싱에 소재한 현재의 퀸즈박물관(Queens Museum)에서 열렸다. 다만 이 역시 고정된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이곳에서 시작되었지만, 한때 맨하탄의 Hunter College Assembly Hall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플러싱으로 돌아오는 등 이동을 거듭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다시 플러싱에서 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반면, 한국전쟁의 운명을 가른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전혀 다른 장소에 있었다. 당시에는 롱아일랜드의 레이크 석세스(Lake Success)가 안보리를 비롯한 유엔 사무국의 중심지였다. 오늘날 1111 Markus Ave., New Hyde Park, 11042에 아직도 그 건물이 외관은 변형되었지만 건물 골격은 옛 모습 그대로 서있다.
이 건물은 원래 스페리 자이로스코프 회사의 대규모 연구시설이었다. 약 2만 명이 근무하던 이 시설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대규모 회의실과 통신 인프라를 갖춘 현대적 공간이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엔은 신속히 활동을 시작해야 했지만 자체 본부는 없었다. 그때 선택된 것이 바로 이 건물이었다. 이곳은 임시 유엔 사무국으로 변모했다. 그렇게 군사기술을 개발하던 공간은 국제정치의 심장이 되었고, 그 안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군사 개입이 결정되었다.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유엔군 참전’이라는 말을 익숙하게 사용한다. 그러나 그 결정이 내려진 시간과 공간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일은 드물다. 더구나 당시 유엔이 하나의 본부가 아닌, 플러싱과 맨하탄 그리고 레이크 석세스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분산된 공간 속에서, 국제사회는 하나의 결정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레이크 석세스와 플러싱의 퀸즈박물관, 옛 유엔 사무국 및 안보리 건물과 총회 건물, 이 두 장소를 함께 떠올릴 때, 우리는 비로소 1950년 여름의 국제정치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들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우리 조국의 운명이 세계 속에서 결정된 좌표다.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이라면 특히 뉴욕에 사는 한인들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장소들에 서서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안보 위기 속에서 현재 어떠한 위치에 서 있으며 앞으로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다시 묻는 그러한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주동완/코리안리서치센터원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