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환자들은 대개 “허리가 아프다”, “목이 아프다”, “무릎이 아프다”처럼 증상이 나타나는 부위를 가장 먼저 말한다. 당연한 일이다. 통증은 바로 그곳에서 실시간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의학에서 치료를 구성할 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어디가 아픈가’만이 아니다. ‘왜 그곳이 아프게 되었는가’, 즉 몸 전체의 흐름 속에서 어떤 원리로 병이 생겼는지가 더 중요하다. 겉으로 보기엔 똑같은 허리 통증이라도 그 병의 뿌리는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농부의 허리와 선비의 허리
예를 들어 농부와 선비가 모두 극심한 허리 통증으로 내원했다고 생각해보자. 두 사람 모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는 같은 증상을 호소하지만, 병이 생긴 과정과 메커니즘은 정반대다.
농부의 허리는 과도한 노동으로 근육과 인대가 지치고 손상된 상태이다. 한의학적으로 보면 과로로 기혈이 소모되고, 무리한 움직임으로 허리 주변 조직이 약해진 것이다. 이 경우에는 더 움직이라고 하기보다 쉬게 하고, 손상된 부위를 회복시키며, 부족해진 기혈을 보충하는 치료가 필요하다.
반대로 선비의 허리는 너무 움직이지 않아서 생긴 통증이다.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 근육은 굳고, 골반과 등은 뻣뻣해지며, 기혈 순환이 막힌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기체, 어혈, 담음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이때 무조건 쉬기만 하면 오히려 통증이 오래간다. 선비에게 필요한 처방은 책을 잠시 덮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굳은 근육을 풀고, 막힌 순환을 열어주고, 정체된 기혈을 흐르게 해야 한다. 같은 허리 통증이라도 농부에게는 휴식이 약이고, 선비에게는 움직임이 약이 되는 이유이다.
동병이치(同病異治), 같은 병도 다르게 치료한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동병이치(同病異治)”라고 한다. 같은 병이라도 원인과 체질, 생활습관, 몸의 상태가 다르면 치료법 역시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요통이라는 이름은 같아도 그것이 과로로 생긴 통증인지, 운동 부족으로 굳어진 통증인지, 혹은 냉기(冷氣)나 스트레스로 인해 척추 주변이 긴장해 생긴 통증인지는 환자마다 모두 다르다.
그래서 한의사는 단순히 통증이 있는 부위만 들여다보지 않는다. 환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하루에 얼마나 움직이는지, 잠은 어떤지, 소화는 어떤지, 몸이 차가운지 더운지까지 함께 본다. 병명보다 병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는 것이다.
이병동치(異病同治), 다른 병도 같은 원리로 치료한다
반대로 아픈 부위가 전혀 달라 다른 병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병이 일어나는 속사정이 같다면 동일한 치료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한 사람은 만성적인 목 통증에 시달리고, 다른 사람은 허리 통증에 시달린다고 가정하자. 겉보기엔 별개의 질환 같지만, 두 사람 모두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고정된 자세로 앉아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공통된 원인은 ‘부동(不動)으로 인한 굳어짐과 어혈(瘀血)’에 있다. 움직임이 멈춘 자리에 끈적끈적한 노폐물과 나쁜 피가 고여 주변 근육을 질기게 결속시켜 버린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병의 위치가 달라도 치료 원칙은 비슷해진다. 막힌 기혈을 풀고, 굳은 근육을 이완시키고, 어혈과 습담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치료한다. 이것을 이병동치라고 한다. 병의 이름이나 아픈 부위는 달라도 병이 일어나는 원리가 같다면 같은 원칙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목에 침을 놓는 것만이 목 치료가 아니고, 허리에 침을 놓는 것만이 허리 치료가 아니다. 몸 전체의 흐름을 회복시키는 것이 더 근본적인 치료일 수 있다.
증상은 파도이고 원인은 물결이다.
환자는 보통 병이 나타나는 곳을 본다. 목이 아프면 목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허리가 아프면 허리만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의사는 병이 나타난 곳뿐 아니라 병이 오는 곳, 병이 일어나는 원리를 함께 본다. 통증은 파도처럼 겉으로 드러난 결과이고, 그 아래에는 자세, 과로, 운동 부족, 스트레스, 냉기, 소화 문제, 기혈 순환의 장애 같은 더 깊은 흐름이 있다. 이 원인이 해결되어야 비로소 통증의 지독한 반복을 끊어낼 수 있다. 문의 (703)942-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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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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