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참화가 발발한 지 76년째다. 남북분단 고착화 역사가 쌓여 가는 것과 정비례하여 민족의 회한과 염원도 더하여 사무친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에 시달려 왔다. 그런 탓인가. 외세의 침범에 취약하고 자기만 살아남으려는 본능 DNA가 강해지며 동족끼리 다투는데 능숙한 수치스러운 민족이 되어버린 것 같다.
1960년대 초 서울 S 대학에 와서 1년간 강의하고 떠난 한 외국인 교수가 고별 회견에서 “한국민족처럼 외세에 허약하고 동족 탄압에 잔인한 민족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한 내용이 아직도 가슴을 때린다.
3년간이나 밀고 당기던 6.25전쟁은 세계 2차대전 때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냈다. 전쟁을 치르고도 우리 국토는 분단상태 그대로이다. 평화 무드의 진전은 커녕 북 정권의 발광으로 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있다. 우리 민족은 무비판적으로 강대국들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남북이 제각각 받아들였다. 민주주의는 1800년대 중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을 더하여 시작된 것이고 공산주의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엥겔스의 잉여가치론과 레닌의 무산계급 노동자의 권익옹호 투쟁을 시작으로 출발하였다.
이 같은 민주, 공산 양 진영의 사상을 놓고 강대국들의 패권경쟁에 가장 격렬하게 직접 맞붙은 현장이 우리 한반도에서 벌어진 6.25사변이다.
그러니 세계의 역사가들이 한반도의 6.25전쟁을 강대국들 앞잡이가 된 남북지도자들의 치킨게임이었다고 비웃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아직도 깨달음이 없어 보인다. 정치 지도자들이 개인 영달, 권력 장악 탐욕만 있고 철학이 없다. 우리는 남쪽 한편에서 아직도 의기양양하게 6.25 노래를 부르고 있다.“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들(하략)”
북쪽 한편에서도 “반동 테러에 쓰러진 동무 원수를 찾아서 떨리는 총칼(중략) 조국의 자유를 팔려는 원쑤 복수에 끓는 피 용솟음친다….”
이제는 이따위 얼빠진 노래는 남북 모두가 멈춰야 한다.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에 하수가 되어 우리 민족끼리 그만큼 잔인무도한 전쟁, 희생을 당하지 않았나. 76년이나 세월이 지났는데도 공산, 민주사상의 실체를 파악 못 하고 오히려 그 사상들에 중독되어 계속해서 원수, 복수 타령을 외우다니 참담한 일이다.
우리는 “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가르침 한마디만 공유하고 실천했어도 분단의 세월이 그리고 비극의 역사가 훨씬 단축됐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우리 민족의 슬기와 지혜를 믿는다. 6.25 민족 비극은 남북 모두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 비극을 들춰내 쌍방 비난, 공격자료로 활용하는 태도는 어리석고 우둔함을 자인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6.25는 우리 민족 모두가 반성하고 통일을 다짐해야 할 역사적 교훈이자 근거이다. 우리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세계적으로 단거리 육상 최우수 선수였던 북한의 신금단과 전쟁 중에 남쪽으로 내려와 자리잡고 살던 그의 아버지 신문준 씨의 7분간 부녀 상봉에 다 같이 울었다. 91년 일본 지바현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을 만들어 출전했던 감격도 잊지 않는다. 이때 남한의 현정화, 북한의 이분희 선수가 복식 결승에서 최강 중공(중국) 팀을 꺾었다. 영광의 금메달을 딴 그들의 등위에는 ‘KOREA’라는 명칭과 함께 한반도 기가 걸려있었다. 그때도 우리는 다 같이 감격에 겨워 울지 않았던가.
우리 민족의 진면목은 화합과 통일추구이다. 여러 번 남북교류가 활발했던 기회가 있었으나 그럴 때마다 남북정권의 체제고집과 상호불신으로 무산돼왔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남한보다 우세할 때는 남북 총선거 제안까지 해온 적이 있었으나 북한의 지역비례 주장과 남한의 인구비례 고수가 맞붙어 무산되었다. 이제는 남한의 눈부신 경제 발전으로 국력이 한껏 우세해지자 북한이 체제 보장의 위기를 통감한 나머지 남한과의 접촉 자체를 적극 거절하며 심지어 분국론까지 주장하고 있다. 남북 영구 분단은 제2의 6.25전쟁 예고편이 아닌가. 저절로 탄식이 나온다.
모윤숙 시인은 6.25 전쟁 중에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란 시를 썼다.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이 시를 읽으며 옷깃 여미고 슬픈 마음으로 6.25전쟁과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해본다. (571)326-6609
<
정 두루미 페어팩스,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