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지 하루 만에 급락하며 글로벌 증시를 강타했다.
인공지능(AI) 투자 수익성 회의론, 금리 인상 우려, 과도한 쏠림에 따른 포지션 청산이 동시에 터진 '3중 충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나스닥 종합지수는 2.2% 하락했고 S&P 500 지수도 1.4% 내렸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7.87% 급락했다.
엔비디아가 4.1% 떨어지며 시가총액이 5조달러(약 7천680조원) 아래로 내려앉았고 마이크론과 퀄컴은 각각 13.2%, 8.0% 급락했다.
코스피 지수는 전날 10% 폭락했으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도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파이낸셜타임스(FT)·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이번 급락의 배경으로 세 가지 요인을 지목했다.
◇ AI 회의론 + 금리 우려 '이중 충격'
스위스계 글로벌 자산운용사 픽테 자산운용의 아룬 사이 수석 멀티에셋 전략가는 "AI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는 동시에 미국 경제 성장이 강해 금리 인상 우려가 높아지는 이중 충격"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자산운용사 누빈의 로라 쿠퍼 매크로 크레딧 책임자는 "투자자들이 천문학적인 AI 인프라 지출에 대한 수익률에 점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 웰스매니지먼트의 리사 샬렛 최고투자책임자(CIO)는 "AI 모델이 점점 범용화·상품화되면서 가장 저렴한 모델로 이용이 몰릴 것"이라며 "이런 비즈니스 모델들은 더 경기순환적으로 변하고 금리에 훨씬 더 민감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중동 분쟁발 물가 상승에 대응해 금리를 올릴 뜻을 내비쳤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연준이 9월부터 올해 3차례에 걸쳐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선물 시장은 10월 0.25%포인트 인상을 이미 완전히 반영하고 있다.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는 이달 들어 0.04%포인트 올라 4.5%를 기록했다.
◇ "구조적으로 더 취약"…반도체, 금리 민감도 부각
금리 인상 우려가 반도체 업종을 특히 세게 짓누르는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라이프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줄리아 헤르만 글로벌시장 전략가는 "반도체는 구조적으로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보다 변동성이 크고 경기순환적"이라며 "긴축 정책의 결과에 더 직접적으로 노출된다"고 말했다.
AI 인프라 투자 자체에 대한 근본적 의문도 제기된다.
알파벳·아마존·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은 향후 5년간 수천억 달러를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쏟아붓겠다고 밝혔지만, 이 투자가 언제 가시적인 수익으로 돌아올지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도미니크 윌슨·비키 창 애널리스트는 "AI 관련 부문 외 전반적인 경제는 1990년대보다 훨씬 덜 견고해 어떠한 충격에도 시장이 특히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코스피가 10% 가까이 급락해 8,200선을 간신히 지키며 마감한 23일(한국시간 기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910.71포인트(9.99%) 내린 8,203.84로 거래를 마쳤다. [연합]
◇ 한국발 레버리지 청산이 낙폭 키워
아시아 증시 급락은 미국 반도체주 투매의 악순환 고리가 됐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를 2배로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하락장에서 목표 배율을 유지하기 위해 기초자산을 기계적으로 쏟아내면서 그 충격이 미국 시장으로 번졌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이 상품들은 5월 말 출시 당시 합산 자산이 4조6천억원이었지만 이날 기준 약 14조원으로 불어나 있었으며 보유자의 92%가 개인 투자자였다.
골드만삭스는 코스피 지수가 5% 움직일 경우 옵션 딜러들의 헤지 조정만으로 약 47억달러(약 7조2천억원)의 리밸런싱(자산 재조정) 물량이 쏟아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는 평상시 하루 전체 거래량의 8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바클레이즈는 지난 5월 15일 급락 당시에도 레버리지 ETF 리밸런싱 규모가 SK하이닉스 일일 거래량의 17%, 삼성전자의 10%를 각각 차지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해당 ETF 출시를 막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 "추가 10∼15% 하락 가능…그래도 매수 기회"
이번 급락이 단기 과열 해소에 그칠지, 더 깊은 조정의 시작일지를 놓고 시각이 엇갈린다.
미국 투자은행 BTIG의 조너선 크린스키 수석 시장 기술전략가는 "단기 반등 여부와 무관하게 반도체 업종에서 추가 10∼15% 하락 위험이 있다"며 이번 급락을 '칩렉(Chip-Wreck·반도체 난파)'이라고 불렀다.
CLSA의 알렉산더 레드먼 수석 주식 전략가는 서울 콘퍼런스에서 "이런 변동성이 나타나는 것이 불안하다. 시장이 매우 과열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번 조정을 매수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마이크론과 샌디스크는 이날 급락에도 불구하고 올해 수익률이 각각 269%, 727%에 달한다.
자산운용사 GMO의 벤 인커 자산배분 공동 책임자는 "이 종목들은 정말 놀라운 랠리를 펼쳤다. 조정을 받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 웰스매니지먼트의 샬렛 CIO도 "큰 그림에서 보면 지금은 파는 것보다 사는 쪽이 낫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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