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상한제 국민투표 부결
▶ 10만명 서명받으면 국민투표 요건
▶ 이해관계 정책 등 툭하면 투표 관행
▶ “사회적 비용 늘고 갈등 증폭”불구
▶ “영원한 패자 없어 결국 결속” 순기능
직접민주주의의 폐해인가, 아니면 국민을 결속시키는 도구인가.
14일 스위스에서 치러진 인구상한제 찬반 국민투표는 결국 부결(찬성 45.21%·반대 54.79%)됐지만 빈번하게 실시되는 국민투표 제도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직접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스위스에선 연평균 4회 각종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가 이뤄지는데 투표 남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고 갈등만 증폭시킨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극우성향 스위스국민당(SVP)이 발의한 총인구를 1,000만 명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인구상한제 역시 막판까지 찬반이 팽팽히 맞서면서 이민을 둘러싼 스위스 사회의 분열만 드러냈다는 평가도 있다. 발의안이 통과됐다면 스위스 정부는 2050년까지 인구를 1,000만 명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이민 규제, 외국인 거주자 가족의 입국 거부, 유럽연합(EU)과 맺은 자유로운 이동 협정(솅겐조약) 파기 등을 감수해야 했다.
토마스 마터 스위스국민당(SVP) 의원이 14일 스위스 아르베크르의 한 투표소에서 이번에 국민투표에 부친 인구상한제 발의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국민투표가 빈번한 건 낮은 발의 요건 때문이다. 특정 현안에 대해 1년 6개월간 10만 명의 지지서명만 받으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이해관계가 갈리는 정책이 늘면서 1970년까지만 해도 연평균 1건이었던 국민투표는 21세기 들어 4회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지지 서명을 조작하는 등의 문제가 벌어지기도 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몇 년간 부유세나 여성징병제, 이민 제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한때 스위스의 안정을 지탱했던 메커니즘이 오히려 논란과 분열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인다”고 진단했다.
실제 통과율은 낮다. 1891년 이후 연방 차원에서 229건의 발의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이뤄졌는데 가결된 건 26건에 불과하다. 지난해 실시된 여성병역 의무화, 초부유층에게 50%의 상속세를 물리자는 부유세 도입안도 모두 부결됐다. 투표를 경솔하게 실시해 유권자들의 불만만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그러나 현지 전문가들은 한국일보에 국민투표의 순기능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뇌샤텔대 이주와 시민권 분야 석좌교수인 지아니 다마토는 “이민이라는 복잡한 문제에 단순한 해답을 요구한 인구상한제처럼 국민투표는 감정적인 캠페인으로 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한 문제로 만드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시민들에게 실질적 발언권을 주고 정치 엘리트들이 국민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스위스 정치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같은 대학의 인구지리학 교수인 에티엔 피게 역시 “이민 국가로서 스위스가 성공한 것은 이민 문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고 국민들이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현할 기회를 가진 덕분”이라며 “유럽에서 스위스처럼 이민 문제를 국민에게 직접 물어볼 용기가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그것이 오히려 스위스 정치의 성숙함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취리히에 본사를 둔 여론조사기관 소토모의 대표 미샤엘 헤르만도 “국민투표는 분열을 드러내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며 “어떤 투표 결과도 완전히 최종적이지 않다. 어제의 패자가 오늘의 승자가 되고 그 반대도 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집단도 영구적으로 배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민 비중이 높은 스위스에서 외국인 통합이 잘 이뤄지는 이유 중 하나도 이민 문제를 반복적으로 국민투표에 부치며 문제를 억누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국민투표는 오히려 신뢰와 국가적 결속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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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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