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대통령만큼 운이 따르지 않은 정치인도 드물 것이다. 1972년 1차 오일 쇼크와 워터게이트로 얼룩진 미국 경제와 정치를 되살리겠다며 백악관에 들어갔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고질적인 인플레를 치유하기도 전에 1979년 이란 혁명과 함께 제2차 오일 쇼크가 왔고 이란에 있던 미국 대사관 직원이 인질로 잡히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독수리 발톱’ 작전을 감행했지만 사막 폭풍에 휘말려 미군 8명이 죽고 4명이 부상당하는 망신만 당했다. 소련과의 데탕트를 위해 노력했지만 소련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퇴임 직후 바닥이었던 그의 평가는 그가 무주택자를 위한 집짓기 등 사회 봉사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올랐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가 재임 기간 중 한 일도 많았다. 항공 산업을 비롯한 교통 운수업에 관한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해 비행기 요금 등 운송료를 대폭 낮췄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중재해 캠프 데이빗 평화협상을 마무리지었고 미국 소유였던 파나마 운하를 자진해서 파나마에 돌려줬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업적은 1979년 매파 중의 매파 폴 볼커를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FRB) 의장에 앉힌 일이다. 볼커는 인플레의 근본 원인은 돈이 너무 풀렸기 때문이며 그 치유책은 금리를 올려 통화량을 줄이는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카터의 참모 중 일부는 그를 지명할 경우 고금리로 인한 불경기와 실업자 양산이 불가피하고 이는 올 1980년 대선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카터는 볼커를 면담한 후 그가 적임자라고 판단하고 지명을 강행했다.
그 후 볼커는 약속대로 1981년 연방 금리를 20%까지 인상했고 1980년 13.5%를 기록했던 인플레는 이를 정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1968년부터 1983년까지 15년을 ‘대인플레 시대’라 부른다. 이 기간 물가는 매년 평균 7.3%씩 올라 총 186%의 상승을 기록했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상식을 알고 있는 것은 볼커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금리에는 희생이 따른다. 높은 이자 비용을 내야하는 기업과 국민은 이를 내리라고 아우성을 치고 이는 FRB 의장에 대한 정치적 압력으로 나타난다. 볼커 이전에도 금리를 몇번 올린 적은 있었으나 이런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곧 내리는 바람에 인플레가 악화일로를 걸었던 것이다.
볼커 재임 기간 고금리에 불만을 품은 남성이 엽총을 들고 FRB 본부에 난입한 적이 있었고 볼커가 연설하는 곳에 누군가 쥐를 풀어놓은 적도 있었다. 레이건이 집권한 후에도 금리를 내리지 않자 당시 제임스 베이커 비서실장은 금리를 내리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하달하기도 했다.
그래도 볼커는 굽히지 않았고 1984년 인플레는 5%대로 떨어졌다. 그 후 40년 가까운 세월 미국은 낮은 인플레를 유지해왔고 이것이 미국이 선진국 중 가장 견실한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FRB를 정치적 압력에서 지켜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의장의 제일 책무임을 보여준 셈이다.
저인플레 시대는 팬데믹 사태 이후 집권한 바이든 행정부가 경기를 살린다며 무분별한 보조금 지급 등 팽창 예산 정책을 펴고 제롬 파월이 이끄는 FRB도 초저금리에다 통화량을 늘리면서 끝났다. 인플레는 한 때 연환산 9%를 기록하며 40년래 최악을 기록했으며 이것이 민주당이 정권을 빼앗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파월이 뒤늦게 금리를 5%대로 올리면서 인플레도 진정 국면으로 들어갔지만 FRB는 다시 금리를 인하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도널드 행정부는 FRB가 말을 듣지 않자 리사 쿡 이사가 취임 전 모기지 신청 문서에 허위 사실을 기재했다는 이유로 연방 형사범으로 기소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하고 이를 근거로 해임했다. 쿡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고 연방 대법원은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직위를 유지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도널드 행정부는 또 파월 의장이 FRB 빌딩을 보수하면서 의회에서 허위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이에 관한 연방 검찰 수사를 개시했다. 이에 대해 파월 의장은 이는 금리 인하를 하라는 정치적 압력일뿐이라며 맞서고 있다. 파월은 집권 1기 때 도널드가 직접 지명한 인물이다.
도널드는 올 5월로 임기가 끝나는 파월 후임으로 케빈 워시 전 FRB 이사를 지명했다. 도널드는 그를 지명하면서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그를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했다. 워시는 비교적 FRB의 독립성을 신봉하는 인물로 시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으나 그가 앞으로 계속될 도널드의 압력을 버텨낼 수 있을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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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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