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체(Lecce)… 돌이 꽃으로 피어나는 도시
레체에서 나흘을 머물렀다. 하루 동안 지나쳤다면 화려한 성당 몇 곳만 보고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침과 한낮, 저녁의 골목을 거듭 걷자 도시는 매번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건축이 눈에 들어왔고, 다음에는 돌을 다듬은 장인의 손이 보였으며, 마지막에는 그 오래된 돌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레체의 건축물은 멀리서 보면 황금빛 덩어리처럼 단단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돌은 꽃과 잎, 천사와 성인, 새와 짐승의 모습으로 피어나 있다. 이 지역의 부드러운 석회암 ‘피에트라 레체세(Pietra Leccese)’는 장인의 끌을 만나 섬세한 레이스로 변했다. 사람들은 레체를 ‘남부의 피렌체’라 부르지만, 어느 도시와 비교하지 않아도 레체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1548년 카를 5세를 기리기 위해 세운 포르타 나폴리를 지나 구시가지로 들어섰다. 그 길 끝의 산토론초 광장에서는 로마와 현대가 자연스럽게 이웃하고 있었다. 카페와 상점이 둘러싼 광장 한가운데에는 20세기 초 공사 중 발견된 로마 원형경기장이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높은 원주 위에서는 도시의 수호성인 산토론초가 레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로마와 중세, 바로크와 현대가 한 광장에 모여 함께 살아간다.
레체 바로크의 절정은 산타 크로체 성당에서 만났다. 정면을 가득 채운 기둥과 천사, 그리핀과 사자, 사람의 얼굴과 꽃무늬는 돌로 만든 거대한 축제 같았다. 장엄한 오페라처럼 화려하면서도 조각 하나하나가 놀랍도록 정교하고 생생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의 격정은 고요로 바뀌었다. 외벽에서 기쁨에 겨워 춤추던 돌이 내부에서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듯했다.
두오모 광장은 또 다른 방식으로 여행자를 놀라게 했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는 순간 대성당과 주교관, 신학교 건물과 높이 솟은 종탑이 하나의 거대한 무대처럼 펼쳐졌다. 출입구가 하나뿐인 ‘닫힌 광장’이어서 바깥의 소음은 문밖에 머물고, 안에는 빛과 돌, 사람의 발소리만 남았다. 자전거와 여행자, 뛰어노는 아이들이 수백 년 된 건축물에 따뜻한 생기를 더했다.
대성당 안에서는 흰 기둥과 황금빛 천장이 긴 시선을 이끌었고, 지하 묘실에서는 굵은 기둥 사이로 낮은 침묵이 흘렀다. 지상의 바로크 장식이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면 지하에서는 장식도 목소리도 한결 낮아졌다. 그곳에서 신앙은 보여주기 위한 예술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견뎌온 마음처럼 느껴졌다. 레체의 교회들은 화려함과 침묵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종탑 위에서 내려다본 레체는 아래에서 보던 도시와 전혀 달랐다. 황토빛 지붕과 종탑, 돔과 좁은 골목이 지평선까지 이어졌다. 높은 산도 큰 강도 없는 평원 한가운데 인간의 손으로 빚은 돌의 숲이 펼쳐져 있었다. 골목에서 거대해 보이던 성당들도 그곳에서는 ‘레체’라는 긴 이야기 속 한 문장처럼 고요히 자리하고 있었다.
가장 뜻밖의 장소는 파자노 박물관이었다. 2001년 집주인 루치아노 파자노가 하수관을 고치려고 바닥을 파기 시작하면서 로마시대 유물과 중세의 통로, 우물과 무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간단한 수리는 세 아들과 함께한 7년간의 발굴로 이어졌고, 평범한 집은 2천 년의 시간을 품은 박물관이 되었다. 레체에서는 집의 바닥을 조금만 파도 역사가 나온다는 말이 결코 과장처럼 들리지 않았다.
나흘이 지나며 마음에 남은 것은 성당의 화려한 조각만이 아니었다. 돌벽 곁에 세워진 민트색 스쿠터와 카페 그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광장을 가로지르는 자전거와 지붕 위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는 익살스러운 노동자 조형물도 기억에 남았다. 위대한 예술만 있었다면 레체는 아름다운 박물관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 예술 사이에서 웃고 걷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도시는 따뜻한 생명을 얻고 있었다.
레체에서 돌은 단순한 건축 재료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믿음이었고 권력과 영광의 기록이었으며, 이름을 남기지 못한 장인들의 평생이었다. 햇빛을 받은 돌은 황금빛으로 빛났고 해가 기울면 오래된 꿀처럼 짙어졌다. 이 도시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돌이 꽃처럼 피어났다는 데만 있지 않았다. 수백 년 전에 피어난 그 꽃이 오늘도 사람들의 일상을 감싸고 있다는 데 있었다. 레체를 떠난 뒤에도 그 돌꽃은 시들지 않고 여행자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피어나고 있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