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AI 안경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바라보는 사물을 AI가 알아보고, 눈앞의 문장을 번역하며, 길을 안내하고 필요한 정보를 렌즈 위에 띄워주는 안경이었다. 이제 안경은 흐린 것을 교정해주는 도구를 넘어 보고, 읽고, 해석하는 또 하나의 눈이 되어가고 있다.
기사를 읽다가 문득 긍재 김득신의 《밀희투전도(密戱鬪錢圖)》 속 조선의 안경이 떠올랐다. 투전판에 몰두한 사내들 가운데 한 사람이 둥근 안경을 쓰고 있다. 지금처럼 귀 뒤로 거는 단단한 다리는 없고, 렌즈 양옆에 가느다란 끈을 매어 귀에 걸어 고정했다. AI 안경이 센서와 카메라, 인공지능을 품고 있다면 초기 안경은 끈 하나에 의지해 눈앞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몇백 년 사이 렌즈가 지나온 거리가 놀랍다.
조선에 안경이 전래된 것은 16세기 말, 임진왜란을 전후한 무렵으로 추정된다. 정조 역시 말년에 시력이 약해져 안경에 의지했다. 《정조실록》에는 경전의 글자를 안경 없이 알아보기 어려워진 그의 고충이 기록되어 있다. 학문과 정사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왕에게 안경은 세상을 계속 읽기 위한 도구였을 것이다. 그러나 렌즈는 흐린 글자를 밝혀주어도 글의 뜻과 옳고 그름까지 판단해주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본 것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몇백 년이 흐른 지금 안경은 전혀 다른 눈을 갖기 시작했다. 카메라와 센서가 사물을 읽고 AI가 그 의미를 설명한다. 이전의 안경이 빛을 굴절시켰다면 오늘의 안경은 빛을 데이터로 바꾼다. 그런데 기술이 더 정확하게 볼수록 질문 하나가 남는다. 우리는 과연 더 잘 보게 된 것일까.
AI는 수많은 픽셀을 분석하고 사물을 인간보다 빠르게 구별한다. 그러나 눈앞에 우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의 슬픔까지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굴을 인식하는 것과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오래 바라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말하지 않은 상처와 망설이는 표정, 침묵 속에 숨은 마음 같은 것들이다.
인간의 눈은 불완전하다. 흔들리고, 늙고, 때로 눈물이 고여 앞을 흐린다. 얼마 전 지인의 장례식에 갔다. 영정 앞에 선 사람들은 눈물을 닦았다. 나도 영정 속 얼굴을 보니 눈물이 났다. 사진 속 얼굴이 흐려졌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과 함께 나눈 시간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눈앞은 흐려졌는데 오히려 그녀에 대한 기억은 더 또렷해졌다. 눈물 때문에 눈은 흐려졌지만 그 사람을 더 깊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머지않아 안경 하나가 건물과 사람과 상품 위에 수많은 정보를 겹쳐 보여주는 시대가 온다. 그때 우리는 정보의 파고를 어떻게 탈 것인가 하는 문제에 더 자주 직면할 것이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을 것인가, 때로 무엇을 보지 않을 것인가를 판단하는 힘이 더 필요한 세상으로 나아간다.
기술은 인간의 시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하고 있다. AI 안경은 이제 우리의 시선 자체를 시험하고 있다. 기술이 치밀해질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정밀한 렌즈로 어느 방향의 빛을 따라갈 것인지, 그것이 헛된 욕망의 반사광은 아닌지 가려내는 안목이다. 나는 그것을 마음의 광학(光學)이라 부르고 싶다. 그 안목은 끝내 사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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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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