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전 세계에 동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개별 국가의 디지털 규제가 국제 통상 쟁점으로 비화하고 있다. 데이터의 국가 간 자유로운 이전 제한, 플랫폼 경쟁 규제, 데이터 현지화 요구 등은 상대국 입장에서 새로운 형태의 비관세장벽으로 인식된다. 대규모 글로벌 플랫폼 기업을 다수 보유한 미국은 한국의 망 이용대가 입법 추진, 위치정보 및 개인정보의 국외 이전 요건, 공공 클라우드 보안인증제(CSAP),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 등 각종 디지털 규제를 주요 무역 현안으로 제기하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양국 간 갈등의 핵심은 규제의 목적과 집행 방식에 대한 구조적 시각차에서 기인한다.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상 국외 이전 규제는 개인의 자기 정보 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주권 행사이지만 글로벌 분산 데이터 센터를 활용하는 미국계 기업에는 과도한 준법 비용과 서비스 제약으로 작용한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 역시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과 소비자 보호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매출액이나 이용자 수 등 정량적 기준을 설정할 경우 국내외 기업을 형식상 차별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구글·메타 등 미국계 빅테크 기업이 집중적으로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사실상의 차별이 발생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은 반독점 소송, 법원 판결 중심의 사후적 독점 규제를 선호하는 반면 한국은 유럽식 사전 규제 모델을 도입하면서 충돌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규제 갈등의 단면은 최근 미국계 모회사를 둔 국내 대형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제재 국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해당 기업이 상품 검색 순위 조작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연이어 고발 조치를 당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과징금을 받자 미국 투자자들과 의회는 이를 단순한 법 집행이 아닌 외국계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로 규정했다.
미국 측은 여러 정부 기관의 동시다발적인 행정조사, 변호사-의뢰인 비밀 유지 특권의 미비, 과징금 산정의 비례성 결여 등 적법절차 문제를 통상 쟁점으로 공식화했다. 이 사례는 한미 간 규제 집행의 정당성과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이견이 통상 분쟁으로 직결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같은 통상 마찰을 해소하고 합리적인 규제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규제 주권과 국제 통상 규범을 조화시키는 다각도의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다. 우선 원칙적으로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비차별적 규제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제도를 설계할 때 해외의 사전 규제 모델을 맹목적으로 답습하기보다 시장 역동성을 해치지 않는 균형 잡힌 접근을 취해야 한다. 또 새로운 디지털 규제는 해외 사업자에 대한 실효적 집행이 어려워서 국내 사업자만 옥죄는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규제 집행의 투명성과 절차적 적법성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국내외 사업자를 막론하고 동일한 위법성 판단 기준과 과징금 산정 원칙을 적용하고 그 과정을 대외적으로 명확히 공개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고강도 제재일수록 과잉 금지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영장주의에 준하는 엄격한 절차적 통제와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 아울러 디지털 규제 입법 단계에서 규제영향평가 시 통상 영향평가제도를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안 도입이 초래할 외국계 기업에 대한 사실상 차별 여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국제 규범과의 정합성, 국경 간 데이터 이동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사전에 체계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결국 한미 디지털 규제 갈등의 해법은 자국의 규제 주권을 무조건 포기하거나 외국 기업에 특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공익과 이용자 보호라는 규제 주권을 견지하되 규제 절차와 내용의 비례성·공정성·투명성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역시 시장이나 산업 여건상 특별한 규제가 정당화되는 경우 등 합법적인 공익 규제를 무조건 무역장벽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법체계와 사회적 특수성을 존중해야 한다. 종국적으로는 한미 양국 간 상호 신뢰와 이익에 기반한 공통의 디지털 규범을 마련해 나갈 때 갈등 해결을 위한 지속 가능한 해법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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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한국정보통신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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