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미국에서 한 환자가 특별한 주사를 맞았다. 늙은 세포의 시계를 젊은 쪽으로 되돌리는 ‘세포 리프로그래밍(cellular reprogramming)’ 치료제가 사람에게 처음 투여된 것이다. 녹내장 등 시신경 질환 환자의 눈에 주입하는 1상 안전성 시험이어서 ‘회춘 주사’라 부르기엔 이르지만 동물실험에 머물던 ‘노화의 역전’이 마침내 사람을 대상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오래 살려는 욕망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됐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 헤맸지만 49세에 세상을 떠났다. 2200여 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노화에 도전한다. 노화 세포 제거, 유전자·세포 치료와 재생의학까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장수산업’에 자본이 몰리고, 인공지능(AI)으로 노화 속도를 재고 질병 위험을 예측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물론 신중해야 한다. 세포의 나이와 사람의 노화를 되돌리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젊게 되돌린 세포가 암으로 변하지 않는지 등 장기 안전성도 검증돼야 한다. 그럼에도 노인성 질환을 하나씩 치료해온 의학이 노화의 기전 자체를 조절하려 한다는 점은 중요한 변화다.
지난 한 세기 수명 연장만으로도 인류는 놀라운 성취를 이뤘다. 공식 최장수 기록은 프랑스 잔 칼망의 122세다. 우리나라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1970년 62세였던 기대수명은 2024년 83.7세로 늘었다. 영양과 위생, 예방접종과 항생제, 건강검진, 암과 심뇌혈관질환 치료의 발전 덕분이다. 암도 더 이상 곧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내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3.7%에 이른다.
그런데 수명 통계 뒤에는 덜 주목받는 숫자가 있다. 질병이나 장애 없이 사는 기간, 즉 ‘건강수명’이다. 2024년 우리 국민의 건강수명은 남성 64.6세, 여성 66.4세로 전년보다 오히려 줄었다. 질병을 안고 사는 기간이 남성 약 16년, 여성 20년에 이른다. 수명은 늘었지만 아픈 채로 사는 시간도 함께 길어지는 ‘유병장수’가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오래’가 아니라 ‘늘어난 시간을 어떤 상태로 살 것인가’다. 100세까지 살더라도 마지막 20년을 치매나 뇌졸중 후유증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한다면 장수를 축복이라 말하기 어렵다. 개인에게는 존엄의 문제이고 가족에게는 돌봄의 부담이며 국가적으로는 의료비와 요양비 증가로 이어진다.
따라서 보건의료 정책의 목표도 수명 연장에서 건강수명 연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때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어도 잘 관리하며 스스로 걷고 생각하고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면 건강한 노년이다. 질병의 유무를 넘어 신체적·인지적 기능과 자립 능력을 중심으로 건강수명을 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다행히 건강수명을 늘리는 방법은 이미 상당 부분 알려져 있다. 70대의 심근경색과 뇌졸중은 40~50대부터 혈압·혈당·콜레스테롤과 흡연을 관리해야 막을 수 있고 그 위험은 20~30대부터 조용히 쌓인다. 치매와 노쇠 역시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운동과 영양, 청력과 인지 기능, 근감소증, 사회적 고립까지 생애 전반에 걸쳐 관리해야 한다.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주사가 흡연과 고혈압으로 상한 혈관까지 되돌리지는 않는다. 장수 기술은 이 기본 위에 더해질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그 기술이 누구에게 닿느냐다. 값비싼 장수 기술이 일부 계층의 특권이 되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마저 소득에 따라 나뉘는 새로운 건강 격차가 생긴다.
효과가 입증된 기술은 건강보험 등 공적 보장 범위에 포함해야 하고 그보다 먼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예방을 국가가 촘촘히 뒷받침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장수의 모습은 분명하다. 120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100세가 되어서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시간이다. 지난 한 세기 의학이 ‘더 오래 사는 시대’를 열었다면 이제 우리의 과제는 ‘더 오래 건강하게 사는 시대’를 만드는 것이다.
장수의 진정한 혁명은 죽음을 끝없이 미루는 데 있지 않다. 늘어난 시간을 건강하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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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노원을지병원 심장내과 교수 전 국립보건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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