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일기가 공개되는 것은 분명 불쾌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앤서니 S. 파우치는 그렇게 신중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메모를 정부 컴퓨터에 보관했다. 지난주 랜드 폴(공화·켄터키) 연방상원의원이 예정된 상원 증언을 앞두고 이 메모들을 공개하면서 파우치는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고, 오래된 앙금도 다시 살아났다. 많은 기록들은 마치 코로나 팬데믹을 둘러싸고 보수 진영에 여전히 남아 있는 모든 불만을 일부러 자극하기 위해 작성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파우치는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진보 성향 인사들과 나눈 여러 우호적인 교류를 기록해 놓았다. 그는 강력한 코로나 방역정책을 둘러싸고 막후에서 벌어진 움직임도 자세히 기록했다. 아, 그리고 저명한 전문가들이 코로나19가 실험실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회의들에 대해서도 적어 놓았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해 답변하기 위해 연방 상원에 출석했을 때 파우치는 수정헌법 제5조에 따른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그가 위증의 덫에 걸리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법학 교수 마이클 도프는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광범위한 사면을 받았기 때문에 파우치에게는 수정헌법 제5조를 행사할 권리가 없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공개된 내용 가운데 일부는 보수 진영이 그려온 진보 엘리트 집단의 이미지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면서 폐쇄적인 엘리트 집단이 밀실에서 합의를 만들어내고, 불편한 사실은 무시하거나 숨기며, 논쟁이 가능한 하나의 견해에 불과한 것을 과학적 사실인 양 거만하게 정답으로 제시한다는 이미지다.
이런 이미지가 과장된 풍자에 불과하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렇다. 실제로 그렇다. 파우치가 일부 보수주의자들이 상상하는 만화 속 악당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풍자적 이미지는 대개 순수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을 과장한 것이다. 워싱턴의 내부자들은 실제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워싱턴 DC라는 도시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들은 권력과 영향력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에 조금 취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바이러스의 기원에서부터 공공 집회의 타당성, 백신 접종 의무화의 효과에 이르기까지 팬데믹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독단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의를 제기받았을 때 자신의 주장을 놓고 토론하기보다는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을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나 바보라고 비난한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문제가 되겠지만, 전문가들이 너무나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특히 분노를 자아낸다.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검사에서 실수를 저질러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은 채 확산되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마스크가 효과가 없다고 우리에게 말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학교들이 성공적으로 문을 열었는데도 미국의 학교들은 계속 문을 닫았다.
그러한 실수들에 대해 충분한 책임 규명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개인적인 메모를 공개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이 이에 대한 책임 규명을 원한다고 해서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파우치가 유명 인사들과의 만남에 들떠 적어놓은 일기 내용을 공개해 그를 망신 줌으로써 얻는 것이 무엇인가? 물론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옳았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고, 폴 의원은 다음 선거운동에 활용할 소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파우치가 실험실 유출설과 자연발생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아는 것은 분명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인 반면, 유명 인사들과의 교류에 대해 그가 이런저런 생각을 적어놓은 기록까지 공개하는 것은 팬데믹의 역사에 아무것도 보태지 못한다. 오히려 파우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당파적인 마녀사냥으로 치부하기 쉽게 만들어줄 뿐이다.
이러한 역학관계 때문에 팬데믹이 시작된 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은 필요로 하는 체계적이고 초당파적이며 처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조사를 실시하지 못했다. 또한 제도적 실패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개혁에도 착수하지 못했다. 대신 한쪽은 대중이 그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그냥 잊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한쪽은 주로 쌓인 분노를 터뜨리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책임자를 찾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 보다 덜 대립적인 접근법이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잘못된 일이 벌어진 이유는 나쁜 사람들이 일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당시 일을 맡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은 국가를 위해 최선의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며,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도 초기 단계에서 일부 세부적인 문제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인정할지 모른다.
그렇다. 어쩌면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아끼는 연구실이 바이러스 발생의 진원지일 가능성은 절대로 없다고 주장하는 데 지나치게 적극적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전문가들은 그 문제를 비롯한 수많은 사안에 존재했던 불확실성을 좀 더 분명하게 밝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전례 없는 재난 속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주장은 자기변명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물론 자기변명이다. 하지만 인간이 언제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던가? 언제 인간이 확증편향과 집단사고에 빠지지 않았으며, 내부자라는 지위가 주는 매력에 현혹되지 않았던가?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다시 저지를 수밖에 없다. 그들의 후임자들 역시 인간이라면 누구나 빠지기 쉬운 그러한 결함에 똑같이 취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고치는 일은 정확히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규명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정보원은 당연히 압박 속에서 끔찍한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르는 바로 그 의사결정자들이다. 만약 그들을 처벌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그 사람들은 파우치처럼 지극히 합리적으로 입을 닫아버릴 것이다.
파우치가 위증 혐의에 걸릴 위험을 감수하기를 거부했다고 해서 그를 탓할 수 없는 것처럼, 보수주의자들이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을 탓할 수도 없다. 바로 그것이 책임 공방의 문제다. 서로에게 돌릴 책임은 차고 넘친다. 돌고, 또 돌고, 계속 돈다. 우리는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 뿐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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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건 매카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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