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선선한 날씨와 풍성한 결실을 마주하며 내면을 돌아보고 깊은 생각에 잠기기 좋은 사색의 계절이고, 주변의 고마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감사의 계절이다.
2023년 11월 말쯤 일이다. 3만 5천명의 회원이 있는 단체방에서 전혀 모르는 여성 페친이 쪽지(DM)를 보내왔다. CA Napa에서 와이너리 CEO라고 소개하면서 자기 집주소, 전화번호, 와이너리 사진까지 보내왔다. 밀리언 달러 단위로 한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와인을 새해 선물로 보내고 싶으니 현모양처(와이프 애칭)와 함께 즐기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단체방에 자주 포스팅하는 글과 음식 사진을 볼 때마다 감동을 한다면서 여러가지를 생각나게 하고 향수를 느끼게해 줘서 감사하다는 사연도 포함되어 있었다.
남에게 주는 일은 익숙하지만, 받는 일에는 어색해서 현모양처와 상의 후 주소를 알려드렸다. 그리고 5일 만에 고급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조합으로 된 6병들이 박스 선물이 도착했다. 박스를 열자 비싼 와인처럼 보였는지 아들이 병에 부착된 가격 바코드를 스캔해 본다. 그 중에서 가장 비싼 와인 한 병의 가격을 보고 흠칫 놀라는 제스처를 짓는다. 그 와인은 마시기 아깝다면서 보관해야 하겠다고 자기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 버린다. 오래 살다보니 이렇게 축복받는 일도 생기네 하고 자문자답했다.
와인이 집에 도착하자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디즈니랜드의 테마곡 가사처럼 “산이 높고 험해도 바다가 넓고 깊어도 우리 사는 이 세상 아주 작고 작은 곳. It’s A Small World!”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지만, 좁고 좁은 게 세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척지지 말고 베풀고 좋은 일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하여 다시 다짐하였다.
알고보니 CEO는 15년 전-CA로 이사가기 전-우리 동네 페어팩스에서 거주하실 때, 자기 외동 아들과 내 아들 딸과 친하게 지냈던 절친 어머니였다. 특히 CEO는 내 아들을 자기 아들 삼고 싶을 정도로 예뻐하셨다. CA로 이사를 간 후 연락이 두절되었지만, 그 곳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한다는 소문은 CEO 아들과 소통을 이어오는 내 딸을 통해서 들었다.
와인을 받자마자 흥분하고 감격하여 감사 인사를 카톡으로 보냈다. CEO도 즉시 답신하면서 자기 가족 소개 사진까지 보내주셨다. 우리 동네에서 사실 때, CEO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적 있다. 우리집을 몇 차례 방문하여 현모양처도 만났다. 그 당시 주 6일 일하는 나는 뵌 적이 없어 얼굴을 모른다.
NJ에서 사는 와인 마니아 딸에게 자랑도 하고 아빠의 우쭐함과 뽐을 내기 위하여 와인 사진과 CEO의 가족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아구야! 딸이 CEO 사진을 보자마자 즉시 알아보고, “아무개 친구 엄마잖아~! 아빠가 웃긴다나.” 딸에게 폼 한 번 잡으려다 완전히 낙동강 오리알 신세. 크크크. 그리고 한다는 말, 집에 갔을 때 마시게 잘 보관해 놓으라고 한다. 예쁜 오리 새끼인지, 미운 칠면조 새끼인지….
이 충격적(?)인 스토리를 즉시 CEO께 카톡으로 알렸고, CEO께서도 놀라서 즉시 전화를 주셨다. 현모양처와 회포도 풀고, 예뻐했던 내 아들과 통화도 하셨다. 너무 반갑고 흥분하여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이야기 하신다. 내가 그 아들의 아빠라는 사실에 더 반갑고, 충격 그 자체였다. 와이너리 사업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모르는 타인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와인을 보냈다고 한다. 그 와인이 이렇게 큰 축복과 행복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기뻐하고 놀라워 하셨다. 지금도 매년 2회 와인 박스 선물을 보내 주신다.
한때 ‘짜가’가 판치는 요지경 세상이라는 유행가가 있었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는 멋진 만남도 있고, 아름다운 인연도 있다. 백 년도 살기 힘든 인생에서 사연도 많지만, 그래도 이래저래 웃으며 살만한 세상이다.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은 물건이 아니라 아름다운 마음과 건강한 모습으로 소통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음과 건강한 모습이 최고의 선물이다!
CEO께서 계속 보내주시는 와인 박스 선물을 받고 3년 전 흥분했던 아름다운 인연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마음을 다시 설레게 한다. 그리움과 사색의 가을밤에 마음이 따뜻한 CEO를 생각하면서 현모양처와 둘이 오붓이 마주 앉아 홈메이드 매실장아찌 안주 삼아 와인잔을 부딪히며 찬찬찬해야겠다. 향긋한 와인을 마시면서 삼십 년 이민생활 영웅담과 사십오 년 결혼생활 추억을 회상하는 좋은 밤이 되고, 센치한 기분을 달래 줄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멋진 시간이 될 것 같다.
“건강을 위하여! / CEO 사업의 번창을 위하여! / 아름다운 가을밤을 위하여!” 잔을 높이 들고, 치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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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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