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주 여성화가회(Women Painters of WashingtonㆍWPW)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인 화가 제니 정의 그림과 글을 ‘제니의 그림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합니다.
정 작가는 자신의 작품과 함께 그림에 담긴 의미와 느낌, 작품에 얽힌 이야기 등을 글로 풀어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註
나는 엄마가 좋아 : 엄마와 우청의 이야기
화가나 작가라는 거창한 이름 대신, ‘우청(又淸)’으로 당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우청은 또 우(又)에 맑을 청(淸)으로 ‘또 한 사람의 심청이가 있다’는 뜻으로 제게 아버님께서 지어주신 호입니다. 캔버스 위에 물든 색채와 그 속에 숨겨진 짧은 이야기들이 당신의 지친 일상에 작은 쉼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청의 그림세계
내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캄캄한 터널을 지나던 2007년 무렵이었다. ‘나를 다시 살리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던진 처절한 질문을 안고 벼랑 끝에서 간절하게 길을 찾던 순간, 내 영혼을 가장 기쁘게 하던 어릴 적 꿈, ‘화가’라는 단어가 가슴속에서 맑게 깨어났다.
하지만 미국 이민 후 만난 한 미술 교수님은 내게 “화가는 배고픈 직업이니 튼튼한 본업을 먼저 갖고 미술은 취미로 하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셨다. 그 말을 따라 나는 보잉사에 입사해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슴속 불꽃은 꺼지지 않아 2009년부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미술 공부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칼리지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과목을 이수하자, 교수님은 워싱턴 대학교(UW) 미술학부 편입을 권유하셨다. 하지만 야간 수업이 없어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고민 끝에 매니저에게 솔직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내 인생의 귀인이었던 나의 매니저는 참으로 멋진 사람이었다. 나의 고민을 가만히 듣던 그는 평생 잊지 못할 눈부신 대답을 들려주었다. “너의 인생을 먼저 돌보고, 그 후에 보잉을 돌보아라.”
그의 따뜻한 지지 덕분에 나는 낮에는 일하다가 학교로 달려가 수업을 듣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 남은 일을 처리하는 치열한 주경야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마침내 2021년,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저에게 있어 그림은 말 없는 대화를 나누는 매개체입니다. 제 그림의 주제는 바로 ‘저 자신’입니다. 그래서 내 그림의 가장 중심에는 늘 ‘나’ 자신인 우청이 존재한다. 캔버스 위에 칠해지는 색들은 곧 나의 숨소리이며, 나는 붓을 들 때마다 때로는 하늘을 나는 새가 되기도 하고, 세찬 물속을 헤엄치는 비단잉어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생명력 있는 대상들을 통해, 나의 가장 깊은 생각과 마음을 관람객에게 전하고자 한다.
아주 오래전, 그림에 조예가 깊으신 지인이 벽에 걸린 제 그림을 보고 “이 그림은 죽은 그림”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한마디가 품은 뜻을 온전히 찾아내고 스스로 이해하기까지, 무려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그 깨달음이 있었기에 비로소 지금의 저만의 작품 세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그림 앞에 서면 그 작품이 진정으로 숨을 쉬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멈춰 있는 색들의 나열인지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내 그림이 독자들의 마음 속에서 힘차게 숨 쉬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캔버스 위에 나의 숨결을 채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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