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일상에 화려한 생명력을 불어넣다
▶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의‘환상적인 원색’
어느 오후, 근교 볼티모어의 조용한 카페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곳은 전체적으로 차분한 무채색 톤의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요즘 스타일의 모노톤에 원목을 포인트로 잡아 따뜻하면서도 현대미를 잃지 않으려 애쓴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있어 편안하게 둘러보던 중 카페의 가장 깊숙한 안쪽 벽면에서 내 시선이 멈추었다.
한 벽면 전체를 뒤덮고 있던 것은 눈이 시릴 만큼 화려하고 이국적인 패턴으로 언뜻 보기에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액자였지만, 자세히 보니 실크로 된 고급벽지였다. 채도 높은 마젠타와 코발트블루가 튀어나올 거 같은 열매들과 붉은 새 그리고 생경한 열대 초록 잎들이 뒤엉킨 그 벽면은 마치 고요하고 적막한 공간에 심장 박동을 불어넣는 엔진처럼 강렬하게 쿵쾅거렸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단 한 명의 이름이 번쩍이며 스쳐 지나갔다. 바로 화가 천경자 님이었다.
비극을 화려함으로 덮는 힘, 색채
우리는 흔히 천경자 님을 ‘꽃과 여인의 화가’라 부른다.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는 거부할 수 없는 여인의 한이 서려 있다고 스스로 말했듯이 표정 없는 몽환적인 여인의 모습 위로 화려한 꽃을 피웠고 그 당시에는 흔히 볼 수 없는 동양적이면서 서양의 색이 혼합된 환상적인 채색을 사용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붓끝에서 탄생한 화려한 문양과 원색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독한 고독과 한국인의 한, 그리고 삶의 비극을 견디기 위해 작가 스스로에게 주입한 ‘생명력의 농축액’이었다. 꽃과 나비를 상징화하고 머리에 화려한 꽃을 얹은 여인을 그리며 자신의 가장 화려한 스케치와 명확하고도 강렬한 색으로 극도의 고독에서 최고의 자유를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단 한 컷의 스쳐 지나가는 장면, 일상의 지루함을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의 강렬한 색감에서 천경자 그녀의 혼이 스쳤다면 고조된 나만의 착각일까. 단조로운 일상이라는 멈춰버린 루틴 위에 던져진 강렬한 색 한 점. 그것이 주는 시각적 충격은 단순한 예술의 세계를 넘어 ‘나 여기 살아 있다’는 존재의 외침과도 같았다.
우리는 왜 똑같은 패턴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생활하면서 매일 머무는 집 공간마저 누구나 선호하는 ‘무난함’이라는 감옥에 나도 모르게 갇히게 될까? 무의미한 화이트와 무감각한 베이지, 그레이로 점철된 안전한 선택 속에서 우리의 감각은 혹시 절대 공식을 무너트리지 못해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옷을 입듯 공간을 입는 즐거움
패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깨달은 진리 중 하나는 ‘옷과 집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라는 점이다. 그녀의 옷은 그녀의 내면을 대변해주는 잣대가 될 수 있다. 마트에서 파는 옷과 고급 브랜드를 적절하게 믹스&매치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진정한 패션니스트임을 나는 항상 강조해왔다. 밝은 베이지색으로 옷의 통일감을 주었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원색 스카프를 밋밋한 목에 두르거나 가방에 툭 걸어 슬쩍 설레는 순간을 만끽해 볼 수 있다. 집도 그런 의미에서 천경자의 그림 속 여인들이 두르고 있는 이국적인 의상과 화려한 장신구들을 이용해 나만의 정체성을 담는다면 무난한 공간이 특별함으로 재탄생되지 않을까.
그녀가 사랑한 강렬한 색채들은 거실의 포인트 벽지가 되고, 여인의 어깨에 걸쳐진 스카프의 질감은 소파 위의 벨벳 쿠션이 될 수 있다. 멋진 인테리어는 단순히 비싼 가구를 배치하거나 동선의 중요함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어떤 구조에서 어떤 색의 에너지를 받으며 살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철학적 선택이다.
만약 당신의 거실이 너무 차갑게 느껴진다면, 천경자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뜨거운 태양의 색을 닮은 오렌지빛 조명이나, 짙은 생명력을 머금은 에메랄드그린 컬러의 1인용 암체어를 놓아보길 권한다. 공간에 색이 들어오는 순간, 그곳에 머무는 사람의 표정도 함께 물들기 시작할 것이다.
고독을 환희로 바꾸는 나만의 ‘아틀리에’
천경자 화백은 생전에 “내 문학이나 예술은 모두 내 고독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특히 노년의 삶은 결코, 그녀의 색감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고독의 산물처럼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어쩌면 그녀가 썼던 그 어떤 원색의 물감보다도 짙고 어두운 고독이었을지 모른다.
천경자의 노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그 답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평생을 지켜온 아뜰리에라는 개념에 숨어있다. 몸은 늙고 창작의 도구는 손에서 멀어질지라도 인간에게는 외로움을 환희로 맞바꿔줄 자신만의 실질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독을 환희로 바꾸는 장치로서의 아뜰리에가 거창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내 영혼이 온전히 안전하다고 느끼는 물리적 공간이자 내 취향과 기억이 응축된 치유의 방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집안에 나만의 작은 요새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 수묵화의 거장 소산 박대성 화백은 엄마의 자궁을 닮은 두어 평 정도의 작고 낮은 어두운 곳에서 평생을 기거하며 그만의 깊은 철학을 말하고 있다. 공간이 아니더라도 젊은 날 치열하게 살아온 나를 증명하는 빛바랜 사진들, 시선이 머물 때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익숙한 소품들. 그리고 메마른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과감한 색채의 패브릭이나 작은 식물 하나만으로도 우리에게 자유와 설렘을 준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문을 열고 이 작은 아뜰리에로 들어서는 순간, 고독은 더 이상 깊은 외로움이 아니라 온전히 나와 마주하는 창조적인 시간으로 변모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차곡히 쌓아온 내면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일상의 예술가가 된다.
천경자 님이 남긴 수많은 작품은 여전히 우리에게 외치고 있다. 고독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바탕색이지만 그 위에 어떤 색채로 생명력을 불어넣을지는 오롯이 우리의 몫이라고. 그러한 삶은 나만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가장 완숙하고 찬란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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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패션 칼럼니스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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