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텍 프린팅 이영호•이영희 부부, 3대째 이어온 인쇄업 마무리
▶ www.AvaSongTV.Studio 오픈, 인쇄 디자인에서 AI 창작으로*** 디자이너를 향한 도전은 계속
이영호씨 집안은 3대째 인쇄업을 이어온 가족이다. 작은할아버지는 전주 이씨 족보 편찬 과정에서 인쇄를 맡을 만큼 규모 있는 인쇄소를 운영했고, 부친 역시 서울 충무로 등에서 인쇄업에 종사했다.
가업으로 이어받은 오프셋 인쇄소 일은 1980년 미국으로 이민 와서도 이어졌다. 1984년 1월 실리콘밸리에 인쇄소를 열었다. 당시의 인쇄 과정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디자인을 손으로 스케치하고 레이아웃을 잡은 뒤 색을 분해해 필름을 만들고 판을 제작해야 했다. 풀컬러 인쇄는 물론 금색과 은색 등 특수 인쇄 역시 각각의 공정을 거쳐야 했다. 한국에서부터 익혀온 풀칼러 인쇄는 이곳에서도 인정받았고 사업은 점차 성장했다. 스탠퍼드대학교 브로슈어와 프로그램북을 제작했고, 1989년부터 1994년까지는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이종문 회장)의 브로슈어와 제품 매뉴얼을 제작했다. 애플을 비롯한 여러 IT 기업의 인쇄물을 제작했으며, 킨코스(Kinko's) 베이 에어리어 33개 지점의 인쇄를 8년 동안 담당하기도 했다.
이영호씨가 인쇄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성장하기까지 그 옆에 인쇄 디자인을 맡아왔던 부인 이영희씨가 있었다. 사실 오늘날의 하이텍 프린팅은 이영희씨의 헌신적인 내조와 지원이 없이는 생각하기 힘들다. 이영희씨(영어명 Amy Lee)는 디자인 학교를 다니거나 정식 디자인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었다. 남편의 일을 돕기 위해 책을 보고 프로그램을 익히며 디자인을 하나씩 배웠다. 처음에는 손으로 레이아웃을 만들고 필름과 색분해 작업을 익혔다. 그러나 곧 인쇄 현장에도 컴퓨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286에서 386•486 PC컴퓨터가 바뀌었고, 이어 매킨토시가 등장했다. 필름과 제판 중심이던 작업은 점차 컴퓨터 편집으로 옮겨갔으며, 이후 디지털 인쇄가 본격화됐다.
이영희씨는 장비와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다시 새로운 방법을 익혀야 했다. 한 가지 기술을 배워 오랫동안 사용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변화할 때마다 다시 배우고 새로운 작업 방식에 적응해야 했다는 것이 이영희씨가 돌아보는 35년 디자인 생활이다. 이영희씨의 작업은 기업 인쇄물에만 머물지 않았다. 조수미 공연 포스터와 프로그램, 김미경 토크쇼 포스터, 베이지역 한인회 행사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샌프란시스코협의회의 배너와 책자 등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화•공공행사 디자인을 맡았다. 요리책과 화집, 시집, 에세이집 등 출판물 디자인도 이어왔다.
행사 관련 작업에서는 무엇보다 정해진 일정을 맞추는 일이 중요했다. 26년 이상 각종 문화행사와 공연 작업을 맡는 동안 행사 직전까지 원고와 사진이 들어오는 경우가 반복됐다. 그러나 공연과 행사의 날짜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밤새 디자인과 교정 작업을 하고 인쇄를 마쳐 다음 날 행사에 맞춰 프로그램북과 인쇄물을 전달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화려한 일화라기보다 오랜 기간 현장에서 반복됐던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인쇄 환경도 계속 변했다. 매뉴얼은 책에서 CD로, 다시 인터넷으로 옮겨갔고 인쇄 산업의 디지털화도 빨라졌다. 높은 인건비와 해외 생산 확대 등 업계 환경이 달라지면서 이영호•이영희 부부는 오랫동안 운영해온 인쇄소를 정리할 시점이 됐다고 판단했다.
그 마지막 시기에는 세 개의 큰 작업은 이영희씨에게 큰 보람으로 남는다. 2026년 8월 15일 샌프란시스코 시청 로툰다홀에서 열린 대한민국 광복 81주년 경축행사, 다음 날 Davies Symphony Hall에서 열린 SF 매스터코랄 정기연주회, 그리고 8월 24일부터 열린 이화미대 SF 녹미회 제2회 정기작품전시회 ‘Beautiful Encounters(아름다운 만남)’ 등이었다. 이영희씨는 이들 행사의 프로그램북과 포스터, 도록 등 주요 디자인과 인쇄를 맡으며 오랜 인쇄 현장의 마지막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인쇄소의 문을 닫는 것이 디자인 활동의 끝을 뜻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작업의 중심에는 손녀 아바가 있다.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AvaSongTV는 2025년 11월 첫 작품인 ‘Forest Friends’ 뮤지컬 쇼케이스를 시작으로 클래식 음악과 발레를 결합한 콘텐츠를 제작했다. 이후 AI를 활용해 세계 여러 나라의 춤과 음악, 문화를 영상으로 표현하는 작업으로 범위를 넓혔다.
현재 콘텐츠는 영어 ‘AvaSongTV’, 한국어 ‘AvaSongTVKorea(아바송티비코리아’, 스페인어 ‘AvaSong ES’ 등 3개 언어 채널로 확장됐다. 최근 제작한 ‘World Dance’ 시리즈의 브라질 삼바 영상은 10만6천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새로운 창작 방식에 대한 가능성도 확인했다. AI 역시 처음부터 익숙한 도구는 아니었다. 같은 지시를 해도 결과가 달랐고, 원하는 영상과 음악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과 작업 방식을 계속 익혀야 했다. 필름과 색분해에서 컴퓨터로 넘어가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다시 학생이 된 셈이다.
이영희씨는 AI가 그림과 음악, 영상을 만들 수는 있지만 작품 속에 어떤 마음과 이야기를 담을 것인지는 결국 사람이 결정한다고 말한다. 손녀 아바를 생각하며 만든 한 줄의 가사가 음악이 되고 영상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통해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에 담기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점도 새롭게 느끼고 있다. 이영희씨는 “앞으로도 AvaSongTV를 통해 손녀 아바와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세계 문화를 전하는 아름다운 다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영희씨는 www.AvaSongTV.Studio를 통해 기존의 편집•디자인 경험에 AI와 디지털 영상 기술을 접목하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책과 프로그램북, 포스터, 배너, 브로셔, 메뉴 등 기존 디자인 작업도 계속하며, 인쇄가 필요한 경우에는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전문 인쇄업체들과 협력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수백 쪽에 이르는 한국어 원고를 일주일 가까이 몰입해 영어로 번역하며, 작가의 목소리와 문장의 리듬, 문학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문장 하나하나를 거듭 다듬었다. 그렇게 완성한 원고를 직접 디자인하고 인쇄해, 영어 번역 작업을 한 권의 책으로 마무리했다.
“의뢰가 오면 분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영어 번역이든 디자인이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정성을 다해 끝까지 완성하고 싶습니다.”
인쇄소의 문은 닫히지만 이영희씨의 디자인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종이에서 디지털로, 그리고 AI로 이어진 이영희씨의 새로운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68세의 이영희씨에게 이번 은퇴는 디자인 인생의 끝이라기보다, www.AvaSongTV.Studio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시작하는 또 하나의 변화다.
www.AvaSongTV.Studio / 이메일: sfamylee@gmail.com/ 전화: 408-712-2222/ Am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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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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