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지표가 ‘삼전닉스 웃음꽃’성장률·수출·증시 모조리 끌어올려
반도체 하나가 한국 경제 쥐락펴락
‘몰빵의 그림자’ 네덜란드병 경고
자원 수출 호황에 온 나라가 샴페인
결국 제조업 붕괴, 극심한 경기 침체
‘반도체 특별법’ 정책 스텝도 꼬여주52시간 예외·원전 추가 건설 등
기존의 사회적 합의 일방적 뒤집기
손흥민도 영원한 대표팀일 순 없다정부 자원 반도체만 쏟아붓지 말고
‘넥스트 반도체’에 적절한 배분 필요
6월 초 유진투자증권 보고서 하나가 화제가 됐다. “코스피가 8,000선(당시 기준)을 웃돌고 있는 반면 반도체를 제외한 코스피는 4,100~4,200선에 불과하다. 반도체가 블랙홀처럼 전부 삼켜 버리고 있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증권사가 발칵 뒤집어진 건 이재명 대통령이 엑스(X)에 이 보고서를 인용한 언론 기사를 올리면서다. 이 대통령은 이렇게 직격했다. “’축구 실력 빼면 손흥민도 보통 사람?’ 이러는 사람 없습니다. 오히려 ‘반도체 빼고도 한국 증시 무려 4,100’ 이래야 하는 것 아닐까요? 반도체가 우리 산업의 핵심 중 하나인데 왜 반도체를 빼고 종합주가지수를 계산해야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온라인에서는 보고서를 비꼬는 각종 패러디가 속출했다. “짜장면에 짜장 빼면?” “된장찌개에 된장 빼면?” “미국에서 엔비디아, 애플, 구글 등 ‘매그니피센트7’을 빼면?”
그런데 간과해선 안 되는 게 있다. 손흥민이 영원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일 순 없듯, 삼전닉스의 호황도 영원할 수 없다. 이미 곳곳에서 반도체 피크아웃(정점)론이 고개를 내민다. “적어도 2, 3년은 슈퍼사이클이 계속 간다”고도 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보면 3년쯤 뒤에는 내리막으로 돌아설 거라는 얘기다. 실제 증권사 보고서가 발표된 지 불과 20여 일 뒤, 삼전닉스 주가가 연고점을 찍고 급전직하하자 코스피는 ‘9천피’에서 ‘6천피’까지 미끄러졌다.
이런 경고를 그냥 흘려듣지 말아야 하는 건, 우리나라 경제의 모든 지표가 삼전닉스라는 하나의 축으로 수렴해서다. 코스피만이 아니라 성장률, 수출, 경상수지, 법인세 등을 쥐락펴락한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대표기업이 있다는 건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좋은 지표들이 하나의 원인에서 나온다는 것은 중대한 위험 신호이기도 하다. 반도체 피크아웃이 현실이 되고, 삼전닉스가 경쟁자들의 협공을 받으며 메모리 최강자 자리에서 밀려나고, 영업이익이 급감하며 적자로 돌아선다면? 좋은 경제지표들이 나올 때마다 ‘반도체를 제외하면’이라는 단서가 으레 붙는 이유다. 조동철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건국 이래 거시경제 지표들이 이 정도로 단일 산업에 좌우된 적은 없다”고 했다.
■ 대한민국 경제 절반 쥐락펴락올해 1분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8%였다. 작년 4분기 역성장(-0.1%)에서 급반전이었다. 드라마틱한 반전의 중심엔 당연히 반도체가 있다. 1.8%의 성장 중 반도체 부문의 기여도는 1.0%포인트다(한국경제연구원 분석). 경제 성장의 56%를 반도체, 사실상 삼전닉스가 이끌었다고 보면 된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본격화한 2분기에 한국은행 전망치(0.2%)의 3배에 달하는 0.6% 성장을 한 데는 삼전닉스 의존도가 훨씬 높았을 것이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수출 상품이다. 수출과 경상수지에서 삼전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막대하다. 올해 상반기 반도체 수출액은 1,924억 달러다. 작년 상반기보다 2.6배 폭증했다. 상반기 전체 수출액(4,967억 달러)의 38.7%다. 1,000원어치를 수출하면 400원가량은 반도체였다는 얘기다. 2018년 반도체 슈퍼 사이클 당시에도 20% 중후반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현재 우리 경제의 반도체 쏠림 현상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매월 ‘역대 최대’를 갈아치우고 있는 경상수지도 당연히 반도체 효과 덕이다. 상반기에만 1,910억 달러의 흑자를 내며 작년 연간 흑자(1,23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반도체 수출로 쓸어 담은 돈이다.
법인세는 어떤가. 지난해 SK하이닉스가 국내에 납부한 법인세는 5조6,280억 원이다. 전년보다 20배 가까이 폭증했다. 삼성전자는 전년보다 2.6배 늘어난 2조8,427억 원. 두 기업의 법인세(8조4,707억 원)가 전체 법인세수(84조6,000억 원)의 10%가 넘는다. 연결 기준으로는 12조 원에 육박한다.
올해는 작년과도 비교가 안 된다. 양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500조 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엔 90조 원 수준이었다. 법인세 납부액이 작년보다 4~5배가량 확대될 수 있다. 이러니 초과이윤, 초과세수를 어떻게 써야 하냐고 ‘행복한 고민’을 한다. 기업이 내는 법인세만이 아니다. 영업이익의 10%(SK하이닉스) 12%(삼성전자)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하면서 직원들이 내는 근로소득세 또한 국가 세수 증가에 혁혁한 기여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두 기업이 좌지우지하는 건 증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은 전체 코스피의 50%를 오간다. 작년 말 34% 수준과 비교해도 급격히 높아졌다. 여기에 논란 많은 두 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의 총거래대금이 전체 ETF 거래대금의 3분의 1에 달한다. “코스피지수가 아니라 삼전지수”란 말까지 나온다. 삼전닉스가 증시 자금을 모조리 ‘싹쓸이’하니 다른 기업 주가가 맥을 못 추는 건 당연하다. 삼전닉스 주가가 날아오를 때 코스닥이 고꾸라지고, 삼전닉스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코스닥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 것만 봐도 그렇다.
■ ‘몰빵’의 그림자모든 경제지표가 삼전닉스에 기대고 있다는 건, 두 기업-그러니까 반도체-에 충격이 오면 한꺼번에 허물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충격은 어디서든 올 수 있다. 인공지능(AI) 거품이 확인되거나, 중국 기업이 추월하거나,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거나.
얼마 전 한국은행의 ‘네덜란드병(Dutch disease)’ 경고는 가벼이 흘릴 게 아니다. 1959년 대규모 천연가스전을 발견한 네덜란드엔 수출로 막대한 외화가 쏟아져 들어왔다. 온 나라가 샴페인을 터트렸지만 훗날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네덜란드 길더화 가치가 치솟으며 제조업이 붕괴됐고, 경기 침체 속에 물가가 오르는 극심한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려야 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특정 부문 호황이 다른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현상을 네덜란드병이라 칭했다. 2010년대 몽골이 구리 가격 급등락에 천당에서 지옥(IMF 구제금융)으로 떨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역시 산업 불균형 해소에 실패하면 그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천연자원과 기술력이 축적되는 반도체라는 제품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면서도 “당시에 비해 금융시장이 커지고 중요해져서 자칫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늦어도 내년 말에는 꺾일 거라고, 초호황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잘 듣지 않는다”고 했다.
K자형 양극화 걱정도 반도체 초호황에서 비롯됐다. 반도체란 독보적 ‘원톱’을 제외하면 다른 산업에는 온기가 확산되지 못한다. 노동집약형인 전통 제조업과 달리 자본·기술 집약형인 반도체 산업의 고용 창출은 제한적이다. 반도체의 취업유발계수는 2.4명, 그러니까 10억 원어치를 팔 때 직간접적으로 2.4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제조업 평균(5.1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반도체 쏠림은 필연적으로 ‘고용 없는 성장’을 낳는다.
심지어 이런 초호황 국면에서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에조차 낙수효과가 번지지 않는다. 삼전닉스가 70% 안팎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할 때 소부장 기업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8% 수준에 그친다. “소부장 낙수효과는 외려 일본기업이 챙긴다”(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고 한다.
그래도 반도체 성장이 나라 경제의 펀더멘털을 단단히 구축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또한 학계에선 논쟁적 주제다. 당장의 명목성장률이 아니라 성장의 그릇을 보여주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의미 있는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직 반도체를 통한 AI가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생산성, 노동, 자본 요소를 높일 수 있다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 정책 스텝까지 엉켰다정부는 호남 반도체 공장을 비롯한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한 이후 이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거론되는 내용을 보면 하나같이 그간 정부·여당이 금기시해 왔던 것들이다. 반도체에 한해 주52시간 예외규정을 두자고 하고, 4년 기간제를 허용하자고 한다. 또 원자력발전소 필요성을 얘기하고, 댐을 높이겠다고도 한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업계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받아주는 실용적 접근일 수는 있다. 문제는 하나하나 오랜 논의를 거쳐 축적돼온 사회적 합의를 납득할 만한 논의와 이해를 구하는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허물 조짐이라는 점이다. ‘반도체 육성’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는 뭐든 다 용인된다는 식이다.
원전 찬성론자, 주52시간 완화론자까지도 이런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해 우려한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가속페달만 밟으면 엄청난 후폭풍이 올 수 있어서다.
<
이영태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