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탈북한 이일규 전 외교관 초청 강연
▶ ‘평양 엘리트’에서 ‘알거지’된 가족사도 공개

이일규 전 북한 외교관(작은 사진)이 지난 21일 워싱턴한인커뮤니티센터에서 강연하고 있다.
2023년 탈북한 이일규 전 쿠바 북한대사관 참사관 초청 강연회가 지난 21일 워싱턴한인커뮤니티센터에서 열렸다.
린다 한 회장(The Federation of Korean Associations Mid-East USA)이 마련한 행사로 100명이 넘는 한인들이 참석해 북한 고위급 외교관이 전하는 최신 북한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1972년 평양에서 태어난 이 참사관은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해외에서 공부한 소위 ‘평양 엘리트’로 자랐다. 그러나 해외 공작금을 담당했던 아버지가 권력 싸움에서 밀려 1994년 좌천되면서 재산도 몰수당하고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됐다. 그는 “돈도 없고 백도 없이, 그나마 외국어 실력 덕분에 평양외국어대에 진학했지만 도시락도 싸가기 힘든 형편에 대학을 졸업해도 막막한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이러한 소식을 들은 부친의 대학 동창 덕분에 외무성에 들어갔으나 고위층 간부 집안 출신이 대부분인 외무성에서도 적잖은 차별을 겪어야 했다. 그래도 그는 무너진 가정을 다시 세우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 덕에 44세에 최연소 부국장이 됐고, 외교 성과로 ‘김정은 표창’도 받았다.
역경을 딛고 외교관으로 성공했지만 결국 그는 2023년 탈북을 결심했다. 불평등한 북한 사회에 대한 염증과 미래에 대한 비관 때문이었다. 이 참사관은 “북한에서는 장사나 사업을 해야 성공할 수 있고 외교관이 되면 오히려 감시와 통제가 심해져 더욱 살기 힘들다”며 “결혼도 하고 자식도 키우는 입장에서 아버지가 당했던 것처럼 언제 어떤 이유로 몰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컸다”고 말했다.
23년을 북한 외교관으로 살았던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대한민국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북한에 남은 동료들과 지인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더 일찍 자유를 선택하지 못한 아쉬움뿐”이라고 말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대다수 북한 엘리트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공습으로 하메네이가 제거돼도 이란 지도부가 ‘신앙심’으로 버티고 있는 것과 달리 북한 지도부의 ‘충성심’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허상이다”라고 지적하며 “현직 북한 외교관인 지인들과 과거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신세타령’을 하며 분노와 울분을 성토했다. 그들의 충성심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급변 사태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자신의 증언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것은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이 참사관은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한국에 온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다”며 “대북정책은 좌우 상관없이 북한 주민들을 먼저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탈북을 선택했지만 북한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며 “남한이 성공한 것처럼 북한 주민들도 잘 살기를 바라고, 사실 무슨 체제든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진영논리로 대북정책을 다루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힌 그는 “대결구도를 조장하며 무력 충돌을 부추기는 것이나 일방적인 퍼주기에도 문제가 있다”며 “통일에 대해 묻는다면 북한 주민들도 최소한의 경제 수준으로 올라서고, 남북이 자유롭게 방문하고 교류하는 것”이라며 “거창한 통일이 아닌 공동번영의 길을 함께 모색하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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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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