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두진의『능소화-사백 년 전에 부친 편지』를 읽고
무심코 이웃 마을 도서관에 들어갔다가 한국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 걸 보았다. 흥분된 마음으로 꽂힌 책들을 훑어보다가 『능소화』라는 이름이 생소하지만 예쁘다고 느껴져 이 책을 꺼내 들었다. 읽기를 마쳤어도 마음엔 큰 응어리가 남았다. 타고난 운명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나도 지난날을 돌아보면 선택해야 할 갈림길은 여러 번 있었다. 되돌아갈 수는 없기에 이랬더라면 혹은 저랬더라면 하며 자문하는 때도 많다. 어떤 선택을 했던 운명이 정해진 방향으로 운명의 쳇바퀴 속에서 뛰기만 한 건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능소화-사백 년 전에 부친 편지』(위즈덤하우스 출판)는 언론인 작가 조두진이 2006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작가는 경북 안동에 살았던 400년 전에 죽은 고성 이씨의 무덤에서 나온 ‘원이 엄마의 편지’라는 기록을 모티브로 쓴 이야기이다. 무덤 주인은 안동 지방 만석꾼 이요신의 아들로 태어난 조선 명종 때 사람 이응태(1556-1586)이다. 그의 시체는 미라가 되어 있었고 가슴에 덮여있던 편지는 이상하리만큼 하나도 손상되지 않은 채로 발견되었다. 편지는 한글로 빼곡히 적혀 있었고 그 내용 속에는 그들의 애틋한 사랑과 혼자 남겨진 젊은 아내의 애절함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작가는 이응태 부부의 사랑과 이별을 능소화라는 그들의 운명의 꽃으로 엮어서 전설 같은 이야기를 펼쳤다.
이응태의 단명할 사주를 막기 위해 집 주변의 소화 꽃을 없애고 못생기고 팔자도 사나운 여자를 배필로 만나려 했다. 박색이라고 소문난 여자와 정혼했으나 혼례식장에 나타난 신부는 얼마 전에 응태가 만난 소화 꽃 옆에 있던 아리따운 여자 여늬다. 오래전 어린 여늬를 본 스님은 절대로 누구와도 관계를 맺으면 안 된다고 하여 그녀의 부모는 딸을 박색이라고 소문내고 집 밖으로는 내보내지 않았다. 혼인을 치른 아들에게 처가에 가서 살라고 보내며 처가에 있는 소화도 전부 없애라고 지시한다. 여늬는 남편에게 뒷담에 있는 소화만은 남겨달라고 애원하여 한 그루를 남긴다. 하늘의 정원지기였던 팔목수라는 어느 날 그 소화의 향을 맡고 찾아들어 여늬가 하늘에서 소화 꽃을 훔쳐 달아나서 이생에 꽃을 번식시켰다며 그녀를 데려가려는 것을 응태가 막자 그를 대신 데려간다.
남편을 여의고 수년이 지난 어느 날 큰아들 원이가 엄마를 부르며 팔목수라와 들어오는 악몽을 꾸고 소리 지르며 깨어나자마자 그날 새벽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는 전갈을 받는다. 여늬는 운명에 좌절하고 포기하느니 차라리 맞서겠다고 마음먹고 소화를 다시 심기로 마음먹는다. 집에 하나 남아 있던 소화 가지를 잘라 묘목을 만들어 하나는 응태의 묘에 심고 또 하나는 자기가 죽으면 무덤에 소화를 심어달라고 부탁하고 죽는다. 남편이 소화를 보며 찾아와 줄 것을 믿는다. 또한 그녀는 소화가 하늘을 능히 이기는 꽃이라 하여 능소화라고 이름 지었다.
능소화(凌霄花)는 ‘업신여길 능’자와 ‘하늘 소’자로 붙여진 꽃 이름이다. 이 꽃은 한여름에 피어 장마와 태풍에도 꿋꿋이 견디다가 꽃이 시들거나 꽃잎이 하나둘 떨어지지 않고 통째로 떨어져 버리는 꽃이다. 양반들이 이 나무를 좋아해서 ‘양반꽃’이라고 불렀고, 평민들은 함부로 심지 못했다고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소화라는 궁녀가 임금님의 하룻밤 은총을 입고 난 후 임금님을 기다리다 지쳐 숨을 거두며 임금님 담장 밖에 묻어달라 했다.
그 자리에서 자라난 꽃이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 꽃을 피웠는데 이 꽃을 능소화라 부른다고 한다. 꽃말도 명예, 영광, 그리움, 기다림이다. 워낙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꽃이라 남부 지방에서 볼 수 있다고 하니 서울에 살던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사람의 사주나 운명은 정녕 피할 수 없어서 아무리 피하려 해도 부메랑처럼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인가. 응태는 박색을 찾았지만 그랬기에 절세미인 여늬를 만났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소화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없앴더라면 여늬와 함께 오랫동안 해로했을까. 처음부터 사주에 대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면 다른 여자를 만나서 장수할 수 있었을까.
정해진 인연이었기에 피하려 했어도 그들은 만났고, 응태는 단명한 사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마치 내가 여늬가 된 것처럼 정해진 운명에 갇힌 듯 가슴이 답답해 왔다.
우린 사주나 운명에 대해 단언하지 못한다. 과학이 암만 발달했어도 개개인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기계는 아직 발명하지 못했다. 혹자는 말한다. 운명은 개척하는 것 혹은 사람 마음에서 정해지는 것이라고. 여늬 역시 운명을 개척하려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없애야 할 꽃을 오히려 더 심어 그 꽃을 다리로 삼아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가려는 그녀의 강한 결의를 보여준다. 시들지 않고 떨어진 능소화 통꽃이 그 단호함을 증명하는 듯하다. 작가도 사백 년 동안의 세월 속에서도 손상되지 않은 채 발견된 편지가 바로 그녀의 한恨이고 의지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화원을 지나다가 본 붉은색의 나팔 모양의 꽃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줄기를 통해 삐죽 내밀며 ‘나 여기 있어요.’하는 것 같아 사다가 큰 화분에 옮겨 심었다. 디플라데니아dipladenia나 락트럼펫rocktrumpet이라고 불리는 꽃이다. 꽃의 색과 잎의 모양이 능소화와는 약간 달라도 나팔 모양의 꽃이 통꽃으로 떨어지기에 능소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능소화를 심어 하늘이 정한 사람의 운명을 거역하고, 우리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라고 하는 여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떨어진 꽃을 바라보면 자존과 결의가 있는 강하고 사랑스러운 그녀가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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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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