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윤동주-
2년전 페루의 잉카 트레일 트레킹을
갔을 때는, 빠듯한 일정에 지쳐 밤마다
깊은 잠에 떨어져 별을 볼 수가 없었고,
지난해 미 서부 6대 캐년을 트래킹 할
당시는 유난히 밝은 달빛으로 인해
기대했던 수많은 별들을 볼수가 없었다.
그래서 올 여름은, 그동안 가까우면서도
멀게만 느껴져 쉽게 엄두를 못냈던
웨스트 버지니아 New River Gorge
National Park를 가기로 결정했다.
일년중 가장 밝고 많은 별을 볼수 있는
시즌이 바로 8월 중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쏟아지는 별똥별과 은하수를
보기위하여 웨스트 버지니아의
깊은 산속으로 가려는 것이다.
떠나기 2주전이 되서야, 웹사이트에 들어가 캐빈이나 캠핑사이트라도 있을까 하고 찾아보니 역시 사전 예약으로 인해 10월 중순까지는 사용할 수가 없단다. 하지만 다음날에 혹시하는 마음으로 Babcock State Park에 전화로 문의를 해보니 캠핑 사이트 하나가 취소된 사유로 내가 사용할 수가 있단다. 그래서 몇년만에 다시 해보는 캠핑을 위하여 먼지에 쌓인 텐트를 꺼내 햇빛에 말리고 식량을 챙기고 하나하나 빠짐없이 준비를 하여, 마침내 325마일의 긴 드라이브의 여정을 시작한다.
아침 9시에 출발하여 세시간 여를 달려 국도 81번과 64번이 만나는 지점에서 차량에 배터리 충전을 하고 있으려니 어두워진 하늘에서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물론 출발전에 일기 예보를 통해 한주간의 날씨 상태를 숙지하고는 있었지만, 예고대로 “때때로” 라는 말에 희망을 갖고 여행을 감행하였는데, 이정도로 퍼부울줄이야. 하지만 낭만적 성격을 지닌 나는 John Denver 의 노래를 틀고 따라하며 애써 분위기를 돋구려 해본다. “Country road, take me home. To the place I belong West Virginia…” 일곱시간의 긴 드라이브 끝에 Babcork State Park에 도착할 무렵엔 빗줄기가 점점 약해지더니 캠핑장에 도착하여 텐트를 칠 때는 비는 완전 멈추었다. 저녁을 준비하기 위하여 여장을 풀고 테이블 위에 커버를 쒸우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건너편 텐트로부터 어린 남매 둘이서 가슴에 장작 개비를 가득 안고 내게로 온다. 무거워보이는 장작더미를 우선 받아들고 물어보니, 내일이면 떠날 것이기에 남은 것을 내게 주고 오라는, 그들의 부모의 따뜻한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뜻밖의 환영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낀다. 간소하게 저녁을 먹고 장작 더미에 불을 붙이려 씨름 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깊은 산중에는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한다.
칠흑같은 어둠이 하늘과 산등성이를 구분할 수 없게 하고 둘러 쌓인 숲으로부터 풀벌레 소리라고 하기에는 기괴하며 요란한 소리가 (회색 청개구리 라고 밝혀짐) 적막을 깨뜨리는 가운데, 타닥 타닥 모닥불의 불꽃이 하얀 연기와 함께 어둠속으로 사라져간다.
캠핑 장에서의 첫날밤은 별하나 못 보고 지나가나 하고 체념하려했을 때, 캠핑장을 둘러싼 커다란 소나무 사이로 열린 하늘에서 정말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별들이 빛을 발한다. 모닥불가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나는 하나 하나 별을 가슴으로 세어본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그리움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
어쩌면 이렇게 윤동주 님의 시가 시공을 넘어 지금의 나에게까지 절절하게 파고드는지 아릿해지는 가슴으로, 밤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본다.
12시가 넘어 텐트 안의 침낭속으로 몸을 구겨 넣자마자 나는 잠에 빠져 들고 말았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지축을 뒤흔들고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같은 소리에 눈을 떠보니 노란 색의 텐트 돔이 섬광으로 인해 눈부시게 번쩍거린다. 그러더니 잠시후, 주위의 나무들이 바람에 휩쓸리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폭우가 쏟아진다. 커다란 소나무 밑에 텐트를 친 나는 행여 벼락이 나무를 내리치면 그 나무가 텐트를 덮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새벽 4시였다. 다행히 안으로는 물이 스며들지는 않았지만 동이 틀때까지 텐트를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가슴을 조리며 지새야만 했다. 그러나 그 세찬 비바람도 아침이 되니 잠잠해져서 밖으로 나와 보니 바로 옆 산 밑까지 내려와 있는 하얀 안개 구름이 고요하고 신비로운 아침을 만들어 낸다.
간식 등을 백팩에 챙겨 넣고, 깊고 깊은 산중에서의 첫날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나는 베이스 캠프를 떠나 New River Gorge National Park의 Visitor Center 를 향해 기수를 돌린다. 가는 중에 산중턱에 자리한 조금은 낡은듯 고즈넉한 Fayetteville downtown에 위치한 Cathedral Cafe에 들렀다. 이름 그대로 옛적에는 자그마한 성당이었지만, 탄광 산업이 쇠퇴해가며 주민들이 떠나간 뒤에는 카페로 개조해 영업중인 것이었는데, 성당의 옛 모습을 품은 이 특별한 공간은 관광객들로 활기를 띠며 오히려 문전성시다.
Visitor Center 안에는 넓고 확트인 창을 통해 밖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저 까마득한 협곡 아래에는 간밤에 쏟아진 폭우로 인해 황톳물로 바뀐 뉴리버의 강물이 거친 바위틈을 돌아 굽이쳐 흐르고, 산마루에 길게 띠를 띠고 산 모퉁이를 휘감은 하얀 구름은 마치 한마리의 거대한 용이 날아 오르는 듯한 모습이다.
발걸음을 옮겨 Bridge View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지형의 단차를 활용해 만들어 놓은 전망대가 나오는데, 그 약간의 높낮이와 각도에 따라 마주하는 New River Gorge Bridge 크기는 압도적이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이 안된다. 인간이 만든 창조물과 신이 가꾼 자연이 이토록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장엄한 풍경을 연출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다음 행선지는 다리로부터 2마일쯤 되는곳에 있는, Endless Wall Trail이다. 입구에 도착하니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다시 장대비로 바뀌었지만 방수 쟈켓을 입고 있는 나에게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좁은 트레일 양편에는 Mountain Laurel이라는 관목숲이 군락을 이루며 터널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르렁거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는 이 길은 마치 아마존 정글의 열대우림을 통과하는 기분이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산행에서 이 처럼 많은 비에 흠뻑 젖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그러나 철퍼덕거리는 등산로를 따라 오르락 내리락 걷다보니 땀에 젖은 것 보다 오히려 훨씬 청량감이 든다. 마침내 절벽 끝 전망대 Diamond Point에 다다르니 너른 바위 끝, 아득한 벼랑 아래로 하얀 구름이 깔려있고 그 구름들 위로 봉긋봉긋 산봉오리들이 솟아 있을뿐, 고요와 적막감만이 저 아래 강물처럼 흐른다.
산 너머 산, 굽이굽이 모퉁이를 돌고나면 또 산,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웨스트 버지니아. 겹겹이 쌓인 산들의 품에 안겨 홀로 보낸 4박 5일은, 거침없이 드러내는 태고의 자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 인간의 지혜로 쌓아 올린 거대한 구조물, 그리고 낯선 곳에서 스치듯 만난 사람들의 친절과 다정함이 어우러져 영혼이 깊이 치유받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나는 지난밤에 따 모은 별들을 가슴에 꼭 품은채, 다음의 여행을 꿈꾼다.
<
메릴랜드에서 듀크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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