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카날레(il Canale)
▶ 조지타운에서 만난 시칠리아의 불, 나폴리의 영혼
워싱턴 D.C. 조지타운의 오래된 붉은 벽돌길을 걸었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노천 테이블 위로 여행자의 여유로운 호흡이 흐르는 거리. 이 길목 한구석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햇살과 정취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공간, ‘일 카날레’가 자리하고 있다. 테라스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미국이라는 국경은 이내 희미해지고, 어느새 나폴리의 어느 정겨운 골목에서 점심을 기다리는 듯한 아늑한 착각에 빠져든다.
이곳의 중심에는 시칠리아 출신의 거장 조 파루지오(Joe Farruggio)가 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뜨거운 화덕과 식당 현장을 지켜온 그는 뉴욕의 작은 피자 가게에서 출발해 미국에서 손꼽히는 정통 나폴리 피자 장인으로 자리 잡았다. 본토의 맛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지켜내겠다는 그의 고집은 나폴리 정통 피자 협회(Associazione Verace Pizza Napoletana•AVPN)의 인증으로 결실을 맺었고, 힐러리 클린턴과 해리슨 포드 등 수많은 명사의 발길을 이끌었다.
식당 문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붉게 이글거리는 장작불 화덕이다. 은은한 나무 향이 번지는 가운데 잘 숙성된 도우는 순식간에 노릇한 나폴리 피자로 태어난다.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깨닫게 된다. 피자를 굽는다는 것은 단순한 조리가 아니라 오랜 세월 몸에 밴 장인의 예술이라는 것을. 반세기 넘게 화덕과 식당 현장을 지켜온 그의 손끝에는 화려한 기교보다 정직한 반복과 겸손한 기다림이 깊이 스며 있었다.
2층으로 오르는 벽면은 세계 언론의 기사와 상패, 유명 인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빼곡하다. 그러나 그 화려한 기록들은 자랑이라기보다 한 인간이 평생 걸어온 묵직한 삶의 연대기처럼 다가왔다. 특히 자신의 여정을 담아낸 자서전 『My Name Is Joe, And I Am A Pizza Man』의 제목은 피자가 그에게 단순한 직업을 넘어 인생 그 자체였음을 말해준다. 세상의 수많은 찬사보다 “나는 피자 만드는 사람입니다”라는 그 한마디가 더 깊은 울림을 남겼다.
우리는 대표 메뉴인 마르게리타 피자와 해산물 파스타 ‘시아랄리에티 알로 스코글리오’를 주문했다. 수없이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맛본 피자 가운데서도 이토록 인상적인 마르게리타는 드물었다. 장작불 화덕의 그윽한 향과 기분 좋게 쫄깃한 도우, 깊은 풍미의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 치즈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다. 비결을 묻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좋은 피자는 오직 정직하고 좋은 재료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핵심 재료들을 지금도 이탈리아에서 직접 들여온다고 덧붙였다.
이어 나온 해산물 파스타 역시 기대를 뛰어넘었다. 탱글한 생면 위에 홍합과 새우, 오징어가 푸짐하게 올라갔고, 토마토의 산뜻함과 바다 향이 어우러져 입안 가득 지중해의 푸른 파도를 불러냈다. 좋은 재료를 과하게 꾸미지 않는 절제. 그것이야말로 이탈리아 요리의 본질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맛이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조 파루지오는 우리를 2층 옥상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바질과 민트, 로즈메리, 장미가 사이좋게 어우러진 작은 정원이 숨어 있었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허브 대부분을 자식처럼 직접 키운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그의 고향인 시칠리아 남부 아그리젠토(Agrigento)로 대화가 이어졌다. 우리 부부도 그 아름다운 도시를 여행했던 기억을 꺼내놓자 그의 얼굴에 환한 반가움이 피어났다. 신전의 계곡과 푸른 바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장인의 눈빛은 어느새 피자를 굽는 요리사가 아니라 고향을 그리워하는 순수한 소년의 그것으로 반짝였다.
벽면을 가득 채운 명성의 흔적보다 일 카날레를 진정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평생 화덕 앞을 지켜온 장인의 땀방울과 이방인에게도 고향의 아름다움을 기꺼이 내어주는 따뜻한 마음이다. 그의 요리에는 시칠리아의 풍요로운 자연과 나폴리의 장인 정신,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이 온전히 녹아 있었다. 일 카날레에서의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사람과 문화, 흘러간 세월을 함께 맛보는 특별한 여행이었다.
좋은 음식은 배를 채우지만, 위대한 음식은 마음을 채우고 한 나라의 문화와 삶을 전한다. 일 카날레는 워싱턴 한복판에서 만난 가장 따뜻하고 깊은 이탈리아였다.
상호명: il Canale
주소: 1065 31st St NW,
Washington, DC 20007
전화: (202) 337-4444
대표 메뉴: Margherita Pizza, Scialatielli allo Scoglio, Branzino al Cartoccio Siciliano
주차: 노상 유료주차(모바일 결제) 또는 인근 공영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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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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