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집이라면 물건이 존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지난 글에서 우리는 물건의 개수보다 그 물건이 내 삶에서 ‘진짜 필요’를 다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필요한 물건만 남았다면, 이제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이 소중한 물건들을 어디에, 어떻게 두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은 수납을 단순히 ‘물건을 눈앞에서 치워 벽장 속에 차곡차곡 넣는 일’로 여깁니다. 그러나 제대로 설계된 수납공간은 단순한 보관함이 아닙니다. 물건이 제자리를 찾으면 시각적 피로는 사라지고, 물건을 찾는 데 낭비하던 시간은 나의 여유로 돌아옵니다. 잘 만들어진 수납공간은 우리에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질서 있는 삶을 선물하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수납공간이 부족할까?”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충분해 보이고, 오히려 남을 것 같던 옷장과 서랍, 주방의 케비넷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장식장이나 서랍장을 더 사야 할 것 같고, 빈 벽을 보면 선반이라도 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집 안에는 수납을 위한 가구가 점점 늘어나는데 이상하게도 물건은 계속 넘쳐납니다.
여러 집에서 정리를 요청 받아 집안을 살펴보면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집이 넓다고 해서 수납이 잘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수납가구가 많다고 해서 집이 잘 정돈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먼저 빈 공간을 찾아보세요
그렇기 때문에 수납공간을 설계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집 안에 이미 존재하는 공간을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냉장고 위, 싱크대 아래, 침대 밑, 옷장 위쪽, 현관 신발장 위, 계단 아래처럼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들이 있습니다. 벽 한쪽의 빈 공간이나 문 뒷부분도 좋은 수납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벽은 생각보다 훌륭한 수납공간입니다. 바닥에 서랍장을 하나 더 놓는 대신 벽에 선반을 설치하면 바닥을 비워두면서 벽의 수직 공간을 활용하여 집 안에서 사람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모든 빈 곳을 수납장과 선반으로 채우기 시작하면 수납공간은 늘어날지 모르지만 오히려 집은 더 답답하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집에는 비워두어야 아름답고 편안한 공간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벽의 한 면을 거대한 수납장으로 변신하는 방법을 생각해봅니다. 거실의 한 벽면을 벽과 같은 칼라로 벽 전체를 수납장으로 만들고 그 앞에 소파를 놓는 방법이 있습니다.
수납은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주 쓰는 물건은 손이 닿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수납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얼마나 예쁘게 넣느냐’ 가 아니라 ‘얼마나 쉽게 꺼내고 다시 넣을 수 있는가’입니다.
깔끔한 집을 만들기 위해 모든 물건을 수납장 안에 넣어버리려는 생각이 앞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수납방법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고려하여야 할 것은 내 생활의 행태에 맞는 수납이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수납에는 기준에 따라 정리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매일 사용하는 물건, 일주일에 몇 번 사용하는 물건, 가끔 사용하는 물건, 거의 사용하지 않는 물건으로 나누어 자주 사용하는 물건일수록 손이 쉽게 닿는 곳, 거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위쪽이나 안쪽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무거운 물건은 아래쪽, 가벼운 물건은 위쪽에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부피가 큰 물건은 별도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용 빈도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것이 있는데 자주 쓰지 않더라도 급할 때 바로 꺼내야 하는 물건은
접근하기 쉬워야 합니다. 비상약, 손전등, 소화기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납은 단순하고 편리해야 합니다. 집은 왜냐하면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고, 가족 전체가 어떤 물건이 어디에 수납되어 있는지를 가족이 알아야 주부의 손이 덜 가기 때문입니다.
■수납공간에는 여백이 필요하며, 생활 동선에 맞춰 설치되어야 합니다.
좋은 수납에는 여백이 있어야 물건을 꺼내고 사용 후 쉽게 넣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물건 하나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수납공간을 만들 때는 ‘얼마나 많이 넣을 수 있는가’보다는 ‘얼마나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집 안에 수납공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당장 수납장을 하나 더 사서 설치하기 전에 잠시 멈춰 집을 둘러보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물건이 꼭 필요한 것인가? 자주 사용하는 물건인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인가?
그렇게 수납장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었다면, 이 것은 나의 생활 동선에 맞춰 설치되어야 하며, 수납장이 집의 인테리어, 기존가구와 잘 어울리는 칼라와 디자인으로 설치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집이 아닙니다. 가구 배치를 잘 함으로써 남는 공간에 수납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을 나의 삶에 맞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납의 원칙입니다.
집의 수납 공간은 물건을 많이 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세심하게 고려된 수납공간은 물건만 정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과 마음에도 작은 여백을 만들어 줍니다.
실용적인 수납공간을 계획하고 만드는 것은 내 일상의 동선을 돌아보고, 나와 가족의 생활 습관을 배려하는 일입니다.
필요한 물건이 알맞은 자리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물건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거나 어질러진 모습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비워진 바닥과 단정해진 테이블 위에는 새로운 생각과 온전한 휴식이 채워집니다.
지금 집 안의 숨은 작은 공간을 찾아 물건에게 제대로 된 자리를 선물해 보세요. 그 작은 변화가 매일의 일상을 훨씬 가볍고 단단하게 지탱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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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공간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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