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이씨 등 한인 2세들 주도… 한국 통일부 보존 지원
▶ 전쟁·분단으로 헤어진 이산가족 70여년 사연 기록
▶ 미국 넘어 전 세계 대상… 2·3세 후손까지로 확대

뉴저지 출신의 폴 이씨가 뉴저지주 포트리의 한국전 참전비 앞에서 ‘고향에 보내는 편지’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폴 이씨 페이스북 캡처]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가족과 생이별한 뒤 70여 년 동안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한인 이산가족들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기록해 후세에 남기는 프로젝트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 한인사회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중심에는 노터데임대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인 2세 폴 이(30·한국명 이규민)씨가 있다.
이씨가 이끄는 ‘레터스 투 마이 홈타운’(Letters to My Hometown·고향에 보내는 편지) 프로젝트는 한국전쟁으로 북한에 가족을 남겨둔 채 미국 등 해외에 정착한 이산가족들의 기억을 직접 영상으로 기록하고 이제는 그들의 자녀와 손주들에게까지 이어진 분단의 기억을 보존하는 작업이다.
이씨는 본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올해 광복절인 지난 15일부터 전 세계 한인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영상 사연 모집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한국전쟁과 한반도 분단을 직접 경험한 이산가족뿐 아니라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그 이야기를 물려받은 2·3세 후손도 참여할 수 있다. 이씨는 “전쟁과 분단, 그리고 70년 넘게 이어진 가족의 이별로 삶이 영원히 바뀐 전 세계 한인들의 이야기를 보존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번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분들은 저희의 안내에 따라 집에서 가족의 이야기를 직접 영상으로 촬영하거나 프로젝트 관계자들과 줌을 통해 인터뷰할 수 있다”며 “수집된 영상은 한국 통일부의 영구 기록물로 보존될 예정이며, 언젠가 여건이 허락한다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어 “실제로 북한의 가족에게 영상이 전달될 가능성이 당장은 크지 않더라도 기록 자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고향과 가족, 전쟁과 피란의 기억을 말로 꺼내놓는 과정 자체가 이산가족과 후손들에게 치유와 정서적 해방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씨에 따르면 ‘고향에 보내는 편지’의 출발점은 미국 내 한인 이산가족들이었다. 실제 이씨의 할아버지도 한국전쟁 때 헤어진 형님과 결국 평생 재회하지 못하고 3년 전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북한에 가족을 남겨둔 고령의 한인 이산가족들에게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남기도록 했다. 인터뷰에는 가족사진과 고향 사진, 오랜 세월 간직해온 유품 등도 함께 담았다. 2024년에는 이러한 인터뷰를 매달 한 편씩 공개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기존 프로젝트는 한인들의 삶을 기록해온 비영리단체 코리안 아메리칸 스토리(Korean American Story)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온 디바이디드 패밀리스 USA(Divided Families USA)가 함께 진행했으며 아메리칸 프렌즈 서비스 커미티(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의 지원을 받았다.
그동안 기록된 사연 하나하나는 거대한 전쟁사의 이면에 가려져 있던 개인과 가족의 역사다. LA 한인사회에서는 한인 교계 원로인 이창순 윌셔연합감리교회 원로목사의 동영상이 큰 울림을 줬다. 이창순 목사는 90세 가 돼 컴퓨터 앞에 앉아 75년 동안 만나지 못한 부친에게 편지 형식의 글을 썼고, ‘고향에 보내는 편지’ 동영상 촬영에는 자녀들인 보라 이씨와 밥 이씨 남매도 함께 참여했다.
이처럼 ‘고향에 보내는 편지’ 프로젝트는 한국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었지만 그로 인한 가족의 단절과 상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자녀와 손주 세대에게 어떤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는 의미를 지닌다. 최근 제작된 영상에서는 부모와 자녀, 때로는 손주까지 한자리에 앉아 가족사를 이야기한다고 한다.
폴 이씨와 함께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 캐서린 이씨는 “이산가족들의 트라우마는 생존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다음 세대 역시 부모나 조부모가 겪은 일로 인해 깊은 영향을 받기도 한다”며 “당사자가 이미 세상을 떠난 경우라도 그 후손들이 참여하는 것을 적극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접근은 폴 이씨 자신의 학문적 관심과도 맞닿아 있다. 이씨는 현재 노테데임대 크록 국제평화연구소에서 평화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전쟁과 갈등으로 발생한 트라우마와 가족관계가 세대를 넘어 어떻게 전승되는지, 그리고 집단적 기억과 대화를 통해 어떻게 치유와 화해의 길을 모색할 수 있는지에 맞춰져 있다. 이씨는 예일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미·영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아일랜드 에큐메닉스 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터데임대 프레지덴셜 펠로우이기도 하다.
이씨는 지난 2016년부터 한국전쟁으로 북한 가족과 헤어진 고령의 한인들을 돕는 디바이디드 패밀리스 USA를 이끌어왔으며, 이산가족의 목소리를 알리는 ‘디바이디드 패밀리스 팟캐스트’도 공동 창립해 진행해왔다. 또 미국평화연구소(USIP)의 청소년 프로그램과 동북아 프로그램에서 활동했고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아시아 프로그램에서 제임스 C. 게이더 주니어 펠로우로 근무했다. 북아일랜드의 대표적 평화·화해 기관인 코리밀라 커뮤니티에서도 펠로우로 활동하는 등 연구와 현장 평화운동을 연결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가 대학생 시절 시작한 이산가족에 대한 관심은 결국 ‘고향에 보내는 편지’라는 영상 기록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이제 미주 한인사회를 넘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아가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기억을 모으는 작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씨는 “올해부터는 특히 한국 통일부의 지원 아래 프로젝트가 세계적 규모로 확대되면서 모집 대상 역시 넓어졌다”며 미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 살고 있든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가족이 헤어진 경험이 있는 생존자, 또는 그 이야기를 물려받은 후손이라면 자신의 가족사를 영상으로 남길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고향에 보내는 편지’ 웹사이트: www.letterstomyhometown.com
이메일: letterstomyhometow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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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