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나에게 수수께끼같은 것이었다. 칼럼 제목을 ‘수수께끼’라 정하여 수수께끼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수수께끼였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싫은 시간이 음악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더하고 빼고… 숫자를 싫어했던 나에게 수학시간 보다 더 싫었던 시간이 바로 음악시간이었다. 특히 음악감상을 할 때가 가장 싫었다. 무슨 운명 교향곡같은 곡을 자주 틀어주었던 것 같은데 하품 하거나 책상 밑에 감춰둔 탐정소설을 읽다가 들켜 교무실까지 불려간 적이 있었다. 그러던 내가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먼저 언급했듯, 나는 정말 음악에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내가 음악을 좋아하게 됐을 뿐 아니라 음악의 열렬한 지지자, 음악에 진심인 사람이 되었다. 삶이란 정말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물론 세상의 모든 일… 진리라는 것도 (예수, 석가모니할 것 없이) 비유로 말하거나 침묵으로 대신했을 뿐 세상일이란 어쩌면 모든 것이 분명할 필요는 없는 법인지도 모른다.
에드워드 엘가(1857-1934)는 클래식 작곡가로서는 드물게 영국 출신이었다. 음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었으나 독학으로1890년 우스터(Worcester)에서 거행된 합창제에서 자작 ‘프로와사르, Froissart’ 서곡을 발표, 그 때 부터 그의 작품이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엘가가 남긴 가장 유명한 곡은 졸업식때 연주되는 ‘위풍당당한 행진곡’과 소품 ‘사랑의 인사’ 등이다. 비운의 천재 재클린 뒤 프레가 연주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하게된 첼로 협주곡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세상에 남겨진 가장 위대한 첼로 협주곡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엘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지금도 엘가의 사실상의 대표곡이지만) 바로 ‘수수께끼’라는 이름을 가진 변주곡이었다.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種(종, 장르)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낭만파 음악도 아니고 현대 음악도 아니다. 브람스에 영향을 받았는지 바그너의 영향을 받았는지, 인상파 음악인지도 알 수가 없다. 사실 그가 활약하던 시기(1857-1934)가 모호하긴 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의 시벨리우스(1865-1957) 같은 사람은 내셔널리즘에 심취하여 조국 핀란드를 그리는데 주력하여 그런대로 성공했지만 영국에서 클래식 작곡가가 설 자리는 매우 애매했다. 이소리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저 소리도 아닙니다.
스트라빈스키는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현대음악에 올인했지만 카톨릭 신자로서 종교 음악과 합창곡들을 많이 남긴 엘가는 현대음악에만 집착할 수도 없었다. 말 그대로 무명 작곡가로 남겨질뻔했던 엘가를 구한 것이 바로 ‘수수께기 변주곡’이었다. 이 작품은 엘가의 이름을 유명하게 했을 뿐 아니라 당시 클래식 분야에서 이렇다할 내세울 작곡가가 없었던 영국의 자존심을 세워준 스매싱 히트작으로서 현대 음악과 낭만파 사이의 한마디로 낀세대 음악으로서는 (같은 낀세대 작곡가 라흐마니노프가 교향곡으로 보기좋게 망신당했던 것과는 다르게) 정말 보기 드문 작품성과 대중성을 한꺼번에 거머쥔 일대 성공작이 되었다.
그러나 작품의 외형은 굳이 음식에 비교하자면 호떡(?)과 같은 작품이었다. 즉 (대작이라고 느낄만한) 별다른 느낌이 없는 음악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추위와 고독이 찾아 올 때… 을씨년스런 날씨… 혼자 있고 싶어질 때… 텅빈 마음의 상실감… 초겨울 삭풍이 휘몰아쳐 올 때, 아직 남쪽 하늘로 떠나지 못한 철새의 마음 같다고나할까... (당시유럽의 세기말적 분위기가 그랬다. 곧이어 1차세계대전이 몰아닥친다.) 너무 고독하기 때문에 영혼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비로소 떠 오르는 음악... 왠지는 모르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좋으면서도 미스테리하게 들려오는 음악...
엘가의 ‘수수끼끼 변주곡’은 엘가가 각 곡마다 주제를 제시하지 않고 대신 널리 알려진 선율로 기호를 삼았는데, 이를 그저 유명한 선율이라고만 말했을 뿐 그 정체를 밝히지 않아 '수수께끼 변주곡'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첫 주제와 마지막 곡을 제외한 14개의 변주들은 엘가의 친구들을 지칭하고 있는데 마지막 곡은 엘가 자신의 음악적 자화상이었다. 1899년 초연을 지휘했던 세계적인 지휘자 한스 리히터(Hans Richter)가 극찬하여 일류 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으며 1910년 말러가 뉴욕필에서 지휘하는 등 엘가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연주되는 곡이 되었다. 특히 9번은 엘가 자신이 타이타닉 침몰 당시 희생자들의 위해 발췌 연주하여 감동을 주었으며 지금도 영국에서는 유명 인사들이 사망할 때 마다 이 곡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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