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이스X ‘코리아 패싱’
▶ 3시간전 ‘231만주 인수’ 밝혔지만 철저한 고객등급 논리에 결국 배제▶ 일본에는 장기 파트너십 기반 더 줘▶ 미래에셋, 확약없이 5억달러 마케팅
스페이스X 상장 과정에서 불거진 공모 물량 0주 사태는 철저하게 비즈니스로 움직이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냉혹한 물량 배정 구조 속에 미래에셋증권의 협상력 부재가 초래한 결과물로 해석된다. 미래에셋은 확정된 물량 없이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 5억달러를 끌어모았으나 돌아온 것은 글로벌 자본시장의 높은 벽이었다.
14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은 스페이스X 상장 당일인 12일 오전까지도 주요 기관투자가들에 “물량 배정에 문제가 없다”고 확인해왔다. 구체적인 배정 물량 등에 관해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 이후 확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미국 증시 개장 3시간 전인 12일 오후 7시께 스페이스X가 SEC에 제출한 투자 설명서에 미래에셋증권이 231만4,815주(공모가 135달러 기준 약 3억1,250만달러)를 인수한다는 내용이 기재됐으나, 실제 물량이 배정되지 않으며 다시 한번 혼선이 빚어졌다.
한국 공모 참가자 일부는 이를 최종 배정으로 받아들였으나 실상은 미매각 대비용 ‘최대 인수 책임 한도’에 불과했다. 개장 직전인 12일 밤 9시에서 10시 사이 상황이 급변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본토 기관 수요 폭발을 이유로 미래에셋 측에 배정 물량 전액 삭감을 일방 통보했다.
12일 오후 10시 30분 미 증시가 개장했으나 공모 물량은 이전되지 않았고 한국 자산운용사와 기관들은 패닉에 빠졌다. 13일 0시 46분 스페이스X는 시초가 150달러로 첫 거래를 시작했고 펀드 편입이 시급했던 기관들은 장중 시장가로 주식 매수에 나섰다. 미래에셋이 기관 청약 투자자들에게 배정 무산을 최종 통보하고 증거금 환불을 안내한 것은 이미 거래가 진행 중인 13일 오전 2시께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철저한 고객 등급(Tier)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월가 생리를 간과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글로벌 IB 틈바구니에서 미래에셋은 ‘최약체’임에도 한국 1위 지위를 맹신했다는 얘기다.
한 글로벌 IB 고위 관계자는 “골드만삭스 고객 등급은 초기 클럽 멤버, 핵심 파트너, 일반 경쟁 고객 등으로 엄격히 나뉘며 사전에 물량을 확약한 계약은 애초부터 없었다”며 “일반 경쟁 등급에 불과했던 미래에셋이 한국 지위만 믿고 무리하게 청약을 진행하다 한계에 부딪힌 결과”라고 꼬집었다.
모건스탠리 등 대표 주관사 일부가 ‘그린슈(공모 물량 이상을 받아낼 수 있는 초과 배정 옵션)’로 공모 물량을 15% 늘렸음에도 한국에는 단 1주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뼈아프다. 일본이 예상보다 7배 많은 22억달러 상당의 물량을 받았다는 것은 아시아 내 체급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평가다.
골드만삭스 전체 수익 중 한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으로 대부분이 외국인 위탁매매 수수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일본은 세계 수익의 약 7%를 차지하는 대형 시장으로 1980년대 버블 시기부터 쌓은 자본력과 장기적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월가 내에서 강한 발언권을 지닌다.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결국 골드만삭스에 미래에셋은 중요한 고객이 아니었고 일본 기관은 네트워크와 시너지가 있다고 여겼다는 의미”라며 “실제 얼마 규모로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에셋이 확정된 물량처럼 증거금을 받았다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이 인수단 중 사실상 유일한 비(非)북미·유럽계 아시아 법인이었다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법인을 통해 참여해 즉각 거래가 가능했던 일본 미즈호증권과 달리 골드만 측이 리테일(일반 투자자) 공모 부재와 한국만의 T+2 결제 시스템 등을 한국 물량 배제의 ‘핑계’로 삼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래에셋 계열사들은 뉴욕 법인을 통한 별도 공모 참여로 약 3500억 원 규모의 청약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은 이 물량을 한국 투자자들에게 돌리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법적 문제 등으로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후폭풍은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공모 투자자들은 청약증거금 납입 후 13일 새벽까지 총 5억 달러가 묶였다는 점만으로도 타격이다.
5일 달러당 1559.5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12일 기준 1519.5원으로 2.56% 내렸다. 환차손만 200억 원에 달하는 셈이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전문 투자자들 중에서는 청약을 위해 대출을 일으킨 경우도 있어 수일간 무의미한 이자비용을 부담하게 됐다”고 전했다.
다른 익명의 투자자는 “증거금의 1%라도 책임 차원에서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다만 전문 투자자와 기관을 대상으로 청약이 진행됐던 만큼 실제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미래에셋증권은 전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에 참여하는 유일한 한국 증권사라는 상징성을 가질 기회도 놓치고 체면만 구기게 됐다.
당초 개인투자자들도 공모주 청약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하다 철회한 바 있다. 미래에셋 측은 “대표 주관사의 최종 배정 과정에서 판매 가능한 물량이 배정되지 않았다”며 책임을 주관사로 돌렸다.
이어 “SEC 공시 수량은 실제 물량과 다르며 사전에 배정이 없을 수 있다는 점을 안내했다”고 했다. 명시적인 대응책 없이 “고객에게 ‘불편’을 드리게 된 점에 송구하다”는 의례적인 말로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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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윤민혁·이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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