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스와 편먹고 협상 불가피 설파
▶ 여당서도 “오바마보다 더 퍼준다”
▶ 호르무즈 정상화 수순 유가 하락
미국과 이란 간 종전 양해각서(MOU)가 양국 대통령 서명으로 발효됐다. 미국 내에서는 이란에 지나치게 많이 양보했다는 혹평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핵무장을 막기에 충분한 합의라며 발끈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오전 1시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양자 만찬을 마친 뒤 베르사유궁을 나서며 취재진에 “베르사유에서 (MOU에) 서명했다. 방금 서명했다”고 말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도 서명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날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자국 국영방송 인터뷰에서 “방금 전 양국 대통령이 종전 MOU에 서명했다”고 확인했다.
당초 양측은 19일 스위스에서 만나 대면 서명을 할 계획이었다. 17일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19일 이전에 호르무즈해협을 열기 위해 서명 시점을 앞당기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미 전자 서명은 14일 양국 협상 대표단장인 JD 밴스 부통령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 간에 이뤄진 상황이었다. 서명 주체의 격을 양국 대통령으로 올려 MOU 발효 시점을 당긴 셈이다.
이에 앞서 미국시간 17일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MOU 원문을 공개했다. 19일 서명식 뒤 공개한다는 게 미국 측 안내였지만 이날 블룸버그통신 등이 초안을 보도하자 전화 브리핑을 통해 기자들에게 전문을 낭독하고 해석을 부연했다.
14개 조항으로 이뤄진 MOU에서 가장 비중이 큰 내용은 이란에 경제적 이득으로 작용할 수 있는 미국의 양보안들이었다. 4조는 4월 13일부터 시행해 온 대(對)이란 해상 봉쇄를 해제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10조는 제재를 면제해 이란산 원유, 석유·파생 제품의 수출 및 은행 거래, 보험, 운송 등 서비스를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11조는 이란이 동결 자금을 완전히 쓸 수 있도록 한다는 약속이다. 모두 MOU 서명 즉시 미국이 이행해야 하는 것들이다.
6, 7조도 미국이 이란에 제공하는 보상 성격이다. 6조에는 3,000억 달러(약 450조 원) 규모의 이란 재건 기금 조성 구상이 담겼다. 관련 계획은 60일 내에 최종 합의의 일부로 확정돼야 한다. 비핵화 반대급부로 마련된 7조 대이란 제재 해제의 경우 대상 제재가 모든 종류를 아우르도록 합의됐다.
이란이 해야 할 일은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2월 말 개전 이후 봉쇄해 온 호르무즈해협을 재개방하고(5조), 최종 합의가 도출된 뒤 그 틀에 따라 비핵화 과정을 밟으면 된다(8조). 호르무즈해협만 열어도 미국의 △해상 봉쇄 해제 △석유 판매 허용 △자산 동결 해제를 다 얻을 수 있는 구조다. 미국 CNN방송은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의 선박에 발포하지 않는 대가로 당장 많은 것을 얻어 간다”고 진단했다.
쟁점 조항별로 따져도 이란에 더 유리한 합의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5조를 보면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무료로 개방해야 하는 기간은 60일이다. 이 기간이 경과하면 해협 통과 선박에 돈을 받아도 합의 위반이 아니다. 같은 조항에는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의 미래 관리 및 해양 서비스를 규정하기 위해 오만과 대화할 것이라고 돼 있다. 실제 이란 협상단장인 갈리바프 의장은 17일 국영TV 인터뷰에서 서비스 수수료 부과 가능성을 시사했다. 통행료가 없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담과 배치된다.
미국 입장에서 2015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시절 체결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보다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결 자산 해제의 수혜자를 이란 중앙은행이 지정할 수 있도록 한 대목은 수혜처를 인도주의 사업 등 비(非)제재 대상으로 국한한 JCPOA와 다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테러리스트 또는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이란의 군 당국자나 기업체도 자산 동결 해제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며 미국 내 대이란 강경파의 우려를 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재건 기금 규모 역시 논란거리다. 구상이 현실화할 경우 이란이 얻게 될 경제적 혜택이 JCPOA를 능가한다. 지금껏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가 JCPOA 체결 당시 이란에 17억 달러(약 2조6,000억 원)를 제공한 것을 ‘현금 퍼주기’라고 비판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개전 명분으로 내세웠던 이란 비핵화 관련 조항(8조)마저 내용이 빈약하다. ‘이란이 핵무기를 획득하거나 개발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한다’는 문구는 새로운 게 아니다. 1970년 핵확산금지조약(NPT) 비준 당시 처음 약속했고, JCPOA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했다. 농축 핵물질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독 아래 이란 내에서 희석한다는 약속도 충분하지 않다는 게 NYT 지적이다. 핵물질을 해외로 반출해야 한다는 미국 주장을 굽힌 것이기 때문이다.
레바논 전선을 종전 대상에 포함한 것도 사실상 이란의 승리다. 레바논에 기반을 둔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위협에 대한 이스라엘의 염려를 미국이 일축했다고 NYT는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17일 출장지인 프랑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합의를 ‘트럼프 합의’로 명명한 뒤 “이것은 핵무기로 가는 길을 막는 벽”이라며 “누구도 그것을 뚫고 갈 수 없다. 우리는 벽을 세웠고 그들(이란)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게 됐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강력한 합의 추진 동기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경제적 재앙이었다”면서다. 이 발언은 이번 합의 뒤 주가가 급등하고 유가는 급락 중이라고 생색내는 과정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갑자기 이란에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미군이 이란을 심각하게 망가뜨렸으니 이란에 도움이 필요하고, 미국은 도울 의무가 없지만 재건 기금으로 민간 투자 통로를 열어 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동결 자산 해제와 관련해 “그것은 우리의 돈이 아니라 그들의 돈”이라며 “어느 시점에는 돌려줘야 할 것”이라고 했다. 회견 뒤 공항에서는 취재진에 “다른 나라들이 그것(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란이 갖지 못하는 것은 좀 불공평하다”고도 했다.
그러고서는 이란이 합의 사항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폭격을 재개하겠다고 위협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인기 없는 전쟁을 다시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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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성 특파원·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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