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희대 “재제청 헌법적 근거 없다” 다시 공넘겨…’배수진’ 평가
▶ 권한쟁의 등 헌재 판단 주목…여당서는 대법원장 사퇴론 재분출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김성수 신임 대법관(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조희대 대법원장(왼쪽)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조희대 대법원장이 22일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에 "헌법적 근거가 없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에 청와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맞받으면서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양측 갈등이 결국 정면충돌로 번졌다.
노태악 전 대법관 퇴임 이후 반년 넘게 이어져 온 대법관 공석 상태가 내년 6월까지인 조 대법원장 임기 내에 해소되기는 사실상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대법관 공석 장기화에 따른 상고심 재판 지연 등 피해가 결국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 첫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양측 갈등은 지난 1월 말부터 이어져 왔다.
후보추천위원회는 당시 김민기·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와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등 4명을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추천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사법부가 최종 후보를 놓고 합의를 보지 못하면서 제청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고, 지난 3월 퇴임한 노 전 대법관 후임 자리는 6개월 넘게 공석이다.
조 대법원장은 결국 합의를 마친 뒤 제청하는 관행을 깨고 지난달 18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손봉기 후보자를 임명 제청했고, 열흘 뒤 청와대는 "실질적 협의 없는 일방적 서면 제청"이라며 당초 추천된 나머지 후보들 가운데 재제청을 요구했다.
당초 법조계에선 조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대신 후보추천위원회를 다시 구성, 즉 '새 판'을 짜서 새로운 후보를 제청하리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은 이런 예상을 깨고 대법관 후보 '재제청 요청' 자체의 헌법적 근거를 문제 삼으며 "재제청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의 재제청 요청 관련 문서에는 재제청을 요청하는 구체적인 사유와 그 헌법적 근거가 적혀있지 않다"며 "달리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고 청와대 요청을 거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청와대는 대법원에 보낸 공문에서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한 헌법 104조 2항을 들어 재제청을 요구했다고 한다.
결국 조 대법원장은 이런 헌법 조항만으로는 대통령에게 대법원장의 제청을 반려하거나 재제청을 요구할 헌법적 권한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해석된다.
정지웅 변호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장)는 "헌법상 대법관이 제청할 때 (대통령이) 반려하는 절차가 없단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법원이 심사숙고해 결정을 내린 듯한데 사실상 퇴로를 끊고 배수의 진을 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익명의 한 고법판사도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를 대통령이 국회 동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거부할 수 있는지를 두고 판사들 사이에선 근거가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며 "대법원장이 그 부분을 정확히 짚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청와대가 손봉기 후보자 임명을 거부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은 점을 두고도 이번 재제청 요구 자체의 정당성을 문제 삼은 것으로 풀이된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에 대해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서 '부적법하니 다시 제청해달라'는 것이면 모르겠지만 왜 손 후보자 임명을 거부하는지 아무런 근거가 없지 않으냐"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조 대법원장이 새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식이든 기존 추천 후보 중 제청하는 방식이든 청와대가 헌법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사실상 모두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청와대로 다시 공을 넘긴 셈이다.
청와대 역시 대법원장의 뜻을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청와대는 당장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 임명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으로 헌법에 위배되는 인식"이라는 공식 입장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조 대법원장이 공식 입장을 밝힌 시점도 눈길을 끌다.
전날 청와대에서 열린 김성수 신임 대법관 임명식에 참여해 이 대통령을 직접 만난 지 하루 만에 재제청 요구에 대한 거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전날 차담에선 분위기 좋게 대화를 나눴고, 대법관 재제청과 관련한 이야기는 오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대통령이 순방길에 올라 출국하자마자 다음날 곧바로 사실상 정면충돌로 비칠 수 있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청와대에선 "빈집털이"란 반응도 나왔다.
이번 충돌의 밑바닥에는 작년 5월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판결 이후 깊어진 정부여권과 사법부간 갈등이 자리하고 있단 분석도 나온다.
결국 이렇게 양측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 되면서 대법관 공석이 더욱 장기화하게 됐다.
조 대법원장 임기 내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인선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냔 전망도 나온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둘 다 양보하지 않겠단 걸로 보이는데 사실상 조 대법원장 재임 중 공석 해소는 어려워진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차진아 교수는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겠단 입장인 만큼 사실상 대법원장이 교체돼야 해결될 것"이라며 "결국 사법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국민들이 불안해지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사법부와 청와대가 팽팽한 긴장 관계를 이루는 만큼 일각에서는 헌법재판소 역할론도 부각된다.
국민의힘은 전날 이재명 대통령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가 국회의 헌법상 권한을 침해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이 대통령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는 국회의원들의 대법관 임명동의안 심의·표결권과 국회의 대법관 임명동의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게 국민의힘 측 주장이다.
대통령이 제청된 대법관 후보자 가운데 일부만 선별해 임명동의안을 제출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국회의 임명동의권 행사까지 차단하게 된다고 국민의힘은 주장한다.
권한쟁의심판은 헌법상 국가기관 간에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관하여 다툼이 발생한 경우에, 헌법재판소가 유권적으로 심판하는 제도다.
아울러,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공세 수위를 높일 가능성도 있다. 탄핵심판 또한 헌법재판소의 몫이다.
다만 정부 지지율이 낮아진 상황에서 탄핵 추진에 대한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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