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 원칙 흔든 이익배분
▶ AI·로봇 등 신사업 추진 절박한데
▶ 현대차·기아·LG·한화·HD현대 등
▶ 타업종 노조도 성과급 요구 빗발
▶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 될 수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내놓은 파격적인 노사 성과급 합의가 타 업종 전반으로 확산하며 재계 전체를 흔들고 있다.
자본시장 일각에서는 기업의 성장 과실이 주주 환원으로 연결되기 전 노조의 이익 선취가 상시화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업종별 경기 판도가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번 합의가 재계 전반의 ‘표준 모델’로 요구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투자은행(IB) 업계와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를 기반으로 이번 노사 합의안을 대입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자사주 포함 성과급 지급 총액은 2026년 37조 원, 2027년 49조 원, 2028년 45조 원 등으로 예상됐다. 3년간 무려 131조 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 같은 천문학적 보상안으로 인해 시장과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도 커지는 분위기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같은 성과급 합의가 재계 전반의 표준 모델로 요구될 조짐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반도체 업종은 최소 수년간 전례 없는 호황이 예상되지만 자동차, 조선, 정보통신기술(ICT) 등 국내 주요 산업들은 처지가 다르다.
이들은 경기 사이클에 취약할 뿐 아니라 미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당장 생존을 위해 인공지능(AI), 로봇, 모빌리티, 차세대 선박 등 신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절박한 시점으로 평가받는데 현장에서는 “‘삼전닉스’만큼 성과급을 달라”는 노조의 압박에 직면해 있다.
자사주 성과급 지급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은 당장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로 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배경에는 상법 제341조의 4와 제342조가 자리 잡고 있다. 개정 상법은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를 1년 내 소각하도록 규정해 대주주의 지배력 확대나 편법 활용을 원천 차단했다.
다만 임직원에 대한 보상 등 예외 목적에 한해 소각 의무를 면제해주는데 이때 이사회의 처분 계획 수립과 주총의 ‘자기주식 처분 계획 승인’ 결의를 거치도록 했다. 해당 안건은 주총 일반 결의 사안으로 주주 환원 재원 잠식을 우려한 외국인과 소액주주들이 반대파로 결집할 경우 심각한 진통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전문가들 역시 최근 벌어지고 있는 노사 합의안이 상법상 명시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에 배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금을 차감하기 전 단계인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임직원에게 사전 할당하는 방식은 시장의 정상적인 이익 배분 질서를 흔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자본주의에서 기본은 주주 이익을 충족시킨 다음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이익을 고려하는 것”이라며 “주주를 제외한 이해관계자, 그중에서도 근로자들만 대상으로 한 분배가 결정됐다”고 꼬집었다.
성과급 요구는 이미 산업계 전반으로 옮겨붙었다. 현대차·기아노조가 순이익의 30%를 요구한 데 이어 LG와 한화·HD현대등 주요 대기업 계열사들도 이전 대비 과도한 요구를 내놓고 있다. 미래 성장 동력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아온 ICT·플랫폼 업계도 성과급발 파업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코스피지수가 급등하는 가운데 주주들이 체감하는 배당수익률이 한층 낮아진 점은 주주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코스피 배당수익률은 0.80% 안팎을 기록, 1년 전(2.10%)과 비교해 절반 이하로 내려앉았다.
삼성전자의 배당수익률 역시 최근 0.56%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성과급으로만 매년 수십조 원씩 쏟아부어야 할 것으로 예상되자 주주들 사이에서는 성장의 결실이 주주 환원이 아닌 성과급 비대화에 쏠려 있다는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최근의 세태가 또 다른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외 증시가 높은 배당수익률을 무기로 글로벌 자금을 유인하는 반면 코스피는 노조의 이익 선취 구조로 인해 주주 환원이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소액주주 단체 일부는 이미 전면적인 법적 투쟁을 선언하며 소송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거대한 이중고에 직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내부적으로는 대규모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가 무겁다.
반면 외부에서는 ‘왜 기업 성장의 결실을 노조가 먼저 독식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주주들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미래 성장을 위한 자금 마련에 고심하는 상황에서 노조의 요구와 주주들의 환원 압박이 동시에 회사를 옥죄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진통은 한국 특유의 경직된 노동시장과 선진국형 보상 체계가 기형적으로 결합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국내 기업들이 고용 안정성과 해고 보호 측면에서는 유럽식의 강한 법적 규제를 적용받으면서도 보상 측면에서는 미국식 성과급 체계를 요구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미국은 고용 유연성을 전제로 한 개별 몸값 협상이나 스톡옵션 방식을 취할 뿐 한국처럼 영업이익의 10% 이상을 전 직원에게 일괄 분배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익명의 IB 업계 대표는 “한국은 고용 안정성은 유럽, 보상은 미국식을 추구해 괴리가 크다”면서도 “미국조차도 영업이익의 10% 이상을 직원 전체에 일괄 분배하는 구조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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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이충희·김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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