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남 회장]
▶해병대 훈련·월남전 거치며 단단한 사람으로 거듭나
▶1983년 뉴욕으로 와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인연
▶이민 초기 생업 대신 연락장교·재향군인병원 자원봉사 활동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한 소년이, 70여 년이 흐른 지금 미국사회에서 ‘참전 기억의 수호자’로 서 있다. 이광남 회장의 삶은 개인의 생애사를 넘어, 한국전의 희생을 잊지 않으려는 한 디아스포라의 오랜 의지이자 시대의 기록이다. 그의 발자취를 다시 조명하는 일은, 곧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와 공동체의 책임을 되새기는 일이다.
■전쟁 속에서 어머니를 잃은 소년, 이태원에서 다시 일어서다
이광남 회장의 삶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시작되었다. 1942년 서울 이태원에서 태어난 그는, 9살이 되던 해 6·25 전쟁을 맞았다.
피난길은 혼란 그 자체였고, 오산으로 내려가던 중 그는 어머니와 헤어졌다. 하루아침에 ‘잠시 고아’가 된 소년은 풀과 뿌리를 캐먹으며 연명했고, 독초를 잘못 먹어 생사를 넘나들기도 했다. 그 시절의 기억은 그에게 아직도 선명하다.
오산 인근 다리에서 미군들이 전투를 벌이던 순간, 강에 포탄이 떨어지자 미군 병사가 그를 불러 트럭 밑으로 숨기며 목숨을 구해준 일. 그는 그때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있다.
20일 만에 기적처럼 어머니와 재회하면서 그는 다시 이태원으로 돌아왔다. 그는 미군이 많던 동네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히고, 군인들의 규율과 책임감을 가까이서 보며 자랐다. 그러나 피난 시절의 영양실조는 오래 남아, 학교에 다닐 때까지 몸이 몹시 쇠약했다.
그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인생의 목표를 ‘건강 회복’으로 정했다. 운동에 매달렸고,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 결과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무난히 졸업(1964)하고, 스스로 선택한 해병대 장교 지원 길로 들어섰다. 9개월의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포항 해병사단 산악중대에 배치되었고, 그때 또 하나의 전쟁이 그의 삶을 부른다. 바로 월남전이었다.
■월남전의 생사경계, 그리고 군인의 길
1967년, 그는 육군 군사정보대에서 교육을 받고 이듬해 월남전에 참전했다. 전장은 생사의 경계였다. 전우를 잃는 고통, 살아 돌아온 자에게 남는 무거운 책임, 전쟁이 남긴 상처는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귀국 후 1969년 군사유학 시험에 합격해 미 해병학교와 미 해군교관학교에서 8개월간 군사교육을 받았다.
1972년 말 현역에서 예편하기까지 그는 군인으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제대 후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 장려정책에 힘입어 가죽제품 무역업에 뛰어들어 10년동안 삶의 터전을 닦았다.
그리고 1983년, 비즈니스 비자를 받아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에서 다시 무역업을 10년간 이어갔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는 늘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남아 있었다.

2003년 한국자유연맹(총재 권정달) 뉴욕지부장때 재향군인병원에 입원해있는 참전용사들에 자유의 메달 수여 후.
■뉴욕 한인사회 참전용사들의 기둥이 되다
1985년, 그의 삶은 다시 군과 연결된다. 재향군인회 활동을 하던 친구들의 권유로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는 뉴욕·뉴저지 곳곳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부상병만 10만 8천 명으로 추산되던 시절. 그는 영사관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한국 관련 자료들을 받아 전달하고, 병원을 찾아 위문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1994년, 그는 한국재향군인회 뉴욕지회 회장을 맡았다. 그리고 뉴욕·뉴저지 참전용사 150명을 초청해 주미 대사관 수석무관을 모시고 ‘향군의 밤’을 대단히 성대하게 개최했다.
그의 활동은 미국 본부에도 알려져 2012년 미 한국전 참전용사회(KWBA) 본부에서 연락장교로 임명되었다.
서울에도 그의 왕성한 활동과 이름이 전해졌다. 2003년 한국자유연맹 권정달 총재가 그를 뉴욕지부장으로 임명했고, 권 총재는 수천 개의 한국전 자유메달을 들고 와 이 회장과 함께 각 단체를 순회하며 참전용사들에게 메달을 수여했다.
그는 2002년, 뉴욕주 방위군에 소령으로 임명되었고, 한국에서 군 경력자 12명을 모집해 입대시키는 역할도 했다. 같은 해 뉴욕기독군인회 회장을 맡아 세계기독군인회 이필섭 회장을 초청해 미국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도 했다.
■ 이민자의 삶, 그러나 그는 ‘참전용사들의 사람’으로 살았다
이민 초기, 많은 한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터에서 밤낮없이 일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참전용사 연락장교, 재향군인병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느라 그런 삶을 선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말한다.
“나는 나름대로 할 일, 보람 있는 일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이제 많은 세월이 흐르며 참전용사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고, 남은 이들은 소수밖에 없다. 그는 그 사실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자신이 과연 잘 살아온 것인지 반성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고 말한다.
■ 40년의 봉사,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그의 발걸음
지난 24년간 그는 유나이티드 건강보험회사와 여러 회사에서 쌓은 경력으로 지금은 메디케어·메디케이드·SSA 등을 돕는 소셜워커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곁에는 40년 동안 받은 임명장, 감사장, 감사패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위로’라고 표현한다. 진짜 공로는 자신이 아니라, “한국을 지켜낸 참전용사들의 희생”이라고 말한다.
이 회장은 특히 오산전투에서 자신을 트럭 밑으로 불러 포탄을 피하게 해준 미군 병사가 베풀어준 그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그는 지금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고 한다.
현재 그는 뉴욕장교연합회 공동회장으로 매월 모임을 갖고 있으며, 오래 전에 조직한 해병복지단의 회장으로도 몸이 불편한 분을 찾아 위로하거나 장례를 치러주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해병대전우회, 월남참전전우회, 뉴욕상춘회, 아사달 역사연구회 등에서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 신앙으로 완성된 그의 삶 -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다”
이 회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퀸즈장로교회에서 30년간 안수집사로, 이후 뉴욕모자이크교회에서 10년간 사역장로로 섬겼다. 부인 이옥희 여사도 이 회장과 같이 두 교회에서 40년간 전도사로 활동하다 은퇴했다.
두 아들과 일곱 손주를 둔 그는, “내가 여러 번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외유내강형의 이 회장은 근면 성실을 삶의 신조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어릴 적 피난길의 고통, 해병대의 혹독한 훈련, 월남전의 죽음의 그림자. 그 모든 경험이 그를 어떤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끝까지 이겨내고 완수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 기록되어야 할 이야기, 이어져야 할 헌신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는 기록되어야 하고 그들의 희생과 헌신은 누군가 이어가야 한다.
이광남 회장의 삶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다. 그는 전쟁이 남긴 상처를 사람을 품는 힘으로 바꾸고, 이민자의 고단함을 공동체를 일으키는 힘으로 바꾸었다. 그가 걸어온 길은 넓고도 깊다. 그리고 그 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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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 (917)517-6219
■평생 잊지못하는 두 참전용사 이야기■
이 회장은 수많은 참전용사들을 만났지만, 특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평생 잊지 못한다.
① 한국전에서 실종된 미군포로 Mandra
1951년 퀸즈 칼리지포인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 해병대에 입대한 뒤 한국전에서 실종된 병사다. 그가 소련 감옥에서 1960년 초 사형당했다는 사실을, 그의 누이동생이 직접 현지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살아 돌아올 것이라 믿고, 주일 미사 외에는 외출도, 여행도, 이사도 하지 않은 채 92세까지 아들의 사진을 품고 살았다.
이 회장은 “그 노모가 천국에서 그 귀한 아들을 꼭 만나길 바란다”고 말한다.
② 포로수용소에서 미군들을 돌보다 숨진 에밀 카플 신부
천주교 군종장교 대위로 한국전에 참전한 그는 부상병들과 함께 포로가 되어 북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 미군들을 돌보다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2001년, 그의 고향 캔자스주 필슨 성당 앞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 회장의 마지막 소원 중 하나는 “한인들이 그곳에 가서 에밀 카플 신부를 잊지 않고 있다고 외쳐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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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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