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은 우리 기복의 시작이었으며, 여전히 우리 삶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아무리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미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그랬다. 미신은 내 믿음의 출발점이었고, 종교를 갖고 있는 지금도 때때로 ‘미래를 본다'는 유혹에 곁눈질한다. 불투명한 미래를 알려준다고 하면 알고 싶어 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미신도 지적 권위를 입으면 정당화 된다.
미래를 내다보는 명리학/역학이나 점성술 등을 그들은 학문이라고 하고 우리는 점이라고 한다. 특히 나라의 미래나 지도자의 운명 같은 거창한 주제 앞에서는 떳떳하게 점을 보려는 핑계를 찾기도 한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큰 그릇'이라는 명분으로 한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내가 개척해 나간다고 한다. 동시에 신의 인도하심에 의지하며 산다고도 한다. 그 안에 이중적인 마음이 있다.
이처럼 개인적인 영역은 신앙의 테두리 안에 두어 고급스럽게 하면서도, 나와 멀리 떨어진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거시적인 문제들은 미신이라는 창을 통해 엿보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남들과 함께하는 종교 모임에서의 기도는 동참하려 노력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기도 앞에서는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어린 시절부터 두터운 신앙생활을 해오며 흔들리지 않는 종교관을 가졌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도 ‘유혹'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미신은 손을 내민다. 눈앞에서 즉각적인 해답을 제시해줄 것만 같은 미신은 위안이 필요한 순간마다 가까이에 있다.
새해가 되면 신문에 용하다는 역술가의 한해운수를 올리는 것은 독자가 있기 때문이고 신문에 난 매일의 운수를 지나가는 오락정도로 생각하면서 꼼꼼히 즐겨 보는 사람이 많다.
모두에게 각기 다른 기회가 찾아오듯, 종교 또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던 것이 어느 날 문득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길로 다가 오기도 한다. 늦게 찾아온 종교를 통해 삶의 새로운 방향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리어 깨달음을 과시하며 교만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이들도 있다. 종교인에게 상처받고 점 보러 다니며 사는 사람에게 더 순수한 모습을 보기도 한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더 고상해 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남을 판단하지 말자고 배우면서도, 우리는 늘 보이지 않는 미래를 먼저 판단하려한다. 나라의 운명은 점으로 묻고, 내 삶은 믿음으로 산다고 말하는 나의 기도는 어쩌면 두개였다.
그러나 돌아보면, 미래를 알고 싶은 마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를 감당하려는 용기였다. 점은 불안을 잠시 덜어주지만, 믿음은 불안을 안고 걸어가게 한다. 그것이 미신과 종교의 경계에서 흔들리던 내가, 조금은 정직해지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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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혁 패사디나,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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