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만길 회장의 삶과 철학
▶ 엔지니어에서 세탁소 운영, 체육회 리더로 ‘책임’과 ‘성실’ 대변

제14대 뉴욕대한체육회 김만길 회장
▶뉴욕 볼륨댄스협회 통해 뉴욕대한체육회에 가입
▶ 제14대 회장직 맡아 미주체전선수 후원, 생활체육 활성화 헌신
▶ ‘가화만사성’의 본보기 ⋯ 가업이던 세탁소 딸이 맡아 운영

전 뉴욕대한체육회장들과의 모임후 함께 자리한 전직 회장들.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김만길 회장.
뉴욕 롱아일랜드 서폭 카운티의 한적한 주택가. 30×50 피트의 넓은 마당에는 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채소와 과일이 자라나고, 닭장에서는 하루 열 개가 넘는 신선한 달걀이 쏟아진다.
이 곳은 김만길(82) 전 뉴욕대한체육회 회장의 집이자, 그의 아내 김숙희(77) 여사가 열심을 다해 일궈온 삶의 터전이다. 이 부부의 삶은 조용하지만 단단하고, 소박하지만 깊은 맛이 있다. 그리고 그 단단함이 바로 오늘의 뉴욕대한체육회를 지탱해온 한 축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뉴욕까지, 학문과 현장의 두 세계를 건너다
김만길 회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1970년 인하공대 금속공학 학사, 이어 연세대 금속공학 석사를 취득했다. 학문적 열정은 그를 미국으로 이끌었고, 피츠버그 대학원 과정까지 밟으며 금속공학 분야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졌다.
한국에서는 한국교육개발원(KEDI)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교육·산업 분야의 정책 연구에 참여했다. 그러나 1982년 7월, 그는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도미를 결심한다. 미국에 도착한 후 첫 직장은 Cannon Aluminum Products Inc. 그곳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기술자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가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길을 내려놓고 세탁소 운영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된다. 이 결정은 단순한 직업 전환이 아니라, 이민자로서의 생존과 책임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선택이었다.
■체육회와의 인연, 그리고 20년 넘게 이어진 봉사
김만길 회장이 체육회에 발을 들인 것은 2001년. 당시 정경진 체육회장이 찾아와 “미국인 대회에 한인이 선수로 참가한다”는 소식을 전했고, 볼륨댄스스포츠가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 계기였다.
아시아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가능성까지 언급되자 김 회장은 “이건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어, 뉴욕 볼륨댄스협회를 통해 뉴욕대한체육회에 가입했다고 한다.
그의 체육 활동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볼륨댄스스포츠를 필두로 축구, 스키, 승마, 골프 등 다양한 종목을 경험하며 체육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힘을 몸으로 느껴왔다.
20여 년 동안 그는 이모저모로 묵묵히 오늘날 체육회 발전에 ‘숨은 동력’이었다.
그리고 2007년 제14대 회장직을 맡아 미주체전참가 선수 후원, 생활체육활성화 등으로 뉴욕대한체육회에 새로운 도약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사진]
■이민자의 삶, 공동체의 힘을 믿다
김 회장은 말한다. “이민자의 삶은 혼자서는 절대 버틸 수 없습니다. 서로 돕고, 서로 기대고,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체육회는 그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야 합니다.”
그의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삶 자체가 공동체의 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엔지니어에서 세탁소 운영자로, 연구원에서 체육회 리더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에서 지역사회의 중심 인물로. 그의 삶은 늘 ‘책임’과 ‘성실’이라는 두 단어로 설명된다.
김 회장은 말한다. 체육회 활동중 가장 보람됐던 순간은 “한인 선수들이 미국 대회에서 당당히 서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그 순간만큼은 이민자로서의 어려움이 모두 잊혀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바람
“뉴욕대한체육회가 더욱 든든하고, 더 젊고, 더 활기차고 안정된 조직으로 발전하는 것. 그리고 2세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뉴욕대한체육회에 남긴 발자취, 그리고 앞으로의 길
김만길 회장은 화려한 언변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대신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건 열심히,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의 리더십은 조용하지만 강하다. 그리고 그 조용한 힘이 뉴욕대한체육회가 이제까지 오는 데 적지않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민 1세대가 만들어온 공동체의 토대 위에 이제 2세와 3세가 설 수 있도록 그는 오늘도 열심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두 부부는 골프, 여행 등으로 은퇴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김만길 회장의 삶은, 이민자의 고단함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고 공동체를 일구어온 한 사람의 ‘성실한 서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마당에서 자라는 채소처럼, 그의 삶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뉴욕한인사회를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한 김 회장 부부.
■ “아내와 아이들은 내 인생에 든든한 버팀목” ■
◆성실함으로 일군 가정
김 회장 부부에게는 1남 2녀, 세 명의 자녀가 있다. 첫째 딸 La Young Trantum(50)은 부모의 성실함을 그대로 이어받아 현재 가업인 세탁소와 런드로멧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둘째 딸과 셋째 아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안정된 삶을 꾸려가고 있다.
특히 아내 김숙희 여사는 남편 못지않은 성실함으로 세탁소 경영을 함께 이끌었고, 남편이 체육회 활동 등 바깥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다.
그녀의 뒷마당 텃밭은 이미 지역사회에서 유명하다. 참외, 수박, 고추, 상추, 배추 등 계절마다 다른 작물이 자라고, 많을 때는 20마리까지 키웠던 닭들이 낳는 달걀은 이웃과 나누는 기쁨을 선물한다.
“아내의 자랑은 그거예요. 자기가 키운 걸 이웃과 나누는 그 마음. 그게 우리 가족의 삶을 지탱해온 힘이기도 했죠.” 김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까지 이룬 것은, 아내와 아이들의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힘든 점이 많았을 거에요. 특히 아내의 성실함과 따뜻함은 제 인생에 가장 큰 힘이고,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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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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