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발 고유가, 인플레 재점화 우려…재정적자 등 구조적 요인
▶ 증시와 경제 불안감…정부·기업·가계 차입비용 상승
미국 국채 초장기물 금리가 거의 20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미 증시와 경제에 불안감을 드리우고 있다.
미 국채 금리, 특히 장기채 금리 급등의 주된 배경은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내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는 데 있다.
미국 주식 시장 상승과 강한 경제 성장 전망을 뒷받침해온 핵심 기반인 금리 인하 기조가 끝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점에서 미 국채 금리 동향은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한 양상이다.
금리 상승은 차입 비용 상승을 촉발해 미국 경제 성장을 둔화할 리스크로 지목된다.
◇ 30년만기 미 국채 금리 연 5.2% 찍어…2007년 후 처음
지난 19일 3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한때 7bp(1bp=0.01%포인트) 오른 5.20%까지 치솟았다. 30년물 금리가 5.20%에 도달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처음이다.
글로벌 채권의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도 한때 10bp 상승한 4.69%까지 상승해 2025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10년물 금리는 지난 15일 강력한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4.5% 선을 돌파한 후 상승 흐름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이후 장기물 금리 급등세는 다소 진정돼 22일 각각 5.06%, 4.56%로 한 주 거래를 마쳤다.
프라임 캐피털의 최고투자책임자(CIO) 윌 맥거프는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채권 자경단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는 재정·통화정책에 반발해 국채를 매도하는 투자자들을 뜻한다.
◇ 전쟁발(發) 고유가… "인플레 일시적 아닐 수도"
미 국채 장기물 금리 급등세의 가장 큰 요인은 이란 전쟁발 고유가다.
세계 원유·석유제품의 약 2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제 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전쟁 발발 이전보다 60% 높은 수준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이 교착 상태를 지속되면서 고유가 수준이 장기화하고 이는 인플레이션을 재점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4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동월 대비 3.8% 상승, 2023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쟁 발발 직전인 2월(2.4%)보다 크게 뛴 수준이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작년 동월 대비 2.8% 상승했다.
연준이 통화정책의 준거로 삼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지난 3월 작년 동월 대비 3.2% 올랐다. 이전에도 연준의 목표치(2.0%)를 웃돌았지만, 괴리가 더욱 확대됐다. 3%대 상승은 4월과 5월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 분쟁만이 금리 상승을 이끄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특히 장기물 금리 상승은 수년 동안 연준 목표치를 초과하는 인플레이션과 수급 상황 등 구조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준은 2024년 9월 기준금리를 5.25∼5.50%에서 0.5%포인트 내리며 4년 반 만에 통화 긴축 기조를 끝냈다. 이후 현재 3.5~3.75%까지 내렸다.
같은 기간 30년물 미 국채 금리는 4.0~5.1% 범위에서 움직였다. 기준금리가 1.75%포인트나 인하됐지만 30년물 금리는 이러한 기준금리 인하 추세를 반영하지 않았다.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2%로 내려가지 않은 데다 미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도 악화 일로를 보였기 때문이다. 연방 정부의 국채 발행 물량은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미 국채의 '안전자산 지위'는 흔들렸다.
◇ 연준 연내 금리 인상 전망 커져
이에 따라 연준이 연내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지고 금리 동결을 넘어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23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선물 시장에서는 오는 12월까지 연준이 금리를 25bp 인상할 확률을 42.5%로 반영했다. 한 달 전 확률은 '제로'였다. 반면 금리동결 확률은 1개월 전 75.9%에서 32.1%로 낮아졌다. 금리 인하 확률은 사라졌다.
22일 취임한 케빈 워시 연준 차기 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금리 인하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워시 의장을 포함한 연준 이사 7명과 지역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 5명 등 총 12명이 투표권을 가진다. 의장이 금리를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지난달 28∼29일 열린 FOMC 회의의 의사록을 보면 다수 위원은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을 계속 웃도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할 수 있다는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인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비둘기파 성향(통화완화 선호)으로 분류돼온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마저 최근 공개 강연에서 "인플레이션이 조만간 진정되지 않는다면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을 더는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소시에테제네랄 아메리카스의 수바드라 라자파 미국 리서치 총괄은 블룸버그에 "워시 내정자는 인플레이션이 오르는 시기에 연준에 합류하게 됐으며 그의 비둘기파 성향은 시장과 동료 연준위원들 양측으로부터 도전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연준이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이라고 평가하는 데 신중해졌다는 관측도 있다. 연준은 2021~2022년 인플레이션을 "일시적 현상"으로 판단했다가 뒤늦게 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했는데 이를 두고 비판이 많았다. 워시 의장도 이를 "정책 오류"라고 비판한 인물 중 한명이다.
◇ 차입비용 상승은 미 증시와 경제 둔화 리스크
국채 금리 상승은 미국의 정부, 기업, 가계에 차입 비용을 높인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보유 국가부채 비율은 1분기 말 기준으로 100.2%로, 100%를 넘어섰다. 이 비율이 100%를 넘어선 것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인 2020년 2분기 일시적인 상승을 제외하고 2차 세계대전 직후 이후 처음이다
올해 미 연방정부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작년과 비슷한 5.8% 수준이 될 것이라고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전망한다. 확대된 재정적자 폭이 축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국채 금리 상승은 연방정부의 차입비용을 증가시켜 재정적자를 더욱 악화한다. 지난해 연방정부는 순이자 비용으로 9천700억달러나 지출했다.
또한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끌어올린다. 18일 기준 미국의 30년 만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6.49%로, 1주일 전보다 0.04%포인트 올랐다. 연준이 3연속 금리 인하에 나서기 시작한 지난해 9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어포더빌리티'(구매 여력)를 약화하는 주된 요인이다.
미국 주가 상승을 이끄는 기업 이익 전망 역시 흔들릴 수 있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차질에도 S&P 500 지수의 이익 전망치 상향이 지속되고 있지만 차입비용 증가가 이런 추세를 둔화하거나 되돌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빅테크들이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 대규모 자본지출(CAPEX)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채권 발행 등 외부 차입을 적극 활용하는 가운데 금리 상승은 조달 비용 상승으로 투자 둔화를 초래할 수 있다.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진 사모대출 시장이 집중적으로 대출을 제공한 중소기업들은 특히 금리 상승 국면에서 취약하다는 평가다.
이와 함께 고유가 여파로 미국의 소매 판매 증가세가 이미 둔화하는 조짐을 보인다. 4월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0.5% 증가, 3월(1.6%)과 비교해 크게 둔화했다. 소매 판매는 미 경제의 중추인 소비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에너지 가격과 차입 비용 상승이 결국 "수요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전망도 거론된다. 소비자들이 지출을 줄이고, 기업들도 투자를 축소하면서 경제 활동이 둔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연준이 인플레이션 억제보다 경기 둔화 억제를 우선해 통화완화 정책으로 복귀하는 여건을 제공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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