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판소원법 통과…헌법 어긋나면 ‘판결 취소→다시 재판’
▶ 사법부선 “우리 헌법 체계 안맞아…소송지옥·희망고문”
▶ 헌재 “사법권 독립 무제한적 아냐…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서울=연합뉴스) 국민의힘 김희정 의원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8차 본회의에서 전날 상정된 재판소원제법(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2026.2.27
27일(이하 한국시간) 재판소원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앞으로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에서 시시비비를 따져볼 수 있게 된다. 법원 재판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면 헌재는 해당 재판을 취소하고 법원은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다시 재판해야 한다.
헌재는 사법권 행사의 영역에서 기본권 보장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사법부를 중심으로는 재판소원이 사실상의 '4심제'로 작용해 법적 불안정이 지속되리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 헌재법 개정해 '법원 재판'도 헌법소원 대상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민주당 주도로 가결했다.
재판소원법은 기존 헌법소원 심판 대상에서 제외됐던 '법원의 재판'을 심판 대상에 포함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는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한 헌재법 68조 1항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를 삭제하는 것이다.
확정된 재판이 ▲ 헌재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재판해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 헌법·법률이 정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 헌법·법률을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 재판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헌재는 심리를 거쳐 법원의 재판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경우 해당 재판을 취소한다. 이 경우 법원은 헌재의 결정 취지에 따라 다시 재판해야 한다.
민주당은 지난해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판결 이후 사법불신 여론을 강조하며 재판소원을 비롯한 '사법개혁'을 추진해왔다.
법원의 재판도 사법권의 행사로 공권력의 일종이므로 입법권, 행정권 행사와 마찬가지로 헌법소원 심판 사건의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재판소원 도입으로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도 잘잘못을 따질 수 있게 돼 기본권 보장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헌재 설립 때부터 해묵은 논쟁…'한정위헌' 놓고 수차례 갈등
최근 사법개혁 추진으로 공론화했지만, 재판소원은 1988년 헌재가 설립될 때부터 쟁점이었다.
당시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사법권을 헌재와 법원에 배분하는 과정에서 법적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하고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적 고려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헌법학계에서는 '사법권 독립은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다'라며 재판이 헌법에 어긋나는 경우 내부적으로는 심급제를 통해, 외부적으로는 헌재를 통해 교정하는 것이 헌재와 법원의 '이원적 사법 체제'에 부합한다고 주장해왔다.
헌재는 1997년 12월 재판소원을 금지한 헌재법 68조 1항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고 사법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취소하며 파장이 일었다. '한정위헌'이란 법률의 효력을 통째로 없애는 '단순 위헌' 결정과 달리, 법률을 특정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면 위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법률 해석권이 법원에 있다는 이유로 한정위헌의 효력(기속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법 47조 1항은 '법률의 위헌 결정은 법원과 그 밖의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고 규정하는데, 법률을 특정한 의미로 해석하면 위헌이라는 한정위헌은 기속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1996년 4월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구 소득세법 조항을 그대로 적용해 과세소송 원고가 패소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는데, 헌재는 이듬해 12월 대법 판결을 취소했다.
그러면서 헌재법 68조 1항에 대해서도 "법원이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해 그 효력을 전부 또는 일부 상실하거나 위헌으로 확인된 법률을 적용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도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러한 한도 내에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설명했다.
이후에도 한정위헌 결정 이후 재심 청구된 사건에서 대법원이 헌재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하자 헌재는 2022년 6월과 7월 해당 재심 기각 판결을 취소하는 칼을 빼 들며 한정위헌 논쟁이 재점화했다.
이번 재판소원법이 재판소원 청구 사유로 '법원 재판이 헌재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재판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1호)는 이런 한정위헌을 둘러싼 법원과 헌재 갈등을 해소하는 취지다.
◇ 사법부선 '4심제' 우려…"소송지옥·희망고문"
그러나 사법부를 중심으로 재판소원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우선 재판소원은 사실상 4심제에 해당해 우리 헌법 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헌법은 제5장에 '법원', 제6장에 '헌법재판소'에 관한 내용을 각각 규정해놓고 있다.
법원에 관해 규정한 5장에서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101조 1항),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구성한다'(101조 2항)고 명시해놓았다.
헌재는 '법원은 법률심, 헌재는 헌법심'이라고 주장하지만,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103조)고 정해 법원 역시 구체적 사건에서 심판할 때 헌법을 해석·적용하므로 "각자 다른 단계에서 헌법의 최종 해석기관"이라는 게 대법원의 시각이다.
현실적으로도 사실상의 4심제로 불필요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초래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원행정처장 자격으로 국회에 출석해온 천대엽·박영재 대법관이 재판소원에 대해 "국민들을 소송지옥에 빠뜨리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최근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헌법 규정도, 재판소원 사유도 추상적이어서 많은 패소 당사자가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며 재판소원을 하려 할 것"이라며 "무한의 소송루프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소원제 모델로 삼는 독일에서 재판소원 인용률은 0%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치적 사건이나 국민적 논란이 된 사건이 아니라면 일반국민에게 재판소원은 사실상 '희망고문'"이라고 강조했다.
대만에선 재판소원 시행 수 사건이 485% 늘었으나 인용률은 0.4%에 그쳤다.
헌재가 재판소원 사건을 다 감당할 수 있느냔 현실적 우려도 나온다. 헌재에는 재판관 9명과 헌법연구관 70여명이 있다. 현재 연간 접수되는 사건 수는 약 2천500건으로 평균 처리기간은 2년이 넘는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에 1년간 접수되는 본안사건만 5만건 이상인데 이대로 재판소원이 시행되면 헌재는 소화가 불가능하다"며 "결국 대부분 사건을 읽지도 않고 관심있는 사건만 뽑아서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무상 혼란도 논란거리다. 재판소원제 시행에 따라 헌재의 판결 취소 이후 법원이 다시 재판하는 절차에 대해선 사실상 아무런 논의가 이뤄진 적이 없어서다.
법원 관계자는 "이미 6개월 구속기간이 지난 사람은 실형 복역 중에 확정판결이 취소되면 무조건 석방되는지, 확정된 이혼판결이 재판소원으로 취소되면 그 후에 한 재혼은 무효가 되는지 등 민감한 쟁점은 법원에서 재량적으로 처리할 수도 없는 문제"라며 "소송법이 함께 개정돼야 하는데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헌재는 "4심제 주장 본질 흐려"…사건 폭증 우려엔 "안정화하면 감소"
그러나 헌재는 재판소원제가 헌법에 더욱 부합할 뿐 아니라 4심제 주장도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헌법 111조 1항은 헌재가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5호)을 관장한다고 정하므로 헌법소원 대상에 재판을 포함할지 여부는 개헌 사항이 아닌 입법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4심제 주장에 대해서도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며 "헌재는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한 기본권의 의미와 효력에 관한 헌법해석을 최고·최종의 헌법해석기관으로서 다시 심사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헌재는 재판소원이 되면 접수 사건이 폭증해 분쟁 해결이 지나치게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는 시간이 흘러 안정화하면 그 수가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확정판결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허용하는 조항과 관련해선 "재판의 신속한 확정보다 중요한 것은 '헌법에 합치되는' 재판의 확정"이라고 강조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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