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음악이 되는 순간
그들은 처음부터 운명이었다. 9살의 클라라, 18살의 슈만. 라이프치히 음악가 비크의 집에서 처음 만난 그날부터, 두 사람의 인생은 사랑과 음악이라는 한 악보 위에 함께 적혔다. 하지만 그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는 두 사람의 사랑을 강하게 반대했고, 법정 소송 끝에야 비로소 결혼이 허락됐다. 세상과 싸우며 걸었던 길. 나는 그들이 사랑하고 아파했던 시간을 따라, 뒤셀도르프와 쾰른을 찾았다.
뒤셀도르프-사랑과 고통이 머문 도시
독일 서부의 뒤셀도르프. 조용한 도시 같지만, 그 안에는 시와 음악이 숨 쉬고 있다. 하이네가 독일 시의 물결을 일으켰고, 슈만은 음악감독으로 일하며 고독과 싸웠다. 지금도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과 로베르트 슈만 음악대학이 나란히 서 있다. 마치 시와 음악이 나란히 걷는 듯하다. 슈만은 이곳에서 《라인 교향곡》을 완성했다. 겨울 끝자락, 라인강을 따라 산책하던 날, 그는 강의 고요함과 찬란함을 악보에 담았다. 그러나 음악만으로 그의 고통은 다 지워지지 않았다. 슈만은 어릴 적부터 정신병을 안고 있었다. 뒤셀도르프 시절에는 병이 더 심해져, 그는 점점 침묵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럴때도 클라라는 여덟 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끊임없이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다. 무대 위에서 남편의 곡을 연주하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었고, 내 몸이 그 음악 속으로 녹아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슈만이 어느 날 라인강에 몸을 던졌던 것도 어쩌면 조용한 평화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살아났지만,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할 것을 요청했고, 클라라는 매일 기도하며 그를 기다렸다.
볼커슈트라세-책과 맥주가 만나는 거리
뒤셀도르프의 볼커슈트라세 거리. 검은 맥주와 오래된 서점이 나란히 있는 이곳은 삶과 예술이 조용히 어우러진 곳이다. 서점에서 펼친 하이네의 시 구절이 슈만의 가곡처럼 마음을 울린다. 이 거리 어딘가에서, 슈만도 사랑을 노래하는 멜로디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쾰른-성당 위로 흐르는 사랑의 기억
쾰른 대성당 앞에 서는 순간, 누구나 말문이 막힌다. 157미터에 이르는 두 개의 첨탑, 632년에 걸쳐 완성된 고딕의 결정체는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가 하늘을 향해 쌓아 올린 기도문 같다. 석조의 정밀한 조각과 어두운 외벽,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스며드는 빛은 보는 이의 가슴을 조용히 울린다. 로베르트 슈만도 이곳에서 대주교의 서임식을 지켜보며, 라인 교향곡 4악장에 이 장엄함을 새겨 넣었다. 대성당은 음악이 되었고, 음악은 또 하나의 대성당이 되었다. 성당 옆 로마-게르만 박물관의 디오니소스 모자이크는 2천 년 전의 시간을, 루트비히 미술관의 900점이 넘는 피카소 컬렉션은 예술의 현재를 증언한다. 그런 도시에서, 클라라는 병든 슈만을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청중을 향한 연주였지만, 그녀의 마음은 슈만에게로만 향했다. 그리고 그 무렵, 젊은 브람스가 등장했다. 슈만은 그를 세상에 알렸고, 브람스는 평생 클라라를 사랑했다. 그녀는 끝내 동료로만 대했지만, 그들의 음악은 서로를 향한 고백이자, 시대를 초월한 대화였다. 쾰른 대성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라인강을 바라보며, 기억을 간직한 채. 그곳엔 돌보다 단단한 신념과, 음표보다 깊은 사랑이 스며 있다
끝맺음-강물처럼 끝나지 않는 사랑
1856년 7월 29일, 슈만은 엔더니히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클라라가 그의 곁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음악 속에서 여전히 그의 숨결을 느꼈다. 클라라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합니다. 그의 음악 속에서 나는 그와 함께 있습니다.” 이와같이 사랑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다.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도 라인강처럼 오늘도 조용히 흐르고 있다. 우리가 걷는 강변 어디에선가, 바람이 속삭인다. “사랑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연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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