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준우가 만난 셰프들
▶ ‘샤카스 바비큐’ 차영기 대표

‘샤카스 바비큐’의 프로 바비큐어 차영기 대표. [장준우 제공]

‘샤카스 바비큐’의 ‘양지 바비큐’. [장준우 제공]
음식은 때로 단순한 끼니를 넘어선다. 어떤 음식은 함께 만들고 나눠 먹는 과정에서 유대감이 켜켜이 쌓인다. 불판을 앞에 두고 먹는 한국의 구이 문화나 중국의 훠궈, 미국의 바비큐 등이 대표적이다. 공통점은 불이다. 태곳적 기억이 우리 몸 안에 스며든 탓일까. 불 앞에서 인간은 왠지 모르게 겸허해지고 함께 있는 이들과 자연스레 마음을 나누게 된다. 손쉽게 배달 음식을 시키고 온기 어린 집밥이 비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한 끼 식사에서 유대를 느끼고 공동체 의식을 나눈다는 건 드문 일이 됐다. 바비큐를 통해 잃어버린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고 나아가 하나의 스포츠 문화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이가 있다. 경기 화성시에서 '샤카스 바비큐' 레스토랑을 이끌고 있는 차영기(61) 대표다.
그는 본명보다 ‘샤카(Shaka) 차'로 알려져 있다. 한국 바비큐 마니아라면 한 번은 만나게 되는 이름이다. 샤카라는 별명은 19세기 남아프리카 줄루족을 통일한 전설적인 군주 샤카 줄루에서 따왔다. 흥미롭게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9월 24일을 ‘샤카의 날'로 지정하고, 이날을 ‘브라이 데이(Braai Day)'라 부르며 공식적으로 바비큐를 즐긴다. 한국 바비큐 문화의 부흥을 꿈꾸는 그에게 이보다 적절한 이름이 또 있을까.
■ 태곳적 기억의 음식, 바비큐처음부터 불 곁에서 산 사람은 아니었다. 삼성생명에서 10년간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다 2000년대 초 불현듯 퇴사했다. “저처럼 야생동물 같은 성향의 사람들은 조직에서 이빨을 숨기고 살아야 했어요. 10년이 넘어가니 한계가 왔죠."
경기 평택시에서 근무할 당시 주말 오전 출근길에 본 풍경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미군들이 연립주택 뒷마당에서 버려진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바비큐를 즐기고 있었다. “남의 나라에서 저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데, 우리는 뭘 하고 있나 싶었어요."
그날로 바비큐 그릴을 구해 주말마다 취미로 바비큐를 즐겼다. 그러다 회사의 희망퇴직 신청 공고를 보곤 진로를 바꿨다. 퇴직 후 한국호텔관광전문대를 다니며 바비큐 기초를 닦았다. 바비큐 전문 교육기관이 없던 시절, 구글로 해외 자료를 찾아 독학했다. 자신만의 바비큐 세계를 구축하던 그는 2009년 사단법인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를 설립하고, 축적한 지식을 바탕으로 2015년 책 ‘샤카스 바비큐 프라이머리'를 출간했다. 한국 최초의 본격 바비큐 교과서로 바비큐를 공부하는 이들의 필독서다.
차 대표가 정의하는 바비큐는 ‘원시 음식'이다. “자연 발화로 동식물이 타 죽은 것을 먹기 시작하면서 화식이 시작됐어요. 처음 화식은 혼자 먹기 위한 게 아니었죠. 모닥불을 피워놓고 고기 익어가는 모습을 보며 춤추고 노래했을 겁니다." 그는 이를 ‘세비지 퓨리티(Savage Purity)', 야만의 순수라 표현한다. “저 불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먹으면 내일은 살 수 있다는 절실함과 확신, 그게 바비큐의 본질이죠."
그는 바비큐가 주는 위안을 신뢰에서 찾는다. “불 앞에서 여러 사람이 지켜보며 구운 고기는 안전하죠.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 다 보이니까요. 요즘처럼 배달 음식만 먹는 시대에 바비큐는 음식과 사람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회복시켜 줍니다. 동시에 불 앞에 앉아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우리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서로의 눈을 마주 보게 하는 시간이죠." 차 대표는 이 시간을 '인간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 마초 감성 쏙 뺀 K바비큐의 맛그는 미국식 문화와 맛을 복제하는 게 아닌 한국적인 바비큐를 추구한다. 검게 그을린 바크(bark)나 과시적인 마초 감성을 경계하고 자연스러움과 섬세함을 기준으로 삼는다. 레스토랑 간판엔 ‘Barbecue'가 아닌 ‘Barbekue'라고 쓰여있다. 한국을 뜻하는 K로 일부러 바꾼 건 미국 바비큐의 '로우 앤 슬로' 방식은 차용했지만 우리만의 정체성을 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샤카스 오리엔탈 베이직럽'도 차 대표가 고민한 한국적 정체성의 산물이다. 럽은 고기를 천천히 익히기 전 표면에 바르는 일종의 건식 양념이다. 어떤 럽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결과물의 맛이 달라진다. 이렇다 보니 미국에서도 지역에 따라 럽의 재료가 차이가 나는데 지역적 정체성을 구분 짓는 잣대이기도 하다. 샤카스 바비큐에서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7가지 재료로 럽을 만든다. 소금, 설탕, 후추, 생강가루, 마늘가루, 양파가루, 고춧가루다.
온도에도 철학이 있다. 미국에서 일반적인 간접 바비큐 온도는 107도지만 그는 105도를 고집한다. “2도 차이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시간이 누적되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와요. 여러 실험을 해보니 조금 낮은 온도가 한국인의 섬세한 입맛에는 더 맞더군요." 온도가 주는 중요성은 갈빗살을 구울 때 확연히 알 수 있다. “미국식으로 갈빗살을 익히면 뼈가 훤히 드러나요. 고기가 오그라들면서 뼈가 튀어나오죠. 그러면 뼈에 붙은 부위는 말라서 딱딱해져요. 저는 조금 더 낮은 온도에서 더 천천히 구워 고기가 줄어들지 않게 합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생각하는 게 한국적인 거죠."

경기 화성시의 ‘샤카스 바비큐’에서 맛볼 수 있는 ‘한우 토마호크 바비큐’. [장준우 제공]
■ 바비큐를 전국민 스포츠로!바비큐어로서의 꿈은 레스토랑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2009년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를 만들었을 때도 그는 단순히 바비큐 요리사에 머무르는 게 아닌 문화의 전파자이자 개척자임을 스스로 자처했다. 최종 목표는 바비큐의 스포츠화다.
전국에서 연간 700개의 바비큐 대회가 열려요. 스포츠가 되려면 선수와 규칙, 관객이 있어야 되는데 바비큐는 모든 걸 갖추고 있어요. 무엇보다 자세한 설명이나 해설을 굳이 듣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종목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미 십수년 전부터 프로 바비큐어를 육성해서 대회를 열고 스포츠로써의 바비큐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엔 일본의 바비큐어들과 함께 한국 최초의 스포츠바비큐 국제대회을 개최했다.
그가 꿈꾸는 바비큐의 미래는 고대 올림픽과 닮아 있다. 기원전 올림피아에서 불과 인간, 그리고 도시국가들이 평화를 약속하며 모였듯, 바비큐 대회도 불과 고기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경쟁 속에서도 웃음을 나누는 축제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해요. 결국 우리는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로 돌아갈 거예요. 그때 바비큐가 그 중심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단순하고 원시적인 풍경이야말로 사람을 잇고 공동체를 되살리는 힘임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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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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