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후 재지정
▶ 오세훈 ‘잠삼대청’ 거래 허가 해제 후
▶ 잠잠하던 아파트값 연일 신고가 행진
▶ 한달 만에 다시 지역 더 넓혀 재지정

13일 수도권의 한 아파트 단지 상공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360도 파노라마 사진을 편집한 모습. [연합]
주택임대차계약‘4년→10년’추진
이재명, 계약갱신청구권 4회로 확대
보증금 폭등·재산권 침해 논란 확산
“개인적으론 바람직 않다”한발 후퇴
선거철만 돌아오면‘부동산 정치’
대선 후보 존재감 어필 정책 무리수
정부와 협의 없이 발표했다 뒤집어
집값 널뛰기 등 시장 혼란만 부추겨“오세훈 서울시장이 여당 대선 후보로서 존재감을 보여 주기 위해 무리수를 쓰다 체한 셈이다.” 정부가 19일 서울 강남 서초 송파 용산구 아파트 전체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자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이렇게 꼬집었다. 지난달 12일 오 시장이 송파구 잠실동과 강남구 삼성 대치 청담동(잠삼대청)의 아파트 291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한 뒤 집값이 무섭게 오르자 정부는 이날 강남3구는 물론 용산구까지 구역을 더 넓혀 재지정하는 강수를 내놓았다. 실제로 최근 잠실 전용 84㎡ 아파트가 30억 원을 찍는 등 전고점을 뚫은 신고가가 이어지며 규제 강화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해 6월 실거래가가 25억7,000만 원(3층)이었던 삼성동의 한 아파트는 이달 초 31억 원(17층)까지 급등했다.
갭투자가 다시 가능해지면서 현장에선 매수 희망 3, 4개 팀이 한꺼번에 집을 보느라고 북새통도 이뤘다. 결국 정부가 재지정을 발표하며 오 시장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는 집값만 들쑤셔 놓고 한 달 만에 없던 일이 됐다. 공교롭게 서울시의 해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는 시기에 단행됐다. 선거를 염두에 둔 ‘부동산 정치’가 집값에 불을 붙이고 시장 혼란을 가중시킨 데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무엇보다 오 시장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정부 및 관계 기관과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은 게 문제로 꼽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잠삼대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고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은 서울시장에게 있지만 사전에 정부와 협의를 거치도록 돼 있다”며 “그런데 지난달 구역 해제는 이러한 과정이 사실상 없었다”고 밝혔다. 서울시와 주택 정책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협의가 제대로 안 됐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법적으로 반드시 국토부와 협의해야 하는 건 아니다”며 “다만 사전에 관계 기관 등에 알려야 하는 부분은 있어 국토부에 통보했다”고 답했다.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국토부 의견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정부 관계자도 “통상 이런 경우 서울시가 국토부에 통보하면 국토부가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등과도 협의한 뒤 그 결과를 다시 서울시와 논의하거나 다 함께 모여 회의를 한다”며 “대행의 대행 체제에서 서울시와 중앙정부, 이후 부처 간 협의가 모두 충분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부터 집값이 뛰자 정부는 수시로 기재부 국토부 행안부 금융위 금감원이 모여 ‘부동산 시장 및 공급상황 점검 TF’를 열어왔다. 그러나 이 TF에서 잠삼대청 해제는 논의된 바 없다.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한 2월엔 회의 자체도 없었다.
▲대출까지 증가, 집값 기름 부어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제대로 협의하지 못하면서 금융당국에서 대출 규제를 통해 집값 급등을 막을 수 있었던 기회도 사라졌다. 사실 연초는 은행마다 대출 영업에 적극 나서는 때라 주택 규제를 푸는 건 조심해야 한다. 서울시는 이를 감안하지 못했다. 결국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로 갭투자가 가능해진 데다 주택담보대출까지 쉬워지며 집값엔 불이 붙었다.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은행에 따르면 신규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지난해 12월 5조 원에서 올 1월 5조6,000억 원, 2월엔 7조5,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실거래가 상승 중 해제도 실책잠삼대청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건 2020년 6월이다. 코엑스 일대 국제교류복합지구, 영동대로 광역복합환승센터,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등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인한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막기 위해서였다. 주거용 토지는 실거주용으로만 살 수 있게 됐고 2년간 매매와 임대가 금지됐다. 효과는 있었다. 구역 지정 이후 10개월간 대치동 아파트 매매 거래량(142건)은 규제 전 10개월 대비 77%나 감소했다. 22년에는 집값 급락세도 나타났다. 서울시도 제도 유지 필요성이 크다며 매년 6월 이를 재지정해왔다. 지난해 6월에도 서울시는 “규제를 풀면 아파트 가격이 불안해지면서 입지가 좋은 지역에 대한 투자자 관심이 집중돼 주변 지역까지 과열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단호했던 서울시 입장이 바뀐 건 올해 들어서다. 오 시장은 1월 14일 ‘규제 풀어 민생살리기 대토론회’에서 한 공인중개사가 토지거래허가제를 풀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자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오 시장은 “재산권 행사를 막아놓은 것인 만큼 그동안 풀고 싶었지만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수 있어 그러지 못했다”며 “최근 부동산 가격이 하향 안정화 추세에 접어들었다”고 자락을 깔았다. 서울시는 토지거래허가제가 이미 오래돼 그 효과가 미미해졌다는 참고자료까지 냈다. 사실상 풀어주겠다는 신호였다. 공식 발표는 2월 12일 이뤄졌다.
토지거래허가제는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인 만큼 공익 목적이라 해도 지나쳐선 곤란하고 언젠간 풀어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역 지정의 가장 큰 이유였던 삼성동~잠실 일대 개발은 여전히 공사가 한창이라 언제든 투기 수요가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규제를 푸는 건 불이 붙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그래도 풀겠다면 시점이라도 잘 잡아야 했는데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는 이미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상승 전환한 상태였다. 규제를 강화해야 할 시점에 거꾸로 토지거래허가제를 푼 꼴이다. 특히 토지거래허가 만료 시점은 오는 6월이었다. 이때 재지정을 하지 않고 해제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굳이 4개월이나 앞당겨 서둘러 해제한 이유는 의문이다. 5월로 예상되는 조기 대선 일정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잖다.
▲재지정, 집값 잡을 수 있을까정부와 서울시가 다시 강남3구와 용산구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지만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잠삼대청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의 후폭풍이 이미 너무 크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월 13일~3월 14일 잠삼대청 아파트 평균 가격은 28억2,000만 원으로, 해제 전 30일 평균 가격보다 1억 원(3.7%) 올랐다. 거래량도 치솟았다. 문제는 이러한 집값 상승세가 이미 잠삼대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주 대비 0.20% 상승했다. 한 달 전 주간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0.02%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심상찮은 대목이다. 오름세를 주도한 건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풀린 송파구(0.72%)와 강남구(0.69%)였다. 두 곳 모두 7년 만에 가장 큰 주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성동구(0.29%) 용산구(0.23%) 마포구(0.21%)는 물론 줄곧 하락했던 강북구(0.03%)와 도봉구(0.01%)도 오름세로 전환됐다.
지난해 9월 이후 3,000건대였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도 지난달엔 이미 5,300건을 넘어섰다. 3월 17일까지 신고분으로, 신고 기한이 계약 후 한 달인 점을 감안하면 2월 거래량은 7,000건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서울 주택 시장이 달아 오르면서 결국 전국 집값도 하락에서 보합으로 바뀐 상황이다.
▲10년 전세, 보증금 폭등 부를 수도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의장인 민주당 민생연석회의가 지난 12일 ‘20대 민생 의제’를 제안하며 주택임대차계약 기간을 현 4년(2년+2년)에서 10년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부동산 시장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사실상 대선 공약이란 평가가 나오고 부정적 반응이 커지자 곧바로 이 대표는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시장의 불안과 의구심은 여전하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한 임대차2법 후 보증금이 폭등한 악몽이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 앞 어설픈 ‘부동산 정치’가 오히려 서민 주거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 임대차법은 계약 기간을 2년으로 하고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한 차례 쓸 수 있도록 해 전세 4(2+2)년을 보장하고 있다. 민주당 민생연석회의는 이런 계약갱신청구권을 네 차례 이상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경우 임대인은 사실상 10년간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세입자를 위한다는 취지와는 무관하게 전세 물건 품귀와 보증금 폭등을 초래, 오히려 세입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집값 초양극화 부른 다주택자 악마화‘똘똘한 한 채’ 선호와 집값 양극화도 표 계산에 밝은 정치권이 다주택자를 악마화한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부동산 정책 관련 연구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세금을 중과한 게 1주택자가 세금으로 인한 불이익이 가장 적은 구조를 만들었다”며 “너도나도 상급지 똘똘한 한 채로만 몰리면서 한강변 아파트 값만 계속 오르고 수도권 외곽과 지방 부동산은 몰락하는 초양극화 현상이 굳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별로 가격에 큰 차이가 생긴 만큼 단순 주택 수가 아닌 전체 주택 가액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전직 은행장은 “미국은 자산 중 주식 비중이 큰데 우린 부동산에 너무 몰려 있다 보니 선거 때만 되면 부동산 정치로 표를 얻으려는 움직임이 많다”며 “이미 소득 대비 너무 높은 집값이 한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국민 고통을 더 키워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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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근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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