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의 임기 종료가 임박한 시점에서 그의 외교정책을 평가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하나 있다. 미국의 적대국들이 처한 현재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결론은 하나다. 지금 그들의 형편은 하나같이 신통치 않다. 러시아, 중국, 이란과 북한 등 ‘격변의 축’으로 꼽히는 4개국의 사정은 4년 전보다 열악하다. 물론 부분적으로 운도 작용했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탁월한 전략과 세심한 노력이 낳은 결과다. 어쨌건 이같은 새로운 현실은 집권 2기 첫 해 동안 도널드 트럼프에게 대단히 유익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란은 수 십년래 가장 허약해진 상태다. 그동안 이슬람 공화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중동지역의 안보구조를 약화시키기 위해 치밀하고 복잡한 비대칭 전략을 구사했다. 이란은 이스라엘, 사우디 아라비아와 기타 온건한 아랍국들을 불안하게 만들 목적으로 헤즈볼라에서 후티와 하마스 및 시리아 정권에 이르기까지 여러 무장 정파와 민병대 조직에 자금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란의 전략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궤멸상태에 빠졌고 이란도 힘을 잃었다. 자금줄이었던 뒷배가 사라지고 러시아마저 우크라이나전으로 허둥대는 상황에서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방공망과 탄도 미사일 능력을 상당부분 파괴했다고 주장한다. 이란이 방공망을 재구축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최신 방공시스템 제공자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재로 잔뜩 위축된 이란 경제는 가중된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정도 불안하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85세로 건강이 좋지 않고, 대통령은 정부내 강경파 혹은 군부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
러시아의 약점 또한 갈수록 또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수입원 감소로 세수가 줄었고 국방 생산량이 전장에서 발생한 손실을 가름하지 못하고 있고 인플레 역시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모병 노력도 어려움에 봉착했다. 젊은이들을 군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러시아 정부는 신병에게 1년치 급여를 선지급하고 있는데 이는 러시아 연평균 임금의 4배에 달하는 액수다. 현재 러시아는 북한제 무기와 북한이 파병한 지원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국의 사정은 다소 복잡하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지난 수십년동안 성장을 견인해온 부동산 시장의 붕괴와 막대한 부채 부담, 둔화되는 생산성 증가와 낮은 소비자 신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조나단 쳉 기자는 이번주 트윗을 통해 “최근 중국 채권시장에서 경기침체의 비명이 터져나온다”고 지적했다. 한편 작가이자 투자가인 루치르 샤르마는 지금 중국이 겪고 있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인구 감소세를 보였던 국가들 가운데 고도 성장을 유지한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중국의 우환은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선다. 최근의 대대적인 단속이 시사하듯 군은 부패로 찌들었다. 시진핑의 외교정책은 대체로 비생산적이었고 원근의 국가들을 소외시켰다. 스티븐 해들리 전 국가안보 보좌관의 말대로 중국은 점차 ‘패자의 축’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바이든 팀의 구성원들은 여기서 어느 정도의 공로를 인정받아야 할까? 상당한 정도의 인정을 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반대 세력의 결속을 이끌어내는 것과 동시에 모스크바를 상대로 단호한 제재조치를 취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했고 유럽인들이 전례없는 규모로 이 대열에 동참토록 했다.
중동 지역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력하게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행정부 내 관리들조차 이스라엘을 향해 차별적인 지원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우려섞인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미국은 이란의 두 차례 미사일 공격에 맞서 이스라엘의 군사적 방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이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이란의 첫 번째 미사일 공격 당시 미국은 유럽과 아랍국들까지 이스라엘 방어에 끌어들였다. 이스라엘이 보복에 나서자 워싱턴은 이란의 핵시설 대신 방공망과 미사일 기지 공습을 강력히 촉구했고 그 결과 이슬람 공화국은 외부의 추가 공격에 취약해졌다.
중국에 대해 바이든 팀은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을 하나로 모아 베이징을 향한 정책 공조를 이루어냈다. 바이든이 취임했을 당시 유럽이 중국과의 무역거래에 이미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종종 망각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재한 한국과 일본의 화해는 아시아에서 중국과의 힘의 균형을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됐다. 또한 바이든 팀은 국내 첨단 컴퓨터 칩 제조업을 활성화하는 등 테크놀로지 분야의 안전한 공급망 확보를 시도했다.
토머스 프리드만이 최근에 지적했듯 트럼프가 직면한 도전은 적대국들의 강점이 아닌 약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승패가 달려있다. 이란에 대한 압박을 계속하되 다른 한편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핵 프로그램 제한과 무장정파 지원 축소에 테헤란의 협조를 얻을 방법이 있을까? 러시아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동시에 우크라이나가 친서방 민주국가로 번영할수 있도록 허용하는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을까? 중국을 러시아와의 긴밀한 동맹에서 떼어낼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지난 4년간 바이든이 이룬 외교 성과는 트럼프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임자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지 못할 것이나 역사는 그를 후하게 대우할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