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날’은 전 세계에 무지막지한 관세를 부과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적합한 이름이다. 그는 미국을 다른 국가들에 의해 일자리, 산업체와 자본 침탈의 피해를 입은 식민지로 바라본다. 지난 수요일 자신의 관세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트럼프는 “과거 50여년간 우리 나라와 납세자들은 심각한 착취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심복인 J.D. 밴스 부통령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도 상사의 견해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미국이 텅 빈 공장과 넘쳐나는 실직자, 정체된 임금으로 속이 빈 나라가 되어버린 듯이 묘사했다.
현실은 그 반대다. 다시 말해, 트럼프가 관세정책을 시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미국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가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을 자신의 뜻대로 굴복시키려 시도할 수 있는 것 역시 미국의 드높은 경제적 위상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변덕스럽고 파괴적이며 어리석은 방식으로 미국의 힘을 사용한다면 필연적으로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결과를 낳게 된다.
과거 30년간의 경제 스토리는 미국이 모든 주요 경쟁국보다 앞서 나아갔다는 것이다. 2008년에 미국 경제는 유로권과 거의 같은 규모였지만 지금은 두 배에 가깝다. 1990년에 미국의 평균 임금은 다른 선진 공업국들의 전체 평균치보다 20% 정도 높았다. 지금 그 격차는 40%로 확대됐다. 1995년만 해도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에 비해 50% 가량 높았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인은 일본인에 비해 150%나 더 부유하다. 사실 미국의 최빈곤 주로 꼽히는 미시시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영국, 프랑스나 일본보다 높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지난 수 십년동안 미국이 가파른 쇠락의 길을 걸었다고 확신한다. 그의 세계관은 미국이 제조업 분야의 최강자였던 1960년대의 기억에 고정되어 있다. (트럼프가 지닌 또 하나의 낡은 세계관은 모스크바에 대한 과대평가다. 그의 생각 속에 러시아는 아직도 세계 무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한 경제적 강자로 남아 있다. 트럼프는 향후 러시아와 중요한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묘하게도 새로운 관세 대상에서 러시아는 제외됐다.)
오늘날 초고속 성장세를 보이는 가장 중요한 영역인 테크놀로지와 서비스 산업에서 미국이 지배적인 위치에 서있는 현실은 트럼프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 보인다. 그의 관세는 경제학보다는 주술에 가까운 방식을 이용해 산정됐다. 관세 산정과정에서 저지른 많은 실수 중 하나는 타국과의 재화(goods) 교역에서 미국이 입은 적자를 관세 책정의 유일한 근거로 삼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영화, 음악, 법률과 금융업을 전 세계에 수출하면서 서비스 분야에서 막대한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트럼프에게 이같은 사실은 중요치 않다. 미국 경제의 75% 이상이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쓸모없는 것들로 채워진 상황에서 적어도 철강은 진짜라는 게 트럼프의 생각이다.
미국이 세계의 지배력을 손에 쥐고 있다 해도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행동해도 괜찮을만큼 강하진 않다. 세계 경제는 이미 미국의 끔찍한 보호주의를 넘어설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성장했다. 게다가 트럼프의 완강한 신념과 달리 미국도 어느 정도 보호무역주의 색깔을 띄고 있다. 세계의 다른 68개국보다 높은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의 새로운 관세는 대공황을 악화시킨 1930년의 스무트-홀리 관세보다 세율이 훨씬 높다.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모두가 단기적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세계의 다른 국가들은 미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트럼프 집권 1기의 첫 해였던 2017년, 미국은 무역 확대를 위한 모든 노력을 사실상 포기했다. 그러자 다른 국가들이 빈틈을 채웠다. 유럽연합은 8건, 중국은 9건의 새로운 무역협정에 각각 서명했다. 록펠러 인터내셔널의 회장인 루치르 샤르마가 지적하듯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무역 통로(trade corridor) 열 개 가운데 다섯 개가 중국에 한 개의 종착지를 둔 반면 단지 두 개 만이 미국에 하나의 종착지를 두고 있다.” 전세계의 국가들은 성장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무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앞으로 중국은 새로운 세계 경제의 확실한 승자로 떠오르며 미국을 대신해 전 세계 무역의 중심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가장 가까운 우방국들에 대한 트럼프의 적대감이 추가되면 유럽, 캐나다는 물론 아시아의 일부 동맹국조차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향수에 젖은 세계관의 뿌리를 찾으려면 1960년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최근 트럼프는 관세만 있고 소득세가 없던 19세기말의 미국이 몹시 그립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당시 미국 경제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력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허구의 역사다. 1900년에 미국은 글로벌 경제의 16% 정도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반면 현재 미국이 셰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6%에 달한다. 오늘날 미국인의 생활과 건강 수준은 그 당시에 비해 훨씬 높다.
그러나 트럼프가 향수 어린 환상을 행동으로 옮길 경우 미국은 19세기말의 상황으로 되돌갈 수도 있다. 그 당시의 미국은 과두정치와 부패가 만연하고, 자만에 빠져 뒷마당에서 활갯짓을 치며 이웃을 괴롭히면서도 글로벌 경제와 정치의 거센 흐름에서 소외된 지금보다 가난한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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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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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4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멕시코는 미국인들을 상대로 노골적으로 마약을 팔고 있다. 우리나라는 독재를 꿈꾸는 망나니가 정권을 잡고 나랏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박가야로의 재림을 설파하려 했다.. 국익을 따지는데 양반행세를 하면서 수염이나 만지고 있으면 그러다 끝이 날 것이다. 트럼프가 과격하게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미국의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아 오면서 스스로 국익을 지키는 데 안일 했던 것 같다. 필자는 미국인의 입장에서 걱정이 되겠지만, 민주당식 언더테이블 정치도 있었으니 거기에 따른 역효과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가가 높아져서 숫자상으론 많이 버는 것 같아도 아무도 미시시피가 일본보다 잘 산다고 생각지 않을 듯...안 가보고 하는 말이긴 해도....
트 쓸헤기와의 전쟁은 게독과의 싸움으로 귀결된다. 한국 윤두창 내란당 봐라 ㅋ
아는자들은 그래도 덜 고통이될것 이지만 모르고 앵무새처럼 노는이들은 지독한 어려움에 처할수도 고래서 앞날의 미쿡은 상상도 못할 처지에 도래할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