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타율 3할이면 뛰어난 강타자로 평가받는다. 열 번 타석에 들어 일곱 번 아웃되더라도 세 번 안타를 치면 충분히 박수를 받는다. 삼진을 두려워해 방망이를 끝내 휘두르지 않는다면 안타도 홈런도 결코 기대할 수 없다. 코스닥 시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혁신 기업의 성장 플랫폼인 코스닥에서는 연구개발(R&D)과 신사업 투자, 해외 진출과 같은 미래를 향한 도전이 일상처럼 이뤄진다. 시장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경기장에서 매일 타석에 서는 기업 경영자에게 과감한 스윙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에 가깝다.
그럼에도 현실의 그라운드에서 많은 기업인이 선뜻 방망이를 휘두르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경영상 판단의 실패가 어느 순간 무거운 형사적 책임, 특히 ‘배임죄’의 덫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도전이 위축되는 것은 단지 시장의 위험 때문만이 아니다. 의사 결정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곧바로 형사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야말로 기업 현장을 짓누르는 가장 큰 부담이다.
우리나라의 배임죄는 형법·상법·특정경제범죄법 등 여러 규범을 통해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이 경영 실패를 주로 민사적 책임이나 회사법상 통제장치로 접근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우리 제도는 상대적으로 형사 영역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기업 현장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은 잣대의 모호함이다. ‘임무 위배’나 ‘재산상 손해’와 같은 개념은 사후적으로 얼마든지 넓게 해석될 여지가 커서 고위험 투자에서 손실이 발생할 경우 형사책임 문제로 비화될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는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경영 판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잣대를 결과에서 과정으로 옮기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바로 ‘경영 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이다. 핵심은 판단의 결과만이 아니라 그 결정이 어떤 절차와 정보에 기반해 이뤄졌는지를 살피는 데 있다. 이사회 등 적법한 절차를 충실히 거쳤는지, 충분한 정보와 합리적인 검토를 바탕으로 판단했는지, 그리고 경영진의 개인적 이해관계나 사익 추구가 없었는지가 기준이 돼야 한다. 이러한 요건이 충족된 선의의 경영 판단이라면 단지 사후적 손실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형사책임의 대상이 되는 구조는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고의적 사익 편취나 명백한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책임이 뒤따라야 마땅하다. 특정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주기 위해 절차를 무시했다면 민형사적 책임은 물론 시장의 엄중한 퇴출 심판도 감수해야 한다. 다만 충분한 검토를 거친 선의의 도전까지 결과만으로 단죄하는 것은 혁신의 토양을 황폐화한다. 더욱이 최근 세 차례의 상법 개정을 통해 주주 권익 보호는 한층 강화된 반면 경영진의 책임 부담은 크게 가중됐다. 이러한 제도 변화 속에서 기울어진 규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배임죄 적용 기준의 합리적 정비는 시급히 검토돼야 한다.
기업의 도전은 언제나 성공만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때로는 뼈아픈 실패가 더 큰 혁신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되기도 한다. 타자가 삼진을 당했다고 해서 벤치로 쫓아내고 패배의 모든 짐을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합리적 판단이 존중받는 법적 환경이 마련될 때 코스닥 기업들은 보다 과감하게 미래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책임 있는 도전과 불가피한 실패를 넉넉하게 포용할 때 비로소 혁신의 홈런은 코스닥의 그라운드 위에서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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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코스닥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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