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크릴아마이드’ 논란 “명확한 인과관계 부족”
▶ 전문가들 “탄 빵보다는 불에 탄 고기가 더 위험”
아침 식탁에서 검게 그을린 토스트 조각을 칼로 긁어내거나 회식 자리에서 삼겹살의 탄 부위를 가위로 잘라내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됐다. ‘탄 음식을 먹으면 암에 걸린다’는 오랜 속설이 어느새 건강 상식으로 굳어진 탓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믿음은 과학적으로 어디까지 검증된 것일까.
최근 영국 일간지 미러는 탄 음식과 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둘러싼 논란을 재점화하며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보도했다. ‘탄 음식’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위험을 가진 것은 아니며 식품의 종류에 따라 그 위험도는 달라진다.
■ 아크릴아마이드 공포
논란의 시작은 2002년 4월 스웨덴 국립식품청과 스톡홀름대 연구진의 발표였다. 당시 연구진은 감자튀김이나 오븐에 구운 감자, 시리얼 등 전분이 많은 식품을 고온에서 조리할 때 아크릴아마이드(Acrylamide)라는 물질이 높은 농도로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 성분은 음식의 감칠맛과 갈색빛을 만드는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당시 연구진은 이를 ‘인간에게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규정하며 식단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유럽식품안전청(EFSA)도 2015년 아크릴아마이드가 전 연령대 소비자에게 암 발생 위험을 잠재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으며 경계심을 키웠다. 발표 직후 일상 식단에 경계심이 퍼졌고 “탄 음식이 위험하다”는 인식도 빠르게 퍼졌다.
■ 입증되지 않은 인과관계아크릴아마이드 위험성 자체는 그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독성프로그램은 1991년 동물실험에서 충분한 발암성 증거가 확인됐다며 아크릴아마이드는 인간 발암물질로 ‘합리적으로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이후 유럽식품안전청(EFSA)도 2015년 전문가 의견을 통해 해당 물질이 모든 연령대 소비자에서 암 발생 위험을 잠재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핵심 쟁점은 실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미국 국립독성프로그램은 다수 인체 역학 연구를 종합해 식이 아크릴아마이드 노출과 특정 암 발생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동물실험 결과와 달리 일반 식사 수준에서 섭취되는 아크릴아마이드가 암을 유발한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어렵다는 의미다.
파티마 살레 베이루트 아랍대 부교수도 “아크릴아마이드가 ‘인간에게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분류된 지 거의 30년이 지났지만, 인간에서 명확한 발암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여전히 일관되지 않는다”며 “다만 인체 연구가 더 쌓이면 분류가 달라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닐 아이엔거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종양내과 전문의 역시 음식을 과도하게 조리하거나 태울 때 발암물질이 생성될 수 있다는 가설은 존재하지만 이를 확정적 인과관계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현재로서는 ‘가설’ 수준에 머문다는 의미다.
아크릴아마이드는 종이·염료·플라스틱 생산, 식수·하수 처리 등 다양한 산업 공정에서 쓰이는 화학물질이다. 식품에서는 아스파라긴을 함유한 채소가 특정 당류와 함께 고온에서 가열될 때 생성되며, 담배 연기에서도 발견된다.
■ 탄 ‘빵’보다 탄 ‘고기’가 더 위험전문가들은 전분 식품(빵, 감자)과 육류의 탄 부분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빵을 태울 때 나오는 아크릴아마이드와 달리, 고기를 직화로 굽거나 태울 때는 이종고리 아민(HCA)과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 두 물질은 동물 실험에서 명확한 발암성이 확인됐다 일부 인체 역학 연구에서도 대장암 등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됐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적색육을 2A군 발암 가능 물질로 지정한 근거 중 하나도 고온 조리 시 생성되는 HCA와 PAH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5년 가공육을 인간 발암물질(Group 1), 적색육을 발암 가능 물질(Group 2A)로 분류했다. 고온 조리 과정에서 생성되는 HCA·PAH가 암 위험 증가를 설명할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결국 핵심은 모든 탄 음식이 같은 화학물질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식품의 성분에 따라 생성 물질과 잠재적 위험 요인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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