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주말 수백만명의 미국인이 ‘노 킹스’ 시위에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에 백악관으로 알려졌던 건물에는 현재 왕이 살고 있다. 앞으로 그 건물은 왕궁으로 불리워질지도 모른다.
미국의 현 대통령은 왕관을 쓰고싶어 안달이 난 듯 보인다. 아니면 아랍 왕조국가의 절대권력자인 셰이크를 부러워하는지도 모른다.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 트럼프의 새로운 연회장은 왕가의 혈통을 지닌 국가 지도자들이나 석유로 벼락부자 반열에 오른 신흥 졸부들의 연회장에 버금가는 규모가 될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도널드 트럼프가 사우디 왕의 거처보다 한층 더 화려하게 도금되고 훨씬 더 많은 샹들리에를 지닌 연회장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우리는 트럼프가 리야드를 방문하도록 내버려두지 말았어야 했다. 그곳에서 트럼프는 왕족처럼 대우를 받았다. 짐작컨대 트럼프는 수십억 달러 상당의 무기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2017년 사우디 아라비아의 살만 국왕을 방문했을 때부터 자신의 연회장을 구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우디 국왕의 궁전은 화려한 샹들리에, 금으로 장식된 벽과 대리석 바닥으로 꾸며졌고 수백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은 응접실과 왕좌가 놓여진 방을 갖추었다. 필자는 2007년 당시 영부인이었던 로라 부시 여사의 사우디 방문길에 동행해 입이 쩍 벌어지는 왕궁의 구조물들을 직접 목격했다.
트럼프는 최대 999명을 수용하는 자신의 연회장에서 각종 국가행사와 만찬 등의 행사를 치르겠다고 말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춰 백악관 집무실을 온통 금빛으로 치장한데서 알 수 있듯 대통령은 백합꽃에도 금박을 입히고 싶어한다.
기부자들이 3억 달러의 공사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9만 제곱피트 규모의 연회장 건설은 전례없는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새로운 구조물이 기존의 ‘국민의 집’에 손을 대지 않는 범위에서 세워질 것이라던 당초 발표는 번지르르한 거짓말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보았듯이 백악관의 이스트윙은 완전히 철거됐다. 폐하께서는 영부인 집무실이자 기타 의전 행사에 사용되는 이스트윙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던 지극히 조그만 건물”로 깎아내렸다.
알다시피 트럼프는 작은 것들을 싫어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고작 200석 규모인 대통령 관저 동쪽 별관에서 펼쳐진 믹 재거와 B.B. 킹의 공연을 보지 못했다. 필자는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내외가 주재한 ‘레드, 화이트 앤드 블루 콘서트’에 참석하는 행운을 누렸다. 오바마 부부의 바로 뒤에 앉은 필자는 불과 10피트 떨어진 거리에서 공연자들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이 시야를 가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실물크기의 조지 워싱턴 초상화 아래에서 무대를 오가고 몸을 비틀면서 재거가 흘리는 땅방울까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정말 좋은 시절이었다. 트럼프가 입주한 이후 이런 멋진 행사는 백악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한편 정부 셧다운이 한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연방 상원은 연방 공무원들이 셧다운 기간에 받지못한 임금 전액을 추후 환급받도록 보장하는 법안을 차단했다. 우리 군인들이 봉급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상황에서 군통수권자는 웅장한 연회장 건설을 미룰 수도 있을 것이다.
봉급도 받지 못한 채 일을 해야 하는 공무원들에게 연회장 건설에 공적자금이 단 한푼도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 필수불가결한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은 ‘계약 노역’으로 불리는 규정 때문에 셧다운 기간동안에도 ‘무급 근무’를 해야 한다. 이런 시기에 백악관의 일부를 파괴하는 것은 분별없는 짓처럼 보인다. 하지만 억만장자친구들을 둔 억만장자들은 일반인의 거부감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성서에 나오듯 이빨을 갈고 겉옷을 찢는 극적인 반응은 제쳐두고, 필자는 백악관 개조에 대해 뭔가 말하라고 재촉하는 일부 독자들만큼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이것은 미국인의 정신에 가해진 또 하나의 공격일 뿐이다. 사람들은 지쳐간다. 사람들에게 온갖 자극을 가해 더이상 분노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 바로 이것이 트럼프의 노림수다. 민주당이 장악한 도시에 방위군을 보내 군사화하고 소형 보트에 폭탄을 투하하는데 이르기까지 수긍할수 없는 하나 하나의 행동이 다른 모든 것들과 합쳐져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길고 고통스런 비명이 된다.
결국 우리는 백악관 잔디위에 오직 트럼프만이 사랑할 수 있는 도금된 창고를 갖게 될 것이다. 그곳에는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고풍스런 이스트 윙의 흔적조차 남이 있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단 한번도 트럼프 답지 않게 행동한 적이 없기에 우리는 그가 백악관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익히 알고 있다. 그는 국왕과 세이크, 그리고 물론 왕족다운 자신의 신분에 걸맞는 공식적인 공간을 원한다. 어떤 이들은 백악관의 화려함이 부족하다고 느꼈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를 절제된 우아함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미합중국의 시민인 우리는 국민의 집에 과시와 사치 따위를 하지 않는다. 우쭐대는 것은 미국적인 태도가 아니다 - 아니 적어도 과거에는 그랬다.
한때 겸손은 소중하게 받아들여지던 국가적 미덕이었고 가장 크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 태도는 졸부들의 허세로 여겨졌다. 필자를 전통적인 WASP(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라 불러도 좋다. 그러나 굳이 특정인과 비교하진 않겠지만 워런 버핏이 택한 겸손한 삶의 방식에는 분명 배울 점이 있다.
유감스럽지만 새로운 무도회장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방문하는 11월에는 완공되지 않는다. 어쩌면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인 자레드 쿠슈너의 투자회사에 20억 달러를 기부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연회장 공사를 위해 거액을 내놓을지 모른다.추측컨대, 카타르로부터 4억 달러짜리 호화 전용기를 선물로 받은 트럼프 국왕은 사우디 왕세자의 기부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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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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